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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Nov 27. 2017

31. 내 것이 아니다.

이것도?

메일이 왔다. 중국 심천에서 국제 컨퍼런스를 12월에 개최하는데 연사자로 참석해 발제를 해달라는 초청장이. 프로그램을 보니 자본이 빵빵한 중국 공기관에서 최초로 주최하는 관련 국제 컨퍼런스니 만큼, 라인업도 빵빵했다. 이쪽 업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름은 들어봤을 국제기구, 글로벌 기관 대부분이 참석하더라.

더 이상 일하지 않는 나는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고 답장을 보냈다.

거절의 의사를 밝힐 때 모두들 의례 하는 말이지만 나의 '아쉽다.'는 대답에는 정말이지 1%의 가식도 없었다. 나에게 도착한 초청장을 읽고, 또 읽었다. 묵직한 돌덩어리가 목구멍에 컥하니 박힌 기분이 들더니 이내 눈물이 났다. 독서실 자유석에서 수능 시험을 준비하던 고3 학생들과 앉아 한자 2,400자를 외우던 나는 컥컥 뿜어져 나오는 눈물이 부끄러워 눈물이 멈출 때까지 그저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갈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pdf 파일로 첨부된 참석 해주길 바란다는 이 정중한 편지를 훈장 삼아 영원히 길이길이 보관하는 것.


내가 안 가면 다른 사람이 가게 될 테지.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하게 될 테지.

그렇게 내가 서있던 자리는 내가 언제 있었나 싶게 순식간에 흔적조차 사라진다.


그 일을 하는 시간 내내 보람차고,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괜찮아질 내일을 상상하며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점은 분명한데도.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되뇌며 억울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인다.


마음에 구멍이 뚫려 숨을 쉴 때마다 바람이 마음을 관통하는듯한 기분을 마지막으로 느낀 건 2015년 겨울쯤이었다. 그 당시 만나던 남자에게 받은 갑작스러운 이별통보로 정확히 2주 정도 숨쉬기가 힘들었다. 이번에 뚫린 바람구멍은 막힌 듯하다가도 이렇게 쉽사리 다시 시커멓게 입을 쩍 하고 벌린다.

힘든 일을 함께 해치운 건 난데, 우리 이렇게 어렵게 이루어냈다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랑스럽게 뽐내는 일은 남의 차지다.


엄마는 일이 이렇게된 건, 애초에 그것이 내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억울한 마음은 똬리를 틀고, 한자 급수 시험이나 준비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워진다. 20살 이후 아등바등 해내 온 것들이 모두 부질없어진 것 같아 속이 상해 죽을 것만 같다.

성숙해지긴 했을 것이다.

물론, 조금 더 올바른 가치관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 만을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애써온 건 분명 아니었다.

자랑스럽기 위해, 빛나기 위해, 그리하여 모두의 인정도 함께 누리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소중한 20대를 걸었건만. 인정은 내가 누릴 수 없는 것이라니.


내 것이 아니라니.


공부를 시작한 지 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았는데 독서실로 향하는 발길 한걸음, 한걸음이 지난하다. 출근이 하기 싫었던 적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이 하기 싫었던 적은 없었다. 한자는 정말 쳐다보기도 싫다. 비만해진 머리 무게와 몸뚱이를 움직이려면 단순하지만 강력한 도구가 필요한데,

그건 바로 따뜻한 바닐라라떼.

샷은 추가해주시고, 머그잔에 주세요. 환경을 염려해서라기 보다는 도자기 잔이 입술에 닿는 단단한 느낌이 좋다. 이로 살짝 깨물어도, 종이컵처럼 으그러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커피를 홀짝여도, 종이컵처럼 흐물거리지 않는다. 물론, 항상 머그잔에 주문하는 나를 환경주의자로 착각해준다면 긍정도, 부정도 않은 채 그런 착각을 향유해야지.


저녁은 모든 걸 다 튀기고, 볶아버리는 기름진 중국음식을 먹기로 했다. 엄마가 카페에 죽치고 있는 나를 데리러 왔는데 함께 걸으며 한자시험 떨어질까 걱정하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공부했는데 못 붙으면 나가 죽어야지." 정말이지 나는 엄마의 말투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꽤나 잘했던 나는 대학 입시 과목 점수가 40이 안 나오면 어떡할 거냐 묻는 친구에게 "그 점수도 안 나오면 나가 죽어야지."라는 말로 상처를 줬었다.

(호주 빅토리아주는 총 6과목을 선택하여 대학 입시 시험을 치르는데, 한 과목당 만점은 50점으로 계산되고 내신과 합산하여 100점 만점으로 총점을 매긴다. 99.99점이 최고득점이다.)

나는 당시 이런 나의 말이 고약하단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실제로 내 기준에서 40점은 너무 낮은 점수였기 때문이었다. 친구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단 사실을 배려하지 못할 만큼 시야가 좁았다. 몇 년이 흐른 뒤 친구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면, 난 아마 평생 내가 그런 말을 했단 사실도 몰랐으리라.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었으나, 쉽게 뱉은 말로 낸 생채기는 쉽게 뱉어낸 미안하단 말 한마디로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그 친구는 아마 평생 그날의 그 전화통화를 기억할 테고, 나는 몇 년이 지나 그 이야기를 들은 그날 밤을 평생 기억할 테지.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엄마의 말이 크게 타격이 없었다. 나도 엄마랑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한자시험 정도는 인간적으로 그냥 붙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한자 시험을 마치고 나오니 4시였다. 비가 쏟아져서 평소의 4시보다 많이 어둡고 또 많이 추웠지만 계속해서 내리치는 천둥번개로 걷는 길이 내내 번쩍였다. 숙명여자대학교는 집에서 멀지 않지만, 교통편이 애매해서 정거장까지 좁은 골목과 언덕길을 꽤나 걸어야 했다. 처음 가는 길이라 네이버 지도를 몇 번이고 확대해서 확인하면서도 흉흉한 뉴스로 쫄보가 된 나는 마치 익숙한 척, 항상 걸어 다니는 길 인척 하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서둘렀다. 양말이 젖어 발이 시리고, 우산을 들어야 해서 손도 시렸지만 비를 좋아하는 나는 음악이 웅장하게 들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깟 한자 2급쯤이야 그렇게 공부를 하고서도 붙지 않으면 정말 돌대가리라고 생각하지만(약 2,400자를 외워야 하고 죄다 주관식이라 찍을 수 없어 절대 만만치 않지만, 나는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어쩌면 아마 어제 시험 본 사람들 중 거의 제일 많은 시간을 공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실패를 받아들이는 일이 점점 대수롭지 않다.


실패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성공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원하는 것을 가지면 그것이 성공일까?


무수히 많은 실패들이 쌓여가지만, 실패가 쌓인다기 보단 겪어낸 시간과 이겨내는 경험이 쌓이는 것뿐이라고 우겨본다. 실패는 찰나일 뿐이라고. 그리고 아마, 성공도 마찬가지 아닐까? 성공이라 불리는 것도 그저 한순간의 경험으로 쌓이고 흘러가는 것이라고. (성공하지 못한 숙련된 실패자의 어림짐작.) 그저 나이를 먹는 것일 뿐이라고.


성공의 찰나가 인생의 끝이 아니듯, 실패의 순간이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 내가 해온 일들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한자 2급 시험에서 떨어지고, 로스쿨에 입학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들은 모두 자명한 실패고, 그 찰나들이 내 가슴에 바람구멍을 쩍쩍 뚫을 테지만 그 곳이 결코 인생의 끝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언젠가 나는 또 성공의 찰나를 만날 것이다.(혹은, 죽기 전에 한 번은 성공의 순간이 있을 거라 희망하며 평생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실패의 찰나들도. 하지만 끝은 없다. 한 번의 성공으로 인생 전체를 성공으로 포장할 수 없듯, 실패의 순간이 내가 건너온 시간들과, 앞으로 지나갈 시간 모두를 실패로 둔갑시킬 순 없다.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실로 간단하다.

성공도 함께 포기하면 그뿐이다.

무기력하게 두 손 놓으면 실패는 절대 찾아올 수 없다. 그리하여 어쩌면 맞이할 수도 있었던 성공까지 영영 잃게 된다면 그때가 모든 것의 끝일지도 모르겠다.


느리게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끝은 오지 않는다. 죽기 전까지 내가 직접 내 인생을 끝장내는 순간이 올 수 없도록 두 손과 두발을 쉬지 않고 놀려야지. 무슨 일이든, 정성껏 한다면 옅은 만족감과 즐거움이 항상 함께 있다. 지금 당장 불의의 사고로 죽어도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순간도 허투루 버리진 않았으니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따금씩 컴컴한 동굴에 갇히는 기분이 들지만, 곧 괜찮아진다.

실제로 첫사랑에게 차였을 때는 괜찮아질 수 없을 거란 마음이 나를 더 오래 슬픔의 순간에 묶어뒀던 것 같다. 그래서 딱 1년 걸렸지. 그 다음부터는 비교적 수월했다. 끝날 거란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아서 그런가, 길어봤자 2주.


그래서, 웃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옅은 만족감과 즐거움을 두 손에 쥐고, 천천히 걷다 보면 또 다 괜찮아지는 순간이 분명 올 테니까.


즐겁게 보내자 ^_^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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