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R 검사를 또 받을 뻔했다.

슬며시 비껴간 12시 40분, 그날의 기록

by 안녕

"12시 40분경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드신 분들은 선제적으로 PCR 검사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급한 일을 마치고 잠시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메시지가 한 통 도착해 있었다. 따뜻하게 타 놓은 커피 한 잔 입에 댈 새도 없이 클릭하니, 마음은 무거워지고 몸은 바빠질 내용의 메시지였다. 바로, 회사 내 구성원 중에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이 있었던 것.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의 거리두기가 익숙해진지 2년째. 그동안 수많은 '확진자'들이 수치로 기록되었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숫자 '1'를 접한 것은 처음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하루 동안 움직인 궤적을 되짚었다.


불안한 마음은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리저리 물어 1명이 다녀간 흔적을 묻고 또 물었다. 그때, 또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가 다녀간 흔적을 시간대별로 기록한 것이었다. 아마도 오늘 아침까지는 자신의 상태를 전혀 몰랐을 '그'는 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일상적인 패턴으로 생활을 했다. 사무실, 회의실, 도서관 등.


다행히 나와는 접점이 거의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훑어보는 중에 딱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12시 40분. 구내식당.


평소에 구내식당엔 12시 20분에서 30분 사이가 가장 붐볐다. 배고픔에 내려온 사람들은 홀리듯 식판을 들고 제 몫의 밥과, 반찬과, 국을 담았다. 이상하게도 난 그런 '북적임'이 싫어 항상 남들보다 조금 늦게 내려가곤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점심시간 한가운데에서 살짝 비껴간 시간에 먹는 것이 좋았다. 약간의 여유, 소란스러움이 지나간 자리에서 느끼는 한적함이 좋아 그 시간에 즐겨 밥을 먹곤 했던 것이다. 정확히 5달 전까지, 도시락을 싸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만약에, 만약에 평소대로 였다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가지를 뻗고 뻗어 자라기 시작했다. 12시 40분이라는 아주 정확한 시간대와 평소 그 시간을 즐겨했던 내 모습이 겹치면서 생각의 나무는 멈출 줄 모르고 자라고 있었다. 잭과 콩나무의 그 나무처럼 하늘 높이 올라가 구름까지 뚫을 기세로.


아마도 나는 그 시간에 밥을 먹었을 것이다. 옆에, 혹은 앞에 앉은 동료들과 멋쩍은 인사를 하며, 간간히 대화를 나누며. 오늘은 메뉴가 별로네요. 그래도 국은 따뜻해서 좋다, 오늘 정말 춥지 않아요? 라며. 그리고 그다음 날인 나는 아마 그와 동선이 겹쳤다는 사실에 놀라며, 당장에 짐을 싸들고 선별 검사소로 달려갔을 것이고, PCR 검사를 받았을 것이다. 동거인인 남편과 4살짜리 딸까지도. 그리고 아마, 녀석은 한동안 어린이집을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셋은 다음 날 아침까지 휴대폰을 수시로 확인하며 기다렸을 것이다. [음성]이라는 두 글자가 박힌 메시지를.


이 모든 것이 그저 '상상'에 그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도시락' 덕분이었다. 그날, 12시 40분에 나 역시 밥을 먹었지만, 구내식당이 아니었고, 급식이 아니었다. 몇 달째 멈추지 않고 싸고 있는 도시락이었다. 그날, 그 시간에 나는 자주 가는 휴게실에서 밥을 먹었다. 누구도 잘 알지 못하는 공간에서, 몇 년 동안 부유하는 먼지만이 나를 반기는 진공의 공간에서, 나 혼자서. 어떤 상상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몰고 온다. 덕분에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가장 외로워질 때, 가장 안전해질 수 있었다.




코로나19는 2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바꾸었다.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이 바로 '식문화'가 아닐까 한다. 한국 특유의 '정'을 나누며 먹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있다. 11시 40분부터 북적이던 직장 근처 밥집엔 인적이 끊겼고, 구내식당엔 닿을 듯 닿지 않는 칸막이가 생겼으며, 업무의 연장선, 우리는 하나를 외치던 회식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신 '도시락'이 그 자리를 조금씩 차지하고 있다. 물론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해 있고.


그러다 보니 여태껏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식문화'가 어느 순간부터 하나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가령, 다 같이 먹는 찌개나 탕류에 국자 대신 숟가락을 넣어 떠먹는 것이나, 파스타 두 개, 샐러드 하나를 시켜놓고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나 하는 것들 말이다.


수십 년 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문화가 조금씩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태생이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탓에 친구들과 만나는 일, 만나서 밥을 먹는 일은 모두 스트레스가 되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대상은 일상의 공포로 다가왔고, 밥 한 끼 먹으며 사람들과 친해지던 과거의 나는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사각형의 식판 대신, 예쁘게 플레이팅 한 접시 대신, 20cm도 안 되는 작은 도시락이 앞에 놓이기 시작하자, 오히려 조금씩 안전해졌다. 아주 가끔, 외로움이 가득 차오를 때 오히려 조금씩 안심이 되었다. 무조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잠시 멈추고, 홀로 해낼 수 있게 생활하자, 미지의 공포가 차츰 옅어졌다.


고작 20cm도 안 되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도시락이 지금의 나를 보호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디작은 방패가 나를 단단히 지켜주는 것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멈출 수 없을 듯하다.






photo : Unsplash

By Mika Baume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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