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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소리

by 안녕

엄마는 부지런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한 몸짓으로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냈다.

잠이 덜 깬 채 누워 눈을 부비고 있노라면

방 밖에선 언제나 소리가 들려왔다.


툭툭툭툭

탁탁타닥

보글보글


나는 그 소리가 참말로 좋았다.


엄마는 성실했다.


내가 결혼을 하는 그 날까지,

아니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집에 가는 날이면

일주일 전부터 몸을 꿈지럭거리며

나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곤 했다.


그러면 나는,

금요일 아침부터 행복했다.

저 멀리서부터 엄마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보글보글

탁탁타닥

툭툭툭툭


두 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한 집엔

작은 딸이 무얼 좋아할지 몰라

가득 차려놓은 밥상 너머로

엄마의 소리가 들려왔다.


- 왔니. 힘들지. 얼른 씻고 먹자.




어려선 행복해지고 싶어 오만데를 찾아다녔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맛있는 것을 부러 기다려 먹고

멋진 것을 찾아보았다.


남은 것이 없지 않았으나

때때로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다.

사람이 좋아 힘을 얻다가도

사람이 싫어 도망가고 싶은 순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찾아왔다.


채울수록 비워지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비워질 때 채울 수 있는 것이

내게는


엄마의 소리였다.


일요일 아침에 풍기는 카레 만드는 소리.

소풍날 새벽에 들리는 당근 자르는 소리.

지친 금요일 저녁 퇴근하는 딸을 위해 굽는 삼겹살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떤 일이든 괜찮을 것 같았다.




나이 어린 나의 비밀친구에게도

나의 소리를 남겨주고 싶었다.


라면밖에 못 끓이던 내가 요리를 시작한 것은

순전, 그 때문이었다.


내가 느낀 그 행복함을

나의 친구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잠이 덜 깬 아침에 들려오는,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맛있는 냄새와 함께 전해지는,

소리를.


엄마의 손맛은 닮지 못했지만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닮아 다행이었다.

끈기는 덤으로 있어 포기를 몰랐다.


매일 아침 따순밥 먹이고 싶어

1시간은 일찍 일어나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칙칙 치이익- 하고 밥 짓는 소리가 날 때면

부러 방문을 슬쩍 열어두기도 했다.


손이 많이 가는 카레를 만들고

휘휘 저으며 이제 일어나야지, 하며 깨운 적도 꽤 있다.

아마 내 몸에선 카레향이 났으리라.


좋아하는 김밥은 때를 가리지 않고

만들어 주었다. 당근, 계란, 햄만 들어간

단출한 김밥은 적당히 맛있었다.


속이 아플 때에는 부들부들한

계란찜을 만들어 밥에 비벼주었다.

싫으면서도 따박따박 받아먹는 입이 고맙고 예뻐

등을 두드려 주었다.


어릴 때, 엄마가 등을 두드리면 그게 참 아파서 싫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내 새끼 맛있게 잘 먹으면

신통해서 등을 두드리게 된다는 걸 알았다.




삶을 소리로 채운다는 것은

꽤나 멋들어진 일이었다.


무언가를 만들면서

이야기로 가득 채우는 삶이

때로는 몸의 소리, 물건의 소리로 채워지는 삶이

어쩐지 멋있어져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소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추신: 어쩐지 허름하면서도 일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부엌 사진이 딱인데 없네요.. 아쉬운 김에 이 사진이라도 곁들여 봅니다. 다들,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리를 갖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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