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점의 불안 (1)

by 안녕

달력을 보니 어김없이 월요일이었다.

하필이면 시험을 보는 날이기도 했다. 월요일에 시험이라니.


“월요일에 네 과목 시험... 쌤, 진짜 우리 학교 너무 한 거 아녜요?”


아직 교실로 들어가기도 전인데 아이들의 불평은 이미 교실문 밖을 새어 나오고 있었다. ‘긴장하지 말고 시험 보라’는 식상한 응원을 남긴 채 교실을 서둘러 나왔다.




“선생님 저 시험 망했어요, 한강 갈래요, 물이 많이 차가울까요?”


하며 짐짓 진지하게 말을 하는 아이의 어깨를 툭 쳤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하는 표정도 잊지 않고서. 무려 4시간 동안 이어진 감독을 마치고 교무실로 급히 돌아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미세한 통증이 허리까지 올라왔다. 오롯이 서서 아이들을 관찰해야 하는 시험 감독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교무실 자리에 앉아 높디높은 파티션 뒤에 잠시만, 아주 잠시만 몸을 숨기고 싶었다. 종일 시달린 날은 30분 정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싶었으니까. 그 정도의 자유는 누려도 되는 거 아닌가. 솟아오른 파티션 속에 앉아 늘 듣던 음악을 재생했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오늘 하루가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오롯이 서서 아이들을 감독해야 하는 시험 감독은 힘들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평소 잘 몰랐던 아이들의 습관과 표정, 수업 시간에는 보지 못했던 녀석들의 ‘불안’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시간. 그중에서도 유독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3교시 수학 시간, 3학년 3반.

창가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민정이. 25번을 붙들고 어찌할 줄 몰라하던 얼굴, 불안하게 떨리는 손과 발, 그리고 종이 울린 뒤에도 제출하지 못했던 OMR카드까지.


민정이는 평소에 선생님의 시선을 놓치는 일이 없었다. 적어도 내 수업에서는. 내가 농담 삼아 던진 말까지 필기했다. 필기는 늘 빼곡했고 수행평가도 완벽했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녀석을 칭찬했다.


“3반은 민정이 보고 수업하잖아.”


나 역시 기특하고 예뻤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스물을 해내는 아이. 재능에 기대 성실함을 놓치지 않는 아이. 그러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하지만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학습지를 제출하려 교탁 앞으로 나올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에서, 학습지를 꼭 쥔 손톱 옆에 맺힌 붉은 점에서, 울퉁불퉁 부서진 손톱 끝에서, 나는 아주 익숙한 불안을 느끼곤 했다.


그것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종류의 불안이었다.




시험 끝난 후의 교실은 어수선했다.


“너 몇 점이야?”

“나? 이번 시험 망했어.”

“야, 오늘 피방(피시방) 갈래?”

“돈 내줌?”


따위의 말들은 교실 안을 떠다녔다. 점수를 확인하고 서명을 받아두어야 하는 나는 한 명, 한 명씩 교탁 앞으로 불러내고 있었다. 이윽고, 민정이의 차례였다.


95점. 나쁘지 않은 점수였다. 아니 오히려 좋은 축에 속했다. 아마 어려운 문제 한 개 정도를 틀렸으리라. 고생했다고, 애썼다고 말해줄 참이었다. 한데 밝아야 할 얼굴이 유난히 어두웠다.


심지어 제 점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대충 이름을 휘갈겨 쓴 후 자리로 돌아가 그만 책상에 엎드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야. 김민정! 너 하나 틀렸다고 우냐?”

“나는 50점이야.”

“왜 저래~ 너 그거 하나 틀려도 평균 99점이잖아.”

“하여튼 잘하는 것들이 더 해.”


아이들은 제각각 말을 쏟아냈다. 딴은 위로였을 텐데 딱히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울음소리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민정이는 퉁퉁 부은 눈을 하고는 화장실로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방과후 학교는 조용했다.

오후 4시, 교무실 앞 작은 공간, 안뜰에서 민정이를 만나기로 약속하고는 종일 신경이 쓰였다. 오지랖인가 싶다가도 퉁퉁 부은 눈을 잊기가 힘들었다. 아주 잠깐만, 딱 30분만 이야기하고 보낼 작정이었다.


- 똑똑


제 몸보다 큰 책가방을 짊어진 민정이가 들어왔다. 여전히 부은 눈을 하고선.


“따뜻한 물, 한 잔 줄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에게 머그컵을 내밀었다. 가만히 컵만 만지작 거리던 민정이는 짐짓 씩씩한 척 말을 시작했다.


“… 죄송해요…”


의아해하는 나를 쳐다보며 녀석은 힘을 주어 한 번 더,


“죄송해요… 선생님.”


하며 고개를 숙였다. 테이블 위로 눈물이 툭, 툭, 투욱, 떨어지고 있었다.


이럴 땐 어떤 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제 성에 차지 않는 결과였으리라. 다른 사람들은 잘 봤다고 칭찬해 주어도 들리지 않았을, 그러니까 내 노력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기다려 주기로 했다. 울고 싶은 마음 억누르지 않고 차라리 다 쏟아낼 수 있게 가만히,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위가 조용해졌다. 머그컵에 담긴 물로 이미 식어버릴 대로 식은 그즈음, 민정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래서 100점 맞고 싶었어요. 다른 건 몰라도 국어는 꼭… 국어 부장이잖아요.”


중간중간 울음과 함께 힘겹게 말을 토해냈다. 민정인 국어 부장으로서 받았던 칭찬에 보답하고 싶었다. 평소에 열심히 들은 수업에 좋은 결과를 얻고 싶은 마음에 밤을 새워 공부했고 100점을 목표로 스스로를 다그쳤다. 100점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었다. 다들 100점에 쳐주는 박수를 95점에는 보내지 않았으니까.


그게 민정이가 살아온 삶이었다.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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