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하면 돼요 (1)

by 안녕

그러니까 나는 지금 또다시 안뜰에 앉아있는 것이다.



내 앞에 앉은 윤지는, 말없이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엄지손가락을 보건대 릴스, 아니면 쇼츠가 틀림없다. 갓 내린 드립 커피를 품고 있는 머그컵은 따뜻한 온기를 내뿜고 있지만, 나는 마실 수 없다. 마치 시험 시작종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나는 누구보다도 잔뜩 긴장한 채 윤지만을 바라보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며칠 전 윤지가 수아랑 다퉜다. 걱정되어 물어보니,



“걍 손절하면 돼요.”



하는 표정이 너무 편해 보여 생경했다. 다음 날 물어보니, 진짜 손절을 했다. 도대체 무슨 사정이기에 하루 만에 관계를 끝내는 것이 가능한 거지? 그래서 오늘, 윤지를 안뜰로 불렀다. 커피가 식더라도 상관없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하나였다.



“이거 보세요. 쌤. 걔가 먼저 시작했다고요!”



윤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까지 바들바들 떨며 내민 휴대폰 화면에는 수아의 인스타 계정이 떠 있었다. 누가 봐도 한 사람을 비아냥 거리는 듯한 메시지들. 끝도 없이 이어진 태그는 모두 윤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개오바 #예쁜척 #짜증 #어쩌라고 #나대지마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표현이 넘쳐나는 그곳에서 이미 윤지는 손절당해 마땅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씁쓸했다. 무엇이 여중생을 이토록 화나게, 비참하게 만든 것인가.



“너희 둘이 둘도 없는 단짝 아녔어?”

“헐. 소름. 쌤 그런 소리 마세요. 진짜 짜증 나니까.”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고 한다. 마침 둘이 똑같이 강아지를 키웠다. 저녁 먹고 만나 종종 산책을 했다. 그때만 해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 편하고 좋았단다. 행복하기까지 했다고.



하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묘하게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가 거슬렸다.



“그런 것도 몰라? 너 강아지 키울 때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 좀 다시 공부해야겠다, 그러면 짜장이 죽어.”



“너 말이 좀 심하다?” 고 대꾸하면, 돌아오는 말은 늘 한결같았다.

“ 그게 다 너랑 짜장이 위해서야. 나만큼 챙겨주는 사람 있어?”



그 말이 만능 키였다. 기울어진 추는 제자리로 돌아올 줄 몰랐고 어느 순간부터 수아는 윤지를 대놓고 무시했다.



“그래도 그동안 쌓인 정, 뭐 그런 게 있잖아. 3년 친구 아냐?”



윤지는 바쁘게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고 휴대폰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탁, 소리가 어찌나 크고 센지 머그컵에 담긴 커피가 흔들릴 정도.



“쌤. 그런 거 다 필요 없어요. 3년이면 뭘 해. 그중에 2년은 개무시당했는데요?”



평소의 윤지 답지 않았다. 선생님 앞이라면 애들끼리 자주 쓰는 욕설 한 마디 뱉지 않는 녀석. 지금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수아와 윤지의 담임으로 1년을 보냈다. 둘이 어떻게 친해졌는지, 또 얼마나 많은 추억이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이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여기에서 같이 먹었던 떡볶이가 몇 인분이야. 얘들아.



끊어질 듯한 인연의 줄을 자꾸만 이어주고 싶었다. 담임이었으니까. 아니 선생님이니까.



“그래도-“

“쌤. 수아랑 저 이제 끝이에요. 끝. 손절이라고요. 손절!”



단호한 윤지였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못을 박고 있었다. 판사의 판결과 꼭 같았다. 김수아와 이윤지는 3년 간의 우정을 쫑내고 손절했습니다. 그 어떤 중재와 개입 원치 않고요. 그냥 존중해 주세요. 탕, 탕, 탕.



“하루아침에, 그게 쉬워? 같은 반인데 안 불편해?”

“그냥 무시하면 돼요. 어차피 걔랑 잘 맞지도 않았거든요. 어차피 중3이고 고등학교 준비도 해야 하고. 쳇. 김수아. 내가 너보다 잘 나갈 거다 이거야.”



3학년 1반. 끽해야 20명도 안 되는 학급이다. 분명 학기 초에 같은 반 돼서 좋다던 녀석들이었다. 한데 불과 세 달도 안 되어서 끝? 손절?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컵을 만지작 거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에는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온다고 했다. 어떻게 하루 만에 그 모든 것을 지울 수가 있을까.



“윤지야. 쌤은 이렇게 생각-“



윤지의 눈은 분명 나를 향해 있지만, 시선은 이미 창밖에 가 있었다. 나는 짐짓 어른스러운 척 갖가지 이야기를 쏟아냈지만 윤지의 눈빛은 점점 갈 곳을 잃어가고 있었다. 연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던 녀석이 급기야 학원을 가야 한다며 멋쩍어할 때가 되어서야, 나는 황급히 녀석을 보내고 교무실로 도망쳤다.



분명 요즘 아이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유행하는 유튜브 채널, 밈 등을 알아두고 중간중간 아는 체를 하면 아이들이 좋아했으니.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의자에 기대어 앉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고, 나는, 어느새 열네 살의 나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한 순간 버림받았던 그 시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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