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던 그때 그 시절.
가끔 버스를 타면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끊임없이 터지는 웃음에 숨차 하는 여자아이들을 마주한다. 쿠션으로 하얗게 분칠한 얼굴과, 길고 짙게 뺀 눈썹, 틴트로 붉게 물들인 입술.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나이 때의 촌스러움은 웬만해선 가려지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해서 눈이 간다. 행복한 에너지를 버스 가득 채우는-아마도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갱신했을-그 시절의 소녀들에겐 그런 매력이 있다.
뭐가 그렇게 우습고 재미나니? 뭐가 그렇게 행복하니 얘들아?
웃음이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던 그 시절을-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갱신하며-나 또한 지나왔다. 다른 친구는 나와 친구들을 보면 낙엽 구르는 소리에도 웃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고도 했다. 애 늙은이 같았던 그 친구가 정작 무슨 말을 하며 웃는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준 건지는 기억이 나질 않아. 기억이 10년에 한 번씩 갱신되는 걸까? 19살 때까지만 해도 10대에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을 굉장히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20대의 시작과 함께 10대의 기억 대부분이 빠르게 소멸되고 말았다. 지금에서는 20대의 시작도 까마득해지고 말았지만.
연인도 아니면서 매일을 몇 시간씩이나 그렇게 통화하곤 했다. 핸드폰 열기로 피부가 붉게 달아오를 때까지. 다른 대학으로 흩어졌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보자고 애들을 닦달한 건 주로 나였다. 여럿 질리게 만든 나의 집착과 구속은 이렇게 떡잎부터 남달랐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죽고 못살던 우리는 누적되어온 서운함에 죽고 못살겠었는지 대학 졸업을 끝으로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했다. 태생적으로 자기중심적인지라 내 사람, 내 것만 챙기며 살아온 나로서는 친구라곤 그녀들뿐이었지만, 친구가 없어도 죽고 못살기는커녕 너무 잘 살아져서 신기할 정도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취업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신입사원 행군(4박 5일 168km였던가) 같은 것도 하면서 오늘 하루 보내기도 정신없어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나 저제나, 외롭거나 그립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친구라는 존재가 나에게 무색하단 사실을 절감했다. 과거, 그녀들에게 향했던 나의 집착은 설명할 길 없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었다.
헤어지고 나니 그녀들의 흔적은 막상 온 데 간데없었다.
죽고 못 살 남자의 등장이 그녀들의 부재를 덮은 걸까? 그와의 영원한 미래를 꿈꾸기만도 벅찼던지 과거는 싸그리 덮여버렸다.
지금 내 옆에 죽고 못 살 남자는 없다.
다만 살아 있는 동안은 함께 하고 싶은 남자가 있다.
굉장히 오랜만에 성북동에 갔다. 그와는 처음이었다. 멋지고 돈 많은 여사장님이 취미 삼아 운영하는 것 같은 독특한 인테리어의 식당에 갔는데 정작 음식 맛은 독특할 것 없어 좋았다. 맛이 있지도, 또 맛이 없지도 않았지만 서울이라 믿기 힘들 만큼 고요했던 그곳 이층 테라스에서 묘하게 기분이 들떴다. 포스 있는 여사장님과, 무심하게 여기저기 걸린 넥타이들, 적당한 맛의 음식과 하우스 와인.
실은 내내 긴가민가 했는데, 나가는 길에 봤더니 역시나. 최근까지도 종종 연락 오던 그 사람과 몇 년이나 전에 함께 왔던 곳이었다. 산책 삼아 밤길을 걷다 독특해서 안으로 들어가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 같기도 한데, 만들어진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몇 년 전 발렌타인데이에 이 공간에서 나는 정성 들여 끓인 딸기잼을 그 사람에게 선물했고, 그날 밤의 내가 꽤나 예뻤던 기억이 난다. 정작 눈 앞에 앉아 있던 사람에 대해서는 도통 기억나는 게 없다.
오빠가 갑자기 3~4년 전쯤 이 곳에 와봤다는 이야기를 한다. 굳이 왜 하는지 모를 이야기를 오빠는 종종하곤 한다. 그 당시 오빠와 왔을 그녀는 없고 내가 있다. 지금 내 옆에는 딸기잼을 받아간 그 사람이 아닌 오빠가 있다.
그리고는 부암동으로 갔다. 부암동도 오빠와는 처음. 부암동에 나를 처음 데려왔던 사람과는 서로 준 것도 받은 것도 없었다. 6개월이 넘는 시간을 같이 열심히 먹으러만 다녔다. 그 흔한 애정표현 한번 없이. 그럼에도 그는 비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빗소리가 잘 들리는 곳이라며 부암동 언덕길에 있는 고즈넉한 카페에 데려가기도 했다. 과거, 그가 알려준 그곳에 이번엔 내가 오빠를 데려갔다. 그 카페는 참 좋다.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오빠가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오빠가 문득 예전 여자 친구가 부암동에 살았다는 말을 한다. 굳이 왜 하는지 모를 이야기를 오빠는 이렇게 종종하곤 한다.
위스키를 마시러 가는 길에 신용카드 바우처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얼핏 나왔는데, 오빠는 그때 우리 콘래드 갔을 때 이미 써버렸다는 말을 한다. 크게 상관은 없다. 나는 그와 콘래드에 간 적 없지만.
오빠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도 이따금씩 종종하곤 한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날 문득 영원히 잃어버렸다 여긴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한 번도 그리운 적 없었다 생각했지만 떨렸고, 설렜고, 반가웠다. 보고 싶지 않던 사람이 반가울 순 없는 일이므로, 아마도 그리웠던 게 맞을 것이다. 그녀들이 그리웠을 수도, 그녀들과 함께 낙엽만 봐도 웃던 그 시간이 그리웠을 수도, 웃음을 그칠 줄 모르던 과거의 내가 그리웠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무언가 그립긴 했던 건 분명해.
금요일 오후, 여전히 서로의 과거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친구와의 저녁 약속에 엉덩이가 들썩여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친구에 죽고 못살던 저 먼 과거의 시절을 함께해준 그녀다. 친구에 목 메달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녀가 지금 내 옆에 없었더라면 만들어낸 기억은 아닐까 의심이 들만큼 현재의 나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기억 저편 굉장히 흐릿하게 그랬던 내 모습이 어렴풋히 남아있다. 그녀들이 나의 자랑이었던 그때가.
그리고 그녀들의 기억 속엔 꽤나 또렷이 박혀있는 모양이다. 내가 그녀들의 자랑이었을 때가.
오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위스키 바에 갔다. 이따금씩 오곤 했다던 그 위스키바에 앉아 과연 나는 여기에 오빠가 데리고 온 몇 번째 여자일까 생각해본다. 우린 헤어지지 말자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함께 미국을 가자고도. 그렇게 아무 말도 아닌 이야기들을 했다. 사실은 대화를 나눴다기 보단 같이 술을 마셨을 뿐.
같은 공간 속에서 오빠와 과거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을 여자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다.
우리가 정말 오랜 시간 함께 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오늘 나눈 아무 말도 아닌 이야기들이 어떤 의미라도 가지게 될 것만 같다. 딸기잼을 받아갔던, 빗소리가 잘 들리는 카페에 나를 데려갔던, 그 남자들과의 시간처럼 무의미하게 잊히진 않았으면 한다.
과거 속 무의미해진 남자들과 나는 300일에서 365일 사이에 찾아온 고비를 넘겨본 적이 없다.
곧. 또다시, 고비다.
금요일 밤, 분홍색 칵테일을 마시며 두터웠던 무테안경, 촌스럽다는 말도 아까울 만큼 유치했던 캐릭터 티셔츠, 10대니까 귀엽게 봐주려고 해도 좀 심하게 아니었던 하늘색 아이쉐도우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던 나의 꼬락서니를 추억하며 웃어댔다. 후에는 그 시절을 추억하며 웃어젖히던 지금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20이 넘어 사랑보단 우정이던 10대의 기억이 희미해졌듯이, 우정보다 사랑이던 20대의 기억도 곧 모두 잊혀질까? 기억을 공유한 그녀들 덕에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는 10대와 달리 20대의 추억은 부여잡아줄 사람이 옆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은 이미 상당 부분을 잃었다.
함께하는 미래를 바라고 있다.
나도, 그 사람도, 진심이다.
오빠는 오늘 밤 나의 일본어 과외가 끝날 시간에 맞춰 잠시 얼굴을 보러 오겠다고 했었다. 늦잠을 자버린 오빠는 오전에 놓친 수업을 오후에 들어야 했고, 결국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나를 찾아오겠단 전날 밤의 약속은 백 퍼센트 진심이었고, 그가 오지 못한 이유 역시 백 퍼센트 이해한다.
함께하는 미래를 바라고 있는 그의 진심이 후에 지켜지지 못하더라도, 백 퍼센트 이해할 수밖에 없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 테지. 언젠가 먼 미래에 일기를 뒤적거리며 지금 이시절을 홀로 떠올리게 되어도, 오빠와 함께 회상하며 웃게 되어도, 어느 쪽이든 다 괜찮을 것 같다.
어쨌든 행복했었다고 기억하게 될 테니.
남자에 죽고 못살던 시기를 겨우 막 통과한 나는 이제서야 다시금 친구들을 돌아본다.
진정으로 나를 웃게 한건 역시나 그녀들이었던 것 같다.
진정으로 눈물짓게 한건 백 퍼센트 그들이었지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