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hamalg May 06. 2017

24. 찰나의 웃음, 잠깐의 휴식.

이어지는 행복.

날이 좋다. 순식간에 따뜻해진 공기 속에 꽃가루가 폴폴 떠다닌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민들레 홀씨들이 날아오는 걸까. 쉼은 정말이지 언제나 마음을 흐물흐물 녹여 내린다. 예를 들면, 이렇게 공중에 둥둥 떠있는 꽃가루들에 감격하기도 하는 예술적인 인간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평생을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나는 일반적으로 같은 장면 속에서 입과 코를 틀어막고 최대한 빠르고 전투적인 걸음으로 그 장면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인간이다.


어딘가에서 또는 누군가에게 필요로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본능보다 책임감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자신 혹은 타인), 또는 어딘가에(사회, 학교, 가정)서 기여할 수 있단 사실은 분명 행복한 일일 것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란 소리만큼 모욕적인 힐난도 없을 테니.

휴식은 쉼을 의미하는데 그 때문에 책임질 일이 없는 이에겐 휴식이 무용이다.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 있어야 쉴 수도 있을 테니까.


다시 찾은 강원도는 작년 겨울보다 조금 소란스러웠다.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파 몇 시간이고 나누었던 깊고 짙은 대화는 이미 깊고 짙은 사이의 우리에겐 무용일지도 모른다. 대신 가벼운 장난들과 무거운 음담패설로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마르질 못했다. 웃음들 사이를 메우는 기나긴 침묵들이 어색하지 않아 생각 없이 떠들고, 창밖을 구경하다가 음악을 흥얼거리기도 하며 따뜻한 햇볕에 푹 절여져 퍼져있었다. 혼자가 아님에도 그렇게나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게 기뻤다. 외롭지 않으면서 고요할 수 있다니. 사실 대부분의 시간 나의 까만 붕붕이안에 앉아있을 뿐이었지만, 특별하지 않은 시간 속에 함께 무리 없이 앉아있다는 점이 인상적인 여행이었다. 특별할 게 없어 특별했다. 나를 위해 통일전망대를 가주고, 생새우를 직접 손질하여 버터구이를 해주는 이 사람과 함께라면. 모두들 삼선 슬리퍼를 신고 탈탈거리는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세 걸음에 한 번씩 지진해일 피난 경고가 붉게 길을 막는, 이 소박한 어촌에 못 살 이유도 없는 거 아닌가 했다.

물론, 못살겠지만.


진정한 고요는 정말이지 거의 3년 만이었단 사실을 오늘 아침 문득 알아챘다. '괜찮아, 사랑이야' 전편이 연속 방송되고 있었는데 울랄라 세션의 흥겨운 love fiction을 4시간 내내 열창하며 내려갔던 담양이라니. 아득하다. 3년 전 그때의 난 고요해지기 위해선 무려 4시간을 혼자 운전하여 전라남도 담양까지 갔어야만 했다. 사랑의 실패를 선사한 그 입이 친히 지껄이는 '처음이라 그래, 곧 괜찮아질 거야.'란 진리의 말씀을 들은 지 9개월쯤 흐른 뒤였다. 그날 이후 참고 참다 3개월마다 연락하는 나를 거절 못하고 번번이 나오던 그 사람에게 커피 마시자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기 위해 담양으로 향했다. 너무나 외로워서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모두가 있는 곳에서 외로울 바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나을 것 같았으므로. 철저히 자신을 고립시킨 나는 1박 2일 동안 그와의 이별 이후 1년 만에 아마도 처음으로 순수하게 행복했다. 행복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멀리까지 내려가 묻어버리고 갖은 소란을 떨며 겨우 잊었냈던 그 사람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선물과 손편지를 받았다. 처음부터 연락 같은 거 하지 않았더라면 그도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었을까? 그때 그 선물과 편지를 어떻게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 당시엔 엄마와 동생의 존재가 큰 위안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그의 부재가 선사하는 외로움은 가족이 주는 행복과는 완벽히 별개의 문제였고 엄마와 동생으로부터 받는 분에 넘치는 사랑으로는 첫사랑의 상실이란 밑 빠진 독이 채워지지 않았다.

가족은 고단했던 일상을 떨쳐버릴 달콤한 휴식이라기 보단 때때로 지치고, 맥을 쏙 빼버리기도 하는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내 옆에 단단히 자리 잡아 버팀목이 되어준다. 찰나의 웃음을 선사하고 그 찰나 덕에 일상이 행복해진다.

업무시간 동안 찾아오는 시련과 고군분투는 점점 그 농도가 진득해져 숨 돌릴 틈이 없다. 분명 어제 말끔히 모든 일을 완벽히 마무리하고 퇴근했음에도, 컴퓨터 전원을 켜는 순간 쓰나미처럼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모니터를 넘어 나를 덮칠 것만 같은 기세로 몰려든다. 키보드위에서 열 손가락을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탁탁 움직이며 덮쳐오는 업무에 매몰되지 않도록 애쓰다 보면 어느새 또 하루의 해는 지고 없다.

격렬한 배고픔으로 뱃가죽이 등짝에 붙은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집으로 돌아오면 그들이 있다. (물론 배는 등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만.) 내가 극악무도하게 타락하더라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존재하기에 나는 정의로우려 애쓰지 않을 수 없다. 고기 없이 먹는 밥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단 덩치 큰 딸내미 덕에 매일 저녁 시집살이하는 엄마의 고기반찬으로 배도 마음도 차오른다. 정신 시끄럽게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불나불 노래를 불러대는 동생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난다. 그들이 그 자리에 있기에 나는 더 나은 내가 되려고 애쓸 수 있다. 그들이 나를 실제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더 나은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각진 세상 속에서 너의 동그라미가 되어줄게." 매드클라운이 청혼할 때 했던 말이라던데, 나는 이미 둘씩이나 있다. 종종 욱하고,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누구보다 여린 동그라미 둘. 나도 그들에게 동그라미가 되어주고만 싶다. 나란 인간을 떠올렸을 때 걱정 아닌 미소가 그들의 얼굴에 번지길. (언제쯤에나?)


나이를 엄청 먹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서야 평온하게 지낼 수 있는 감정선을 찾은 느낌이다. 이성과 감성. 그 높낮이의 적절한 밸런스. 너무 이성적이지도, 너무 감성적이지도 않은 태도가 여유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지금의 평온한 연애는 아마도 나와 그 사람의 감정의 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든다. 한쪽이 더 사랑하고, 한쪽이 덜 사랑했던 지난날들과는 명백히 다르다. 딱 좋은 밸런스.

기진하고 고단했던 지난 연애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안정적인 연애가 옳다고 믿고 싶다. 오빠도 비슷한 감정일 거라 확신한다. 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지만, 이런 우리들에게 끝이 온다면 우리 둘 모두 그렇게 소란스럽진 않겠지. 그의 과거도 나만큼이나 야단스러웠으려나.

간만에 만난 친구는 평온은커녕 여전히 격렬한 감정의 끝에서 본인의 몸이 부서져라 격정적인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이 나이 먹도록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나의 질문에 친구는 대답한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좋아 죽는 사람이랑 살고 싶어."

혼란스러워진다. 그럼에도 그와의 시간이 순수하게 행복하단 점은 명백한 사실인걸.

과거의 사람들과 보낸 시간은 안타깝고 불안하기 그지없었으므로, 평온한 지금 우리의 관계가 분명 더 강력할 거야.


따듯한 바닐라라떼에 샷을 추가하면, 달콤 씁쓸해서 맛의 밸런스가 딱 적당하다. 5,800원. 별다방 카드로 결제하면 엑스트라 할인 적용받아 5,200원. 여전히 비싸지만, 그래도 달콤 씁쓸하니까. 딱 좋은 밸런스.

꽃가루 알레르기 덕에 흐르는 콧물과 눈물을 아베크롬비 후드 소매로 슥슥 훔치며 집으로 간다. 아무도 없는 집은 고요하고 잠이 쏟아진다.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니 숨어 있던 동생이 으와와아악!

나도 으어어억!

정말이지 발아래로 쿵 떨어졌던 심장을 쓸어내리고 사투리로 구수한 욕을 날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터져 나오는 웃음.


찰나의 웃음, 잠깐의 휴식. 

그리하여 다가오는 월요일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23. 알면 알수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