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점의 불안(완)

by 안녕

따지자면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마치 K-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민정이에게는 위로는 세 살 터울의 공부를 잘하는 언니가, 아래로는 네 살 터울의 애교가 많은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으레 그렇듯 둘째의 위치는 불안한 것이었고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던 차별 속에 그늘진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내려온 사건이, 민정이를 움직이고 만 것이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처음으로 반에서 1등을 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시험을 보는지도 몇 점을 받았는지도 관심이 없던 엄마는 1/10이라고 쓰여있던 성적표를 보더니 그 다음날 바로 갖고 싶어 했던 MC스퀘어를 사다 주었다.



방이 하나 있으면 좋은데 내년에 이사 가기 전까지는 언니랑 방 쓰는 게 안타깝다며, 이 기계가 그렇게 집중이 잘 된다면서, 공부할 때뿐 아니라 잘 때도 쓰라며 건네주며 다정하게 등을 두드려 주는 엄마를 보며 민정이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갖고 싶은 물건을 가졌다는 기쁨보다, 엄마가 이제 나를 바라봐 준다는 사실에 마음이 움직이는 자신이 어쩐지 이상했다고, 했다.



“아이고. 우리 민정이가 나를 닮아 성실하고 끈기가 있어서 공부를 잘해.”

“민정이가 이럴 줄 나는 알아봤지. 그럼, 나는 알았지.”



하며 건네는 칭찬은 마음에 콕콕 박혀 버렸다. 좋은 성적을 받아 얻은 관심과 사랑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성적이 떨어지는 순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정도의 깊이였다. 마치 해변가에 아슬아슬하게 쌓아 놓은 모래성 같은.



1점에 연연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1점 때문에 평균 99점에서 98점이 되는 것을 민정이는 참을 수가 없었다. 전교 1등을 할 때 썼던 볼펜, 컴퓨터용 사인펜, 노트, 하다 못해 물컵까지. 모든 것을 그때와 같이 맞춰 놓아야지만 공부가 되었다. 입던 옷, 먹던 음식, 그리고 가던 길. 익숙함 속에 있어야만 안심이 되었다. 통제 가능한 모든 것을 통제했으니 원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나, 성적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내가 감독을 했던 수학은 꼭 100점을 맞아야 하는 과목이었다. 수학이 어렵다고 해서 어려운 살림에 과외까지 붙여준 엄마였다. 투자 대비 산출이 있을 때 유난히 반짝이던 엄마의 눈빛이 시험 도중에도 자꾸만 떠올랐다. 마지막까지 고민한 25번 문제에 빗금을 치는 순간 민정은 좌절했다. 전교 1등은 떠나갔고, 엄마의 사랑도 흩어질 것이 분명했으니.



겨우 이어가던 민정이는 말을 멈추었다. 가볍게 시작한 상담이 이렇게 무거워질 것이라고는 사실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괜찮아, 다음 시험이 있잖아, 1개 틀린 것도 잘한 것대 뭘. 수행평가 만점 아니었어? 하며 달래곤 초콜릿 하나 정도 쥐어주고 보낼 심산이었다. 나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시계는 이미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상담이란 것이 그랬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그 과정은 분 단위로 쪼개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래도록 묵힌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는 더더욱.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가만히 있는 것, 이따금씩 휴지나 수건 따위를 곁에 놓아주는 것 정도였다.



“그래도…”



민정이의 입술이 달싹이기 시작했다. 나는 행여나 끊길까 두려워 성급한 답을 내놓기 전에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개운하네요. 말로 뱉어내니까.”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든 민정이의 눈은 여전히 퉁퉁 부어있었다. 힘이 되는 말을 고르고 골라해주고 싶었는데 마음과 다른 말들만 쏟아져 나왔다.



“에고. 힘들었겠다. 참….”

“그러니까 도대체 시험이란 게 왜 있는 거냐고!”

“진짜 애들이 이렇게 고생하고 힘든데 말이야!”



이 쓸데없는 말들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은 잘 모르는 아이와의 상담, 어쩌다 알게 된 집안 사정, 깊은 속 이야기, 그리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정적을 이겨내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으니.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동안 아무도 없었거든요. 제 이야기 끝까지 들어준 사람.”



해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민정이는 고맙다고 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그러곤 내일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꾸벅, 인사를 하곤 안뜰을 나가버렸다.



녀석이 사라진 자리엔 이제는 차갑게 식어버린 머그컵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는 민정이와 보낸 1시간이 마치 방금 스쳐 지나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한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민정이에게 성적은 엄마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채워지지 못했다. 그만큼 깊어진 결핍은 녀석을 공허하게 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채우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공부였고 성적이었다. 높은 성적의 뒤에는 엄마의 사랑이 있었다. 2년 간 의심 없이 유지된 사랑이 깨지려고 한다. 불안은 증폭되고 강박은 심해질 것이었다. 열다섯 살부터 민정이가 믿어온 방식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것이었다. 민정이는 늘,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고 애써온 것이다.



나도 다를 바 없었다. 1998년, 삶의 변곡점을 지나며 가난해진 엄마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 성적이었다. 전교 1등, 전교 2등. 눈에 보이는 숫자는 엄마를 웃음 짓게 했다. 어이구, 내 새끼 정말 잘했어, 애썼어, 하는 그 소리가 좋아 힘든 줄을 모르고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매 순간 인정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사회에 나가보니 나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지천에 널려있었다. 교감, 교장 선생님, 동 교과 선생님, 부장 선생님, 그리고 학생들까지. 주변 모든 사람들은 나를 평가할 수 있었다.



“김지윤 선생님. 학부모 상담을 도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지윤선생님. 이걸 시험 문제라고 출제한 거예요?”

“솔직히 지윤선생님 수업, 별로지 않아? 진도도 느리고. 인강 듣는 게 낫지. 아. 시간 아까워. ”



아주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평가가 들려오면 심장이 터질 듯 불안했다. 내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같은 기분에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업무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사교성이 없는 것 같다, 동기에 비해 뒤쳐진다는 말이 들릴 때면 자취방에 홀로 앉아 맥주를 마시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곤 했다. 그 시절 내 손톱 옆의 붉은 점은 사라질 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단박에 깨달음을 얻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제 내 맘대로 살 테니 너나 잘하세요.”라고 친절한 금자씨처럼 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나이를 먹어가면서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여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그저 덜 아파하게 됐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그 전까지 주변에서 해주는 모든 말들은 바람에 쓸려 날아가 버리곤 했다.



“민정아.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마. 너는 너 자체로 소중해.”



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금의 내가 깨달은 것을 민정이에게 들려준다고 한들, 녀석이 직접 느끼지 않는 이상 의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도 분명 스스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올 것이니 그때까지는 묵묵히 곁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맞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했다. 20 대일수도, 나처럼 40 대일수도, 어쩌면 당장 내일에라도 찾아올 수 있는 그날까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면, 애초에 그런 성격이 못된다면 차라리 그 안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 그러니까 네 불안은 충분히 이해하고, 나 역시 그런 길을 걸어와서 무척 힘들었는데 결국은 나를 받아들이니 조금 낫더라고 말해주는 것을 잊지 않고 싶어졌다. 그 대상이 누구든 비슷한 고민을 겪는 누군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임엔 분명했다. 같은 불안에 빠져있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나도 그런 적 있어. 다 이해해. 별 거 아니야. 훌훌 털고 일어나.”라는 섣부른 위로 대신에 진심을 다한 침묵과 공감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일고야 말았다.



5시 30분. 모두가 퇴근한 교무실엔 형광등만이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컴퓨터 잠금 화면은 어지러이 돌아가고 있고, 꺼두지 못한 선풍기는 털털 거리며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교무수첩을 꺼냈다. 제멋대로 쓱쓱 그어진 메모 밑에 약간의 여백이 있었다.



나는, 가만히 펜을 들어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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