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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Mar 31. 2016

05. 참을 수 없는 가족의 무거움.

그리고 후회는 무조건 도래할 것이다.

피아노 학원 재등록 (회비 납부 재촉) 문자가 날아들면, 방문 연습의 횟수가 현저히 떨어진다.

오늘 내가 들어가는 순간 카운터에 아무도 없길 간절히 바라보지만, 항상 방긋 웃으며 나를(내 카드를) 환대한다. (화장실도 안 가는 걸까?) 엄마 돈으로 멍석 깔아줄 때 열심히 다닐걸. 속이 쓰리다.

짧은 손가락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길 염원하며 가기 싫어 죽는 나를 위해 기꺼이 거금을 투자하신 어머니는 덩치가 산만해진 딸내미가 피아노를 구워 먹던 삶아먹던 이제 아무런 관심이 없다. 20만 원만큼 가벼워진 잔고로 나의 후회는 20배가 된다. ^^


이렇듯, 가족과 얽힌 모든 것들을 시간이 지나면 죄다 후회할 것만 같다.


타인의 판단이 유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옳고, 정확하고, 진리 및 실제와 일치하기 때문에 시인한다. 그리고 우리가 타인의 판단에 이러한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우리의 판단과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모든 문제는 그 누구도 아닌 가족의 판단이 우리의 판단과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모두들 살아온 인생과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만의 기준을 형성한다. '존경받을 만한 기준은 드물지언정, 존중받지 못할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철저한 타인이 나름의 기준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고, 얼마나 후회하는지는 내 알바 아니고 그리하여 무조건적인 존중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의 기준이 나와 다르면 결단코 의연하게 넘기지 못한다. 상대방의 기준이 옳지 않음을 설득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가족이라 그렇다. 더 나은 기준이라 믿는 내 기준을 상대방이 따름으로써 다 나은 판단을 내렸으면 하는 것이다. (언제나 의도는 좋다.) 


 철저한 타인의 입으로 들으면 너끈히 수긍하는 참견일지라도, 가족에게 듣는 순간 귓등으로도 안 들린다. (심지어 드라마 속 주인공의 친구가 주인공에게 해주는 조언도 가슴에 콕 박히는데 엄마가 하는 말은 안 듣잖아.) 가족이기에 더더욱 나의 생각과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해주길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만다. 당연한 동의와 전적인 공감을 원했던 이의 반발은 20배의 배신감으로 다가오고, 20배의 실망을 자아내며, 200배의 상처를 남긴다.


극도로 사소한 문제라도, 가족과 극도로 대립하는 순간, 극도로 예민해져 어떤 것도 사소하게 넘기지 못해 실망하고 상처 받는다. 가족이기에 지켜야 할 선이 애매하다. 엄마는 우리가 남이냐고 외치고, 나는 그렇다고 엄마가 나는 아니지 않느냐고 외친다. 


언젠가 나의 강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동생과 엄마에게 물은 적 있다.

☞ 동생: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책임감 있게 한다. 철두철미하다. 단점은 무심하다.
☞ 엄마: 정직하고 의지가 강하며 자존심도 강하다. 신의와 믿음이 두터운 편이고, 마음이 약하며 인정이 많고 정의롭다.
단점은 융통성이 없고, 본인이 관심 없는 일에는 너무 무신경해 주변 사람 속 터지게 한다.

묻지도 않은 단점을 두 사람 다 추가로 알려준 셈. 나는 무심한 게 분명하다.^^


"지금 네 주변에 있는 남자, 동기들한테 백날 잘해봐라, 언제까지고 네 옆에 있어줄 거라 생각하니?"

바깥에서는 배려 넘치는 여자 친구, 꽤나 인정머리 있는 인간으로 평가받는 우리는 왜 집안사람들 기대에는 전혀 부응하지 못할까?


그러나 당신이 내가 당한 재난에 대하여 어떠한 동류의식도 가지지 않거나 또는 나를 괴롭히고 있는 슬픔을 조금도 함께 나누어 가지지 않는다면, 또는 당신이 내가 당한 침해에 대해 전혀 의분을 느끼지 않는다면, 나를 화나게 만드는 분개를 조금도 함께 나누어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들을 주제로 더 이상 대화를 계속할 수 없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바깥에선 애인과 친구의 상황에 진정으로 공감 못할지언정, 그들이 원하는 진정 있는 리액션을 기꺼이 가장한다. 그러나 가족의 경우 리액션을 적절히 가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즉, '대화를 계속할 수 없다.'

그러지 않아도 영원히 내 옆에 있어주리란 오만방자한 믿음을 믿고 까분다. 엄마의 말마따나 바깥사람들은 '언제까지고' 옆에 있어주지 않을 것 같아 붙잡고픈 마음에 진심 없는 공감대 형성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식. 위선자.)


타인에게 가장된 리액션을 취하는 동기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옆에 붙잡아두기 위해서라면, 가족에게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내 가족의 불운과 행운에 주위 친구들이 가장된 리액션을 제공할지언정 나와 같은 깊이로 공감할 순 없을 테니.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한다. 그리고 물론 그와 똑같은 정도로 증오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증오다.
에쿠니 가오리 <울지 않는 아이>

쉽사리 토라져버린 뒤 남 대하듯 깍듯이 똑 부러지게 대하리라 바득바득 다짐하지만 3시간 뒤면 홀라당 까먹고 배고프다며 엄마에게 징징. 이 세상 이렇게 미운 사람이 없다가도 누구 하나라도 없으면 섭섭한 사람들.

누구보다 사랑해서, 누구보다 밉고, 누구한테 보다 모질고, 누구한테 보다 쉽사리 실망하고 마는데

그래도 또, 역시나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이겠지.


소리소리 지르다가도 모여 앉아 웃으며 밥을 함께 하는 사람들. 나에게 일어나는 그 모든 사소한 일들(오늘 모닝커피를 건너뛴 이유에서부터 평소보다 5분 늦게 일어난 이유까지)이 죄다 관심사인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 모두들 내 곁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욕 할지언정 내 옆에서 욕을 할 사람들. (음? 욕은 좀 안 들리게 떨어진 곳에서 부탁해.)


마음껏 미워해야지. 이것도 사랑이니까.

그러나 항상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 것.'

공감의 노력이 없다면 진정한 커뮤니케이션도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걸 밥상머리에서 동생과 함께 죄다 후회하게 될 것만 같다.

마음껏 후회해야지.

그래도 괜찮아, 사랑이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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