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 후에 보내는 편지

세상을 향해 날개짓 할 너에게

by 안녕

천일동안 연애하는 것은 길고도 긴 시간인데

천일동안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더라.


2021.7.18. 태어난 지 1000일이 되는 네게

앞으로 1000일이 지난 후에야 보여줄 수 있는 편지를 적어본다.




나비에게


아기집 발견하고 산모수첩 받던 게,

임신 중 시험 감독하다 저혈당 쇼크 와서 주저 않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너는 쑥쑥 자라 벌써 세돌을 바라보는 어린이가 되었네.


태어나던 날,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어.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싫어, 네가 태어나는 순간만큼은 햇살이 내리쬐길 바랐는데

다행히 네가 세상에 나오던 11시 41분은 비가 그치고 날이 개더라고.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태어난 너는

100일의 기적 따위는 무시하고, 오히려 더 우렁차게 울어재끼는 아기였지.

육아책에 의존하며 잠연관, 눕잠 등의 다양한 방법을 실패하던 나는

결국 너희 이모의 한 마디에 모든 걸 내려놓았어.


애가 기계냐?


새벽에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깨며 분유를 찾고

6개월부터 시작된 이앓이는 내 멘털을 와사삭 부서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꺄르륵 웃어주는 널 보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


너와 있는 낮 시간은 왜 그렇게 기어가는지.

네가 낮잠을 자는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지.


아기띠로 동기둥개 하며 널 재우고 나면

허리부터 어깨, 그리고 발바닥까지 아파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네가 잘 때 나도 자야 하는데 그럴 땐 꼭 웹툰을 보았고 (ㅎㅎ)

그러다 네가 깨면 '아..................' 한 숨과 함께

육아를 시작했지.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ㅎㅎ)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는 워킹'맘'이 아니라 '워킹'맘인 사람이야.

일하는 게 너무 좋고, 행복한 사람.


그래서 사실 돌 전까지는 너를 보며 마냥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현장에 나가서 부딪히며 일하고 결과물을 내는 게 훨씬 행복했지.

너와 있는 시간은 무의미한 느낌이었고, 언제나 반복되는 일상이 힘들더라고.

그때 몇 번이고 글을 쓰자, 그림을 그리자, 인스타를 하자 했지만 뜻대로 잘 안되더라고.

특히 인스타를 보면 너무나 완벽히 잘하는 엄마들을 보고 스트레스 받았지.

그래서 더 우울했는지도 모라.


게다가 강박적인 성격이 일상을 '규칙'으로 전부 만들어서 나를, 그리고 너를 힘들게 하더라.

지금이야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먹이지만 이유식 초기엔 정말 버겁더라.

위생, 영양, 그리고 맛까지 신경 써야 하는 이유식에 질려 나중에는 결국 시판 이유는 식을 먹였고.


24개월까지 TV를 보여주지 말라는 말을 지키려고

16개월까지는 클래식을 들으며 육아를 하다 보니, 우울감이 더욱 커지더라고.

지금은, 일어나자마자 시크릿 쥬쥬와 핑크퐁을 찾는 너지만.


말이 느리다고 걱정했지만 지금 누구보다 수다쟁이가 된 너니까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했다고 초조해하지 않을래.

언젠가 그 역시도 의젓하게 해결할 너라는 걸 아니까.


코로나 모기가 많아서 외출할 수 없다고 한 내 말을 그대로 믿고

몇 달째 집에서만 놀아도 군소리 없이 잘 지내는 네게 늘 고마워.


색종이를 다 잘게 잘게 잘라 던져놓고 짓궂은 표정으로 메롱~하며 뛰어가다가도

'이놈~. 엄마 빨간 괴물 된다'라고 하면 '엄마 기분 풀어요~'라며 다가와 안아주는

네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소리 지를 때도 있고, 정성스럽게 만든 소불고기를 그냥 다 뱉어버리기도 하며

목욕하지 않겠다고 벌거숭이가 된 채로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다가

구스 이불에 쉬야를 하는 너지만,


그런 네가 가끔은... 아주~~~ 가끔은 조금 많이 밉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게.


32개월을 보내고 있는 너.

그리고 32개월 차 엄마인 나.


앞으로 1000일, 10000일, 100000일이 지나더라도

영원히 네 엄마로 언제나 곁에 있어줄게.


나비야.

세상에 나가서 훨훨 날아.

언제나 네 곁엔 내가 든든하게 지켜줄 테니까.



*나비 : 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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