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엄청난 산을 넘었다.
6월 초부터 미친 듯이 달려온 일정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내 1학기 업무의 가장 큰 부담 중 하나였던 공개수업이 오늘 끝났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이 일기를 쓸 게 아니라 학습지도 만들고, 다른 일을 처리하는 게 맞지만 오늘만큼은 나의 이성을 누르고 감성을 마음껏 표현해야만 할 날이라, 이 일기를 쓰는데 10분에서 15분 정도를 할애할까 한다. 그만큼 글의 두서없음은... 감당하는 것으로.
자, 그럼 지금부터 잊지 못할 하루를 기록하기.
1. 나는야 수업의 자유로운 영혼
정말 내 수업에 모든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배움을 기록하며 나누어 준 적은 없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전체 모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나와, 1반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해 주셨다. 수업 직전까지 에어컨도 말썽이고 아이들도 어수선해서 걱정 많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열심히 참여해 주었다. 진행 직전까지 몰아치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나는 그 안에서 즐겁게 유영하며 수업을 이끌어 나갔다.
여러 가지 이유로 2022년부터 수업 시간에 아이패드를 들고 미러링해서 수업을 한다.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기도 하고, 졸거나 떠들거나 딴짓하는 아이들을 감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며, 개인적으로 애들이 맨날 "몇 쪽이에요? 어디예요?" 하는 게 싫어서다.
오늘도 작은 아이패드 미니를 들고 다니며 수업하는데 교탁에만 머물지 않고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내가, 조큼 멋있었다. 후훗.
2. 역시, 현장에 강한 1반.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필이면 오늘 비가 왔고 습했다. 1반의 에어컨은 작동을 멈추었으며 마침 2교시에 만난 우리 1반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미친 듯이 뿜어내고 있었다. 조용히 해, 이런 식으로 공개수업 하면 진짜... 어떡하냐? 선생님들한테 무례하게 굴면 가만 안 둔다? 라며 협박을 일삼기도 했다.
점심시간까지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웬걸. 짜식들. 실전에 강한 타입이었다. 평소였다면 힘들었을 수 있는 내용을 차분하게 들어주고 참여해 주는 모습에 난 감동. 원래 수업에 이 정도로 해주었다면 나는,
"얘들아. 감동이야. ㅠ.ㅠ."
"대박! 1반 대박이야..ㅠㅠ 진짜 막 선생님 지금 눈물 보여?"
"와... 진짜 내가 이러니까 1반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지."
하며 감정을 다 드러냈을 텐데, 주변에 선생님들이 너무 많으셔서 그런 주접은 떨지 못했다. 하나, 고마운 마음은 가득하다. 졸지 않고, 딴짓하지 않고 열심히 참여해 준 모두가 고마워서 내일 종례 때에는 소소한 선물을 줄 예정이다. 훗. (100% 사비라고 강조해야지! 가난한 선생님이 너희를 위해서 준 거라고... ㅎㅎ)
3. 따뜻한 말 한마디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돌아간 빈 교실에 선생님들끼리 모여 앉아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이들에게 어떤 배움이 있었는지, 그때 교사는 어떻게 개입했는지 등등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내가 관찰하지 못한 부분을 잡아 주시고 기록해 주신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이하, 선생님들의 말을 기억나는 대로 옮겨 본다. (꼼꼼히 기록해 둔 것은 학교에 두고 왔다. ㅠ.ㅠ)
#. 어떤 아이가 강연을 들으면서 제 나름대로 이해한 내용을 기록하며 깊이 있게 사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한 아이가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기를 꺼려했는데 다른 친구들이 격려해서 발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접목된 수업이 참 좋았습니다.
#. 구글 설문지를 활용한 부분은 의미 있었고, 아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모둠 안에서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잘 조절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선생님께서 적절한 타이밍에 개입해 주셔서, 활동이 원활하게 된 것 같습니다.
#. 아이들이 절대 그 단어(수업의 핵심단어!)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 선생님의 수업은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나면 수업 내용이 '개인화' 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아이들의 삶에 들어간다는 점이 좋아요. (이런 식의 표현이었다!)
#. 평소 조금 소란스러운 반 아이들인데 15분의 강연을 집중해서 듣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수업 디자인할 때 우려했던 부분이 잘 조절되어 진행된 것 같아 좋았습니다.
등등이 있었는데, 너무 감사하다. 내가 뭐라고, 이런 좋은 말을 들을 수 있는지 참. 새삼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스트레스 지수는 엄청난데(지금 생각해 보면 동시에 진행된 일이 몇 개인지?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공개하면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오늘이다.
4. 수업자의 성찰
이 협의회 말미에는 수업자의 성찰이 있었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멘트를 내가 하는 것인데, 너무 감사하고 뭉클한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제가, 원래 매일 일기를 쓰는데요. 오늘 선생님들께서 해주신 말씀이 너무 감사하고 좋아서, 오늘은 꼭 일기를 쓰겠습니다. (일동 웃음) 아! 그리고 마지막 설문을 훑어보았는데요. 아이들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 하나를 읽어드리며 수업자 성찰을 마치겠습니다.
- 사람마다 다른 정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정답을 듣고, 또 그 정답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오늘 제 수업을 통해 단 한 명이라도 마음속에 울림이 있었다면 전,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5. 그리고 집으로
오래 남는 감정이라 여운이다.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 지금 이 시간(밤 11시 40분)에 나는 일기를 쓴다. 아이들에게 늘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사라진 하루를 다시 떠올리는 일은, 귀찮은 몸 일으켜 세워 한 줄이라도 남기는 것보다 힘들다.
모든 선생님들께서 오늘은 무조건 쉬라, 고 조언하셨지만, 나는 오늘이 아니면 절대 남기지 못할 마음과 생각을 글로 남겨본다.
어쩌면 서툴고
어쩌면 오글거리지만
훗날 내가 정말 교단을 떠날 그 순간이 되면
언제고 다시 들춰 보고 싶을,
오늘을.
추신: 오늘 너무 정신없고 힘든 와중에 2반의 한 남학생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아이는 이 글을 못 보겠지만 무척 고맙다. 내일 맛있는 거 따로 챙겨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