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전화를 끊고 나니
참아 왔던 속상함이 밀려왔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해결되지 못해,
내 마음 안에서 부유하던 것 같기도 했다.
딴은 다정한 엄마라고 생각했다.
직업도 직업인지라
누구보다도 관계를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개입해 주며
잘 들어주는 엄마라고 믿었다.
대부분은 맞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엔 빈틈이 있었다.
셋이서 어울리는 관계에서
한 명이 다른 한 명과 놀지 말라고 하는
그, 말도 안 되는 역학 관계.
익히 알고 있는 그 관계에
우리 아이가 놓이니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듣기만 해도 심장이 부르르 떨리고
마음이 오그라 들었다.
짐짓 어른스럽게 해결 방안을 주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건,
깊숙한 기억의 방 어딘가에 묻어 둔,
아주 어릴 적 기억 때문이었다.
적지 않은 횟수로 나는 소외당하기 싫어
소외를 하는 쪽을 택했다.
기가 센 아이들의 말을 따르면
내 안위는 확실히 보장되었기에
권력을 따라 움직였다.
평화는 달콤했으나, 소외는 공평했다.
어느 날 아침, 등교해 보니
따돌림의 주인공이 내가 되어있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의미 없이 만드는 모임을,
이유 없이 개설하는 카톡방을 경계했다.
사람이 모이면 말이 나오고
말이 나오면 좋고 싫음,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게 싫었다.
그런데 그 시절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의 아이가
비슷한 소용돌이에 휘말려있다.
작고 여린 마음속에 어떤 태풍이 지나갔을까.
일이 바쁘다고 일찍 재워 놓고 일하고 글 쓰는 동안
우리 딸의 마음밭엔 새싹 하나 돋아날 여유가 없진 않았을까.
드는 생각마다 눈물을 불러오니
마음이 붕 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세상 살이 관계가 제일 힘들다지만,
여자아이들 셋이 모이면 꼭 하나는 은근한 소외감을 느낀다지만
그걸 굳이 여덟 살에 알 필요는 없지 않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적절히 잘 보내는 법을
이해시키기에 우리 딸은 아직 친구라면 너무 좋고 잘 지내고 싶은
나이인데.
휴직을 할 것을 그랬나.
1년, 아니 다만 6개월이라도 학교를 쉬고
아이를 좀 더 돌볼 것을 그랬나.
그랬다면 아이가 남몰래 우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당장 내일 수업 준비를 시작해야 하고
금요일에 있을 PPT 발표 대본도 짜야하는데
모든 것은 잠시 미뤄두고,
곤히 잠든 아이의 방문을 열어
가만히 머리칼을 쓸어 올려 본다.
내일 아침엔 으스러지게 안아주리라고
다짐하면서.
내일 저녁엔 태권도장 앞에서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어주리라고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