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을 하던 중이었어. 너는.
마침 나는 네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고,
너는 서운한 마음에
"엄마는 내 마음도 몰라 주고." 하며
울먹이기 시작했지.
시작된 눈물은 멈추질 않았어.
본능적으로 알았지.
네 눈물엔 무언가 사연이 있다고.
참지 말고 울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너는 꺼이꺼이꺼이, 울었지.
눈이 퉁퉁 붓도록
목이 갈라지도록.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면서.
다른 애들은 다 학원 한 개만 다니는데
나는 두 개나 다니고
피아노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운데.
어떤 언니가 틀린 거 보면서
"너는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놓고 다니는 거야!?"
라며 화내는 거 봤단 말이야.
무서워. 무섭다고.
엄마가 1년은 다녀야 한다고 해서
내가 꾹 참고 다니는 것도 모르고...
귀에 꽂힌 것은
'꾹 참고'와 '1년'.
무언갈 시작하면 조금만 하다 흥미를 잃고
그만두는 건 아니다 싶어
피아노를 시작할 때 했던 말을
6개월 동안 마음 깊이 담아두었구나,
그래서 힘들어도 말 못 하고 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먹먹해졌어.
참으며 배우는 것은
더 이상 배움이 아니니까.
그렇게 힘든데 꾹꾹 눌러가며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짜증 나던 감정은
어느새 안쓰러움으로 바뀌고
나는, 네 머리를 말려주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어.
일 하는 엄마라서 미안한 마음과,
하필이면 네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에
학교 돌봄 교실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
나의 불안을 자극했던 그때와,
처음엔 즐겁게 시작했던 피아노가
어느 순간부터 부담이 되었을 너를
진즉에 알아채지 못한 나의 무심함,
그리고 그만둬도 된다는 말 한마디에
세상 누구보다 편안하게 웃는
널 보며 밀려오는 안쓰러움.
모든 것이 합쳐져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흘러버리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적지 않은 힘이 들었어.
그래, 멈춰도 좋아.
아예 안 해도 좋아.
6개월이란 시간 동안 유니 너는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으니까.
즐겁게 연습하고 즐겼으니까.
그만둬도 괜찮아.
울먹임을 멈추지 못하는 널 토닥이며
생각했지.
아, 유니 너는 정말 마음 깊은 곳까지
나를 닮았구나.
시키는 대로 하려는,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가려는,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누르고
참으려는, 그 기질이 정말
나를 닮았구나.
다행히
너에겐 나라는 엄마가 있고
나는, 어쩌면 네가 닿을 수 있을
먼 미래의 너이니,
아마 너는 내가 그 옛날
사춘기 때 했던 고민을
털어놓을 대상 한 명은
확실히 있을 테니
안심해야 할까.
아니면 벗어던지고 싶고
극복하고 싶었던
그 힘들고 어려운 기질을
그대로 받은 너를 보며
마음으로 울어야 할까.
복잡해지는 마음을
잠시 덮은 채
나는 너와 스도쿠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어.
1부터 6까지의 수가
모든 칸에 한 번씩만 들어가야 한다는
단순한 법칙이
우리의 삶에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너는 어쩜 이리 나를 닮아
그렇게도 섬세해서
아플까.
그렇다면 나는
너의 섬세함의 원인이자
결과이니, 조금 더
주의 깊게
너를 봐야겠지.
그게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전부이겠지.
밤이 깊어 가.
나의 생각도.
함께.
2025. 10. 31. (금)의 일을
2025. 11. 2. (일)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