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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꺼내 보면,

by 안녕

지난 7월 중순부터 3년 다이어리를 쓰고 있어요.

2025, 2026, 2027의 매일을 기록하는 다이어린데요.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샀는데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브런치에다 늘 일기를 쓰지만

사실, 진짜 속마음은 표현하기 어렵거든요.

아무래도 이곳은 어느 정도는 꾸며진 나를 보이는

곳이랄까요?


그런데 그 일기장엔 정말 제 솔직한 마음이

적히곤 합니다.

오늘 하루 학교에서 겪은 이야기,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혼자 생각한 것들,

제자들과 함께한 따뜻한 일들,

혹은 유니(딸 애칭)와 보낸 이런저런

소소한 일들을 적거든요.


처음엔 며칠 하다가 말겠지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저 지금 꾸준히 두 달 가까이 쓰고 있고요.

날이 갈수록 내용이 충실해지고

글씨도 예뻐집니다.

스르륵 넘겨보면

아,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하면서 추억하기에도 좋더라고요.


일기가 적인 두 달간의 시간만큼

제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 무언가를 해내고 말았네요.


어제는 (미리 공지했던 것처럼)

학교 축제가 있었고

저는 나름의 미션을 아주 열심히 수행했어요.

그 마음을 기록해 보려 하는데

괜스레 마음이 뭉클, 해집니다.

축제 전날, 전 주, 축제 당일,

그리고 축제 다음 날에 담긴 마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는 참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싶어서요.


이런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제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도했기 때문이겠죠?


따지고 보면 그런 것 같아요.

무언가를 시작할 때에 늘 망설임이 따라오잖아요.


이게 될까?

무리하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하면서요.

저는 주로, 세 번째 질문으로 스스로를 검열하는데요.

그 때문에 놓친 것들도 사실, 많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인생이란 건 한 번뿐이고

제 삶은 그들이 살아주지 않더라고요.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저는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도 없고요.


그러니까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질러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어느 순간

어디엔가 도착해 있고,

그곳엔 생각보다 큰 만족감이 있었어요.


사소한 하루가 쌓여 두 단치의 기록이 된 것처럼.

6월부터 준비한 노력이 쌓여 어제의 공연이 된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일단

뭐든 질러 보려고 합니다.

도전해 보고 부딪혀 보려고요.


제가 아끼는 제자 J 녀석이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칼을 꺼냈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고요.


저는 그 말을 바꿔 생각해 보려 합니다.

일단 칼을 꺼내 보자고요!

무를 썰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썰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축제 후기를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 이야기는 좀 길고 길어서

오늘 자정을 넘긴 시각에 올리게 될 것 같아요. :-)


날 좋은 가을입니다.

하루는 길지만

일 년은 짧게 느껴지는 요즘,

제 글을 읽는 독자님들의 하루가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과

유유히 흐르는 구름의 평온함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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