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에 감사하며
매일이 휴일인 백수라 그런지 크리스마스도, 1년의 끝도, 특별할 게 없었다. 나를 구속하는 곳이 있을 때엔 일상의 빈틈만을 기다렸고, 애타게 기다려 겨우 맞이한 연말 휴일의 끝은 매번 그렇게나 아쉬웠는데. 학생의 구원은 방학, 직장인의 구원은 빨간 날. 엄마 집에서 등 따습고, 배부르게 노는 백수에겐 구원이 필요가 없구나.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 아침, 지하주차장이 텅 비어있었다. 모두들 이른 아침부터 차 끌고 출근했구나 싶어 왠지 모르게 고소한 기분이었다. 이긴 느낌. v(^.^)v
엄마의 큰딸, 여동생의 언니 말고는 그 어떤 정체성도 없던 이번 연말, 나는 그저 조금 더 맛있는 밥을 먹었고, 평소보다 조금 더 값나가는 선물을 받았고, 외출이 좀 잦았다. 요즘 같이 매일이 기분 좋고, 스트레스-프리인 일상에서는 저런 특별한 일들도 일상과 크게 다름없다. 매일이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히 행복 해진 것일 수도, 아니라면 그저 매사를 큰 기대 없이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 걸 지도.
평소와 꼭 같은 하룻밤을 자고는, 한 살을 더 먹었다. (욕)
연말이면 항상 들끓던 회고 본능과 이듬해엔 더 뽈뽈해지고 말겠다는 성장 욕구가 이상하리만치 잠잠했다. 그렇게 잔잔한 일상으로만 가득 찼던 12월, 2017년의 마지막 브런치 글을 써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한 해를 돌아봐야 하는 시기임을 받아들이지 못해 연말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2년 전 연말부터 『5년 후 나에게』(365개의 질문에 5년간 답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있다. 2017년 마지막 날 아침, 그날의 질문인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에 답을 기록하려니 결국 한해를 되짚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다이어리를 슥 훑어보니, 같은 사람이 대답했다고 믿기 어려울만큼 똑같은 질문에 2016년과 2017년의 답이 극명히 반대되는 날들이 종종 보였다.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사람 중 진정으로 마음을 연 몇 안 되는(어쩌면 거의 유일한) 그녀의 평가대로 고작 1년 사이에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많이 변한 것 같다.
2017년 하반기, 집 다음으로 가장 자주 행복한 마음이 충만해졌던 공간은 낮시간의 버스 안이었다. 정류장에서 바람을 맞으며 기다리다 올라탄 버스는 강력한 히터 바람으로 훈기가 가득하다. 꽁꽁 얼어버린 손가락과 발가락이 따끔따끔 녹으며 서서히 유연성을 찾아가면 핸드폰 타자 치는 속력도 빨라진다. 한산한 버스 안으로 주황빛 햇살이 프리즘 모양으로 들이치면 온 세상의 평화가 순간이나마 이 버스 안에 집약적으로 도래한 것 같았다. 아마 나만이 평화로웠겠지만. 또, 반대차선 버스 아저씨께 손 흔들며 인사하는 아저씨의 모습도 괜스레 웃음이 난다. 아주 잠깐 스쳐가시는 것뿐이지만, 그 뒷모습과 손동작에 반가움이 듬뿍이다. 나 역시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기를 만나면 반가움에 반짝 기뻐지곤 했었다.
그러나 물론 가장 자주 불쾌한 마음이 팽배해지는 공간 역시 버스다. 강남역 정류장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함께 만차 버스에 비집고 들어가 단단히 버티고 선다. 뒤에 선 아저씨의 저녁 메뉴는 오천 퍼센트의 확률로 제육볶음이다. 버스에 타기 전 남자 친구와 잠깐 통화를 했다. 요즈음에는 대화를 시작했다 하면 서로의 감정이 상하고 만다. 여러 가지로 날이 선 나는 그날따라 유달리 친절한 기사 아저씨에게 위로받는다. 매 정류장에 정차하실 때마다, 또 출발하실 때마다 손잡이를 꼭 잡으시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아저씨의 목소리. 한참을 와서 내리려고 뒷문으로 향하는데 아저씨가 그냥 앞문으로 내리라고 하신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아저씨의 인사에 아무 생각 없이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답했을 뿐인데 순간 아저씨의 눈이 아주 동그랗게 커진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안녕히 가세요"라며 인사를 건네셨다. 그렇게 기분이 조금 풀린다. 누군가에게 조그만 뿌듯함을 선사했다는 만족감으로. 그렇게 버스를 타고 집과 강남역을 오가는 동안 2017년이 영영 가버렸다.
2017년을 지나오면서 정신도 몸도 노곤노곤 여유로워진 것 같다. 힘을 빼고 돌아보니 여태는 과도하게 파이팅하며 항상 온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지냈단 사실이 놀라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불과 몇 개월 만에 과거의 나를 이해하기가 힘이 들어졌으니 역시 꽤나 변한 게 확실하다.
그저 아주 조금 내려놨을 뿐인데. 뭐든지 남들보다 빨리, 멀리까지 가야겠단 마음이 꺾여버린 탓에 자기합리화의 귀재인 나는 멈추지만 않는다면, 느리게라도 가기만 하면 괜찮다며 인생노선을 급수정했다. 욕심이 조금이나마 준 것 같은 기분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조우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연스럽게 욕망의 달성이라는 결과보다는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과정을 목적으로 두게 됐다.
그리고 나는 모든 면에서 많이 편안해졌다. 화장하지 않고는 아파트 1층의 별다방조차 가지 않던 나는 선크림만 바른 채 강남역을 활보한다. 대학생 때는 매일 다른 옷을 입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굴었는데 그렇게 신경 쓰다 보니 1년 전에 입은 옷까지 생생히 기억할 정도였다. 요즘은 엄마가 제발 옷 좀 갈아입으라 잔소리를 할 때까지 며칠이나 같은 옷으로 연명한다.
끝까지 놓지 못할 것 같던 물욕도 약간씩이나마 사그라든다. 예쁜 옷에 대한 욕심은 버리진 못했으나 적어도 입사 1년 차 때 구입한 나의 귀여운 붕붕이를 언젠가 외제차로 바꾸고야 말겠다던 생각은 우스워졌다. 차는 여름엔 시원하게, 겨울엔 따뜻하게 굴러다니기만 하면 그만이다. 나름 풀옵션인 나의 붕붕이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언제부턴가 검소한 생활이 멋져 보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돈이 많지 않아 다행이다. 얼핏 생각해보면, 돈이 많은 사람은 돈에 구애받지 않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다. 나 역시 돈이 많았다면 돈에 가장 큰 가치를 뒀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돈은-무척이나-소중하다. 그저 더 소중한 것들이 많을 뿐.) 부잣집 딸내미였다면 과연 돈보다 중요한 많은 것들을 놓치는 이들을 속으로 가엾이 여기며 우쭐댈 수 있었을까? 아마 높은 확률로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 '자기합리화의 귀재'인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먼지 뿌옇게 쌓인 나의 붕붕이에 보내는 찬사만 봐도 그렇다.) 돈이 많았다면 지금과는 반대로 물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우선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돈을 위해 삶을 바치는 사람을 비판할 순 없다.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처럼, 그들도 나를 불쌍히 여길 수 있다. 무례하게 군다면 이야긴 달라지지만. (뭐든지 두배로 갚아줄 테다.) 이런 의미에서 부자가 아닌 것은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솔직히 하고 싶은 일은 뭐든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부모님이 있는 나는 세상에 몇 없는 행운아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아직도 어리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편안해지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녀의 말대로 남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만족하니 모든 것이 조금 더 수월하다.
또, 툭하면 왜왜 거리던 나는 점점 모든 것에 "왜?"란 질문이 줄어든다.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 싶어 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왜,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싶어 약간의 뒤틀림에도 세상 제일 억울했는데. 내가 뭐 그리 잘났다고. 내가 뭐 그리 특별나다고. 이런 일이 굳이 나에게만 생기지 않아야 할 이유 따윈 없다. 물론, 꽤나 운이 좋은 편인 나는 여전히 일반적인 인간의 평균을 벗어나는 특이한 불행 같은 건 겪지 않았다. 다만 1년, 2년 살아나가다 보면, 이번 생에 적응해나가다 보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일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나 보다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2016년엔 명백히 불행이라 여겼던 일들이, 막상 2017년엔 별일 아니었듯.
최근 마음에 쏙 든 카페에 같이 가고 싶어 그녀를 집 앞까지 불러냈다. 그녀는 남에게 좋은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 지금이 좋다고 했다. 실로 그녀는 많이 행복해 보인다. 나도 여느 때보다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우리 둘 모두가 행복해서, 진심으로 기뻤다. 2017년의 마지막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온몸을 흔들며 이어폰에서 들리는 노래를 입으로 뻐끔거렸다. (너무 심하게 남의눈을 의식 않게 된 것도 문제긴 문제다. 나는 정말이지 중간이 없다.)
이렇게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하룻밤 자고 나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은 나날이 속력이 붙는다. 계절이 돌고 돌지 않았다면,-매일이 여름이거나 매일이 겨울이었다면-같은 일상을 한 템포 끊어가며 지난 시간을 의식적으로 돌아보긴 힘들었을 것 같다. 지나온 과거는 돌아보지 않으면 잊힌다. 매년 열심히 뒤돌아보면서 쌓아온 나의 지난 시간을 꼼꼼히 기억해야지.
또 이렇게 변한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뿌듯해하기도 하면서 한 해를 보낸다.
2018년에도 2017년처럼 무슨 일이든 웃어넘기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오늘의 신청곡.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
시린 겨울 맘 졸이던 합격자 발표날에 부둥켜안고서 이제는 고생 끝 행복이다.
내 세상이 왔다. 그땐 그랬지~
참 세상이란 만만치 않더군. 사는 건 하루하루가 전쟁이더군.
철없이 뜨거웠던 첫사랑의 쓰렸던 기억들도 이젠 안주거리.
딴에는 세상이 무너진다 모두 끝난 거다. 그땐 그랬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