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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Nov 30. 2018

41. a free croissant.

어린 시절 기억 중 가장 소중한 조각 하나.


집 앞 야채트럭에서 엄마 심부름으로 오이를 샀는데 현금 200원이 부족했다. 다음에 드리겠다 약속하고 200원을 외상 하여 오이를 받아왔는데, 잊지 않고 며칠 뒤 아저씨께 200원을 갚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저씨는 이런 식으로 떼인 돈이 꽤나 되셨는지 어쨌는지 엄청 고마워하며 쩌렁쩌렁하게 나를 칭찬하셨고 이후로도 갈 때마다 오래도록 그때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목에 사족을 못쓰는 나는 그 순간이 참 기뻤다. 그리고 아마 영원토록 그 순간을 잊지 못할걸.


달마다 10,000원짜리 티브이 시청 쿠폰이 들어오는데, 그 쿠폰을 다 쓰는 경우는 드물다. 영화를 자주 보지 않기도 하고, 본다 하더라도 10,000원씩이나 결제할 일이 없기도 하고. 그리하여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철 지난 드라마를 결제해서 보고 있었다. 유치 짬뽕 스토리지만 이쁘고 잘생긴 주인공을 보는 맛이 있었는데, 보는 도중에 동생과 엄마가 차례로 집에 도착했다. 동생과 유치 찬란한 내용을 품평하면서 낄낄거렸다. 엄마는 이런 걸 도대체 왜 보는 거냐 한소리 했고.


별생각 없이 계속 보는데 동생이 별안간 말했다. "언니 이거 결제해서 보는 거다." 아주 가끔이지만 동생은 종종 도대체 그 저의를 알 수 없는 이런 류의 말을 툭 뱉는다. 애초에 이 드라마를 보게 된 이유는 동생이 원해서였고, 당시에 1,500원짜리를 결제하자는 동생을 만류하여 1,000원짜리 저화질로 결제하자고 제안한 건 나였다. 물론 동생은 1화 시청 이후 일절 보지 않았지만.


동생의 말에 엄마가 대답했다. "너는 밖에서만 사람들한테 잘하고 안에서는 순 지생각만 하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네." 나는 억울하고 황당해서 눈물이 솟구치지만 꿀꺽 삼킨다. 누군가 밖에서 나를 이런 식으로 매도한다면 굉장히 차분해지면서 극도로 이성적이 될텐데, 이상하게도 안에서는 극도로 감정적이 돼버린다. 물론 밖에선 이런 식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기도 하지만.


욱해버린 나는 버럭 한다. "내가 공짜 쿠폰으로 드라마 보다가 갑자기 그런 소리를 왜 들어야 하는데?"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그냥 기본적으로 너란 사람이 그렇단 소리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라도 저런 비난의 소리를 들어 마땅한 인간이라는 의미다.


내가 정말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하려 애쓴다.

1. 우선, 내가 밖에서는 정말 잘하는 인간인가부터 돌이켜본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꽤나 잘하는 편인 것 같은데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몇 없기에 인간관계가 굉장히 협소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내가 그들에게 하는 것보다 몇 배로 나에게 더 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애초에 받기를 훨씬 더 선호하는 욕심쟁이라 나란 인간은. 또, 내가 엄마나 동생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바깥엔 없는 만큼 그나마 그들에게 잘 보이려 제일 애쓰는 편이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든 말든 크게 애쓰지 않는다. (애쓰지 않아도 어지간하면 다들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며 산다.)


그러나 대부분의 갈등과 문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인간이 따로 있기 때문에 발생하지 싶다. 그 대상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안에서도 밖에서도 못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고, 따라서 밖에서는 정말 잘하는 인간이라는 비난은 50%쯤 부당하다.


2. 다음으로, 순 내 생각만 하고, 하고 싶은 대로 다하는지 돌이켜본다.

그러하다. 가타부타 길게 따질 필요도 없다. 난 정말 내 생각만 한다. 나의 우주는 내 생각 속에 갇혀 있고, 다른 세계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애초에 선천적으로 그렇게 생겨먹은 것 같은데, 나쁜 걸까? 나쁘진 않지만, 그들은 아마도 나의 우주를 관심 있게 살피려고 노력하는 만큼 서운한 게 당연한 것 같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이토록 자신의 내면으로만 깊숙이 파고들어가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들의 내면도 함께 고민하는 인간으로는 왜 성숙하지 못한 걸까. 같은 밥 먹고,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내 동생은 훨씬 더 어른스럽게 타인을 배려하는데 나는 왜 이토록 그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 쏟아붓는 인간으로 자라 버린 거지. 그러니까 엄마의 이런 비난이 100% 타당하다는 결론이 쉽사리 도출될 수밖에.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크롸쌍과 블루베리 파이가 굉장히 맛있는 그 카페는 개업 초창기에는 나의 아지트였는데, 요즘에는 서울시민의 아지트로 거듭난 턱에 너무나 붐벼 좀처럼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못한다. 지인의 선물을 살일이 있어 아침 일찍 드립 커피 두 세트를 사러 들렀다.


들른 김에 크롸쌍, 크림 크롸쌍, 블루베리 파이도 함께 샀다. 두 손 가득 귀여운 물개가 그려진 봉투를 들고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는데, 그제서야 카드 결제 문제가 도착한다. 11,300원. 드립 커피 한 세트가 20,000원이다. 두 세트를 샀으니 선물만 적어도 40,000원이다. 횡단보도 불은 초록불로 바뀌었고, 시간이 지나 초록 불은 이제 깜빡거리기 시작했는데 어느쪽으로도 발길을 떼지 못한채 굉장히 갈등했다.


결국, 발길을 돌려 카페로 향했다. 아르바이트 생의 하루치 일당을 꽁으로 먹을 순 없었다. 아니 정말 솔직히는 먹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하여 또다시 과거의 영광이 재현된다. 아르바이트 생은 수선스럽게 고맙다는 말을 쩌렁쩌렁 전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주목에 사족을 못쓰는 나는 또다시 못내 참 기쁘다.


그리하여 버터향이 그득한 크롸쌍을 하나 더 공짜로 선물 받았다. 별일 아니지만 모두가 이득을 얻는 선택을 내린 내 결정에 뿌듯해서 깡총깡총 뛰다시피 귀가한다.


나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붓는 노력은 아마도 딱 그만큼이다. 야채 장수 아저씨에게도, 카페 아르바이트생에게도 마땅히 갚아야 할 돈을 돌려준 이유는 그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내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실은 그렇게 감사받거나, 칭찬받을만한 일을 한건 아니다.


이런 이기적인 나를 그저 자식이라는 이유로, 언니라는 이유만으로 이토록이나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야겠다. (어떡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마음이라도 먹어본다.)


그래도 어찌됐든 이런 나라도 앞으로도 쭉 계속 사랑해주라 모두들! (수리수리 마수리~ 얍!)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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