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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Mar 10. 2016

03. 누구로 인해 애(愛)가 타는가?

나의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누구나 떠올리며 추억하는 그런 찬란한 시절이 한 번쯤은 있다.

제일 싫은 부류는 본인의 전성기가 그 누구보다 화려했다고 자위하며 타인을 업신여기는 꼴불견들인데 나 자신도 가끔은 꼴불견이 되기도 한다.

순댓국 한 그릇 사주며 주구장창 떠들어대는 전성기는 질소 포장일 가능성이 높다. 빈 깡통이 요란한데,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저 옛말이 진리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내 앞에 마주 앉은 친구나 후배가 순대를(실은 나를) 찢어 죽일 기세로 질겅질겅 씹어먹을 때가 있다. 너무나 심하게 과도한 질소에 억눌려 질식하기 전에 삼겹살이라도 사 먹여야겠다.


누군가 예전에 '지구가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그때의 나는 얼마나 당당히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던가.

하지만 곧, 쓰나미처럼 남자들에게 뻥뻥 차이며 질소를 쫙 빼다 못해 진공 포장된 닭가슴살 같은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thanks everyone. ^^ 다들 잘 먹고 잘살아라.)


자기愛가 지나치게 과다한 사람인지 아니면 낮은 자존감을 포장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인지 혼동될 때가 많은데 대화를 하다 보면 대략적으로나마 구별이 되기도 한다.

1. 관심사가 있는가?
2. 있다면, 본인의 겉치레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가?


관심사가 본인 차, 본인 몸매, 본인 옷매무새인 사람을 만나면 외로울 때가 많았다. 옆사람에게 본인의 차만큼도 관심을 안 줄 사람들, 생각보다 꽤 있다. 본인 차에 내가 치이면 차에 스크래치 났다고 설레발 칠 것 같은 사람도. 그런 사람들이 본인 차보다 타인을 사랑하게 되는 일은 기적에 가까우니 기대를 일찌감치 접는 게 이롭다.


나의 관심사가 차, 몸매, 머리, 집, 옷에 집중되어 있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나의 본질이 아닌 내가 소유한 물건으로 돌리고 싶은 걸 지도 모른다. 자신만만한 척 돌아다니지만 실은 화려함 뒤에 나 자신을 숨기고 싶을 만큼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기울인 노력에 비해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하는 건 함정. 그렇게라도 사랑받고 싶었다.


좋은 차 타면, 아름다워지면, 돈이 많아지면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걸.


실체 없는 질소를 언뜻 자신감과 자기愛인냥 포장하여 누구보다 당당히 보이는 사람들, 실은 본인을 하찮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종종 본인의 가장에 자신들도 깜빡 속아 넘어가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있단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불행 중 다행인 건지, 과거의 연인들로부터 뻐뻐뻐뻥 차이다 보니 본인을 돌아볼 수 있었고, 후회와 번뇌의 시간을 거쳐 진공포장 닭가슴살로 승천할 수 있었다. 불행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우겨본다.


나조차도 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자신이 없어 치장하기 바쁜데, 그 누가 진정한 나 따위를 보듬어줄까? 차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독수공방 외로이 그토록 사랑에 마지않던 스포츠차 안에서 혼자 질식사하지 않기 위해선 자발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인간으로 거듭나야지. 어쨌든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체력이 달려서 사람 만나는 것도 힘에 부치기도 한다.

- 산책도 좋고 (나의 질소를 때려잡아준 전 남자 친구들을 떠올리며),
- 독서도 좋고,
- 영화 관람도 좋고,
- 쇼핑도 좋고 (실연의 아픔을 치유해주실 지름신이시여, 눈물로 밤을 지새우다 카드값 고지서를 보는 순간 이성 또한 빠르게 돌아오니 일타쌍피),
- 카페에서 멍 때리는 것도 좋고, 다 좋다.
- 운동, 베이킹, 시장보기, 꽃꽂이, 일기 쓰기 (베스트다), 여행, 캠핑, 나들이, 드라이브, 악기 연주 등

경험상, 그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쌓이다 보면 전 남자 친구(들)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 즐기다 더 이상은 곱씹지 못하게 되는 시점이 도래한다. 어느 순간 그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놀란다. 관심을 끌고픈 대상이 사라진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즐기는지 깨닫는 순간이 온다.


타인의 주목을 위해 애쓰던 시간을 자신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는데 투자하면 그뿐이다.

독서를 (의외로) 사랑하는 나는, 책을 읽다 보니 그 책에 나온 기본 정보를 더 공부하고 싶어 논문을 찾아 읽게 되고, 논문을 읽다 보니 다양한 견해를 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해당 주제에 관한 나의 견해를 말할 수 있게 되기도 했고, 그런 순간의 내 모습이 참 뿌듯하고, 기뻤다. 그 책이 소설이라면, 배경이 되는 장소에 대해 알고 싶어 검색하게 되고, 언젠가 운 좋게 그 장소를 가게 되면 감동하고 감격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본질을 파악하기 시작하면 더욱 기발하고 멋진 생각을 내뿜고 싶고, 자신이 기특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당당해진다.

사랑하는 만큼, 나 자신에게 떳떳한 삶을 살고 싶다. 내 삶이 너무 소중해서 그 귀중한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고 싶다.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보는 눈이 있을 때에 잠깐 주의를 기울이면 될 일이다. 그리고 사회인이라면 대부분 남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어려운 것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
혼자 보는 일기장에 기록하기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는 것.
자신을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선행이라도 자신의 선행을 본인은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남들 눈에 훌륭하게 비치는 일이라도 실상이 그렇지 않다면 거짓과 위선의 질소가 내 눈에는 똑똑히 보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형편없어 보일 때, 남들이 나를 얼마만큼 띄워준들, 그런 평가들이 과연 그마만큼 커다란 의미가 있을까? 모두가 나를 추켜세워도, 자신이 그렇지 않음을 알기에 점점 더 질소를 채워 넣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구린내란 언젠가는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이고, 정체가 드러나는 그 순간,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얻어낸 타인의 사랑은 증발한다.


과대포장 시절, 과도한 자신감으로 재수 없단 소리 꽤나 들어 이미 수명은 필요 이상으로 확보 완료다.

맘 편히 먹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나를 진정 사랑해주는 사람 옆에서 장수(長壽)할 테다.


어떤 일을 하면서 살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결국에는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건 확실한 목표다. 보는 이 없더라도,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 알아주는 사람 없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을 주자. 한번 보고 안 볼 사람일지라도 예의 바르게 행동하자.


더 이상 남들이 나를 떠날까 애태우지 않으려 한다.

나는 되려 나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애가 탄다.


어쩌면 이제서야 비로소, 지구는 진정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구에 살아가는 인구의 수만큼 다양한 지구가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를.

서시 序詩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쓴 이글도, 드디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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