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때려치우고 싶어요

by 안녕


뜨겁게 타올랐던 도시락을 향한 불씨가 꺼지려고 했다.

어느 날 문득 그 모든 게 귀찮아져 버린 것이다. 언제고 할 수 있다고, 재밌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일순간에 번거롭고, 귀찮고, 힘들게 하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안 좋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나쁘게만 보였다. 도시락은 왜 이렇게 무겁지? 가지고 다니기 너무 힘든데? 설거지는 또 왜 이렇게 많아, 라던 생각은 급기야 왜, 매일 같이 밥을 먹어야 하지?라는 근본적인 물음까지 다다르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많이 아팠다.

10월, 11월에 갑자기 일이 몰렸는데, 혼자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정도였다. 애를 재우며 같이 잠들어 버리면 새벽 4시나 5시에 일어나 못다 한 일을 마무리 지었다. 쏟아지는 잠, 케케묵은 피로를 해소하고자 빈 속에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니 위는 당연히 망가졌고, 긴장하고 일하며 굳건히 자리 잡은 거북목은 증상이 심해져 목을 옆으로 돌리지 못할 만큼 아팠다. 누가 건들기만 하면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거기에 2년 간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남편의 몸도 상해 가고 있었다. 나 어깨가 아파,라고 말하면 내가 더 아프다며 장난스레 받아친 과거가 미안해질 정도로 남편의 어깨는 아주 못쓸 상태가 되어있었다. 간당간당, 겨우 남아있는 힘줄이 모든 것을 지탱해주고 있는 상황. 그러다 보니 집안일의 상당수를 함께하던 남편의 손길이 끊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남편은 미안해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몸이 힘들긴 했지만) 문제는, '마음'에 있었다.


특히 세 식구가 저녁을 먹고 나면 설거지 거리가 수북히 쌓이는데 그 위에 오늘 먹은 점심 도시락을 얹고, 아이 어린이집 식판을 얹으면 왠지 설거지 거리가 두 배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아주 작은 도시락통일 뿐이었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도시락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한 동안 너무 힘들어서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할 때는 스트레스가 더 했다. 배부르게 먹고 나서, 결국 내일 도시락 반찬을 만들기 위해 앞치마를 둘러야 하는 것 자체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이미 설거지를 끝내 깨끗해진 싱크대에 굳이 다시 재료를 꺼내, '나'를 위한 도시락 반찬을 만드는 것을. 물론 이 모든 게 예전엔 매우 즐거웠지만, 몸과 마음이 지친 내겐 전혀 즐겁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편의점 음식은 싫어서 결국 꾸역꾸역 반찬을 만들면서 속으로 온갖가지 불평을 쏟아낸 적도 사실, 많다.


가지고 다니는 것은 또 어떤가. 휴대성을 고려해서 가장 가볍고 작은 것을 골랐지만 결국 이것저것 챙기면 에코백 하나가 가득 찼다. 처음엔 다양하게 담아 가니 좋았는데 나중엔 그 무게 자체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짜증이 났다. 왜 이렇게 무거워. 뭘 이렇게 많이 쌌어, 하면서. 내가 담은 도시락이 미워지고 버거워졌다. 즐거우려고 시작한, 아니 나를 정말 즐겁게 해 주었던 도시락 싸기가 하기 싫은 일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내가 재밌자고, 즐겁자고, 행복하자고 하는 건데 하나도 안 재밌고, 안 즐겁고, 안 행복해.

하든 안 하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아, 내가 하다가 내가 그만둔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 그냥 그만 해도 돼.


몸이 힘드니까 생각이 단순해졌다. 마음이 변할까 싶어 그다음 날,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급식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해, 다음 달부터는 급식을 먹겠다고 말을 하니 담당자는 알겠노라고, 다음 달부터는 구내식당 가셔서 드시면 된다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그때가 10월 말이었다. 당장 11월부터 자유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유. 20cm도 안 되는 작은 세상으로부터의 자유, 고작 3kg도 안 되는 적은 무게로부터의 자유!




도시락을 싸기로 결심한 것만큼이나 그만 두기로 결정한 이후의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당장 11월부터 급식을 쌀 필요가 없었다. 매일 같이 반찬을 고민할 필요도, 제철 과일이나 채소를 고르고 고를 필요도 없어졌다. 마치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소금을 짊어지고 가던 나귀가 물에 빠진 후, 제법 가뿐해진 무게에 놀라던 것처럼 내 몸은 꽤 많이 가뿐해질 참이었다.


다시 편해지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했다. 7월부터 8월, 9월, 그리고 10월까지 꾸준히 해 왔던 일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느낌이 들자 갑자기 의지가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나 싶어 실망스러웠다. 애초에 처음 도시락을 싸기로 했을 때 적어도 반년은 꾸준히 해보겠다 다짐했는데 고작 4개월 만에 무너지고 마는 거냐는,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 '도시락' 관련 주제에 관심을 갖고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도시락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참 즐거웠다. 4개월 동안 어릴 적 추억을 만나기도 하고, 친정 엄마를 느끼기도 했다. 가끔 브런치 메인에 글이 소개되면서 조회수 폭등을 겪기도 했고, 댓글을 보며 소소한 소통도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간 4개월의 기록은 꽤 깊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기억들이 큰 힘이 되어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만약 그 '힘'을 잃게 된다면? 다시 조금씩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고, 슬퍼질 것만 같았다. 도시락 싸기를 멈추면 앞으로 도시락에 대한 글은 쓰지 못할 테니까.




그냥 하루만 더 버텨볼까? 여태까지 해 온 게 아까우니까.


고민 끝에 하루만 더 해보자, 그러고도 힘들면 그만두자고 마음먹었다. 어쨌거나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일이니 정말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는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덜 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다행히 뭐든지 성실하게 하는 성격 덕에 '하루만'이라는 모토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음만 달래서는 안 될 것 같아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마침 날이 추워지기 시작했고, 따뜻한 국물이 필요해졌다. 값이 꽤 나가 선뜻 사지 못했던 도시락을 산다면 추운 날씨에도 따뜻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벼르고 벼르던 보온도시락을 하나 구매했다. 연한 분홍빛 도시락은 아담한 크기에 필요한 것은 다 있어 쓸모가 있었다. 막상 새 도시락을 받아 보니 괜스레 신바람이 났다.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드니, 어쩐지 다시 잘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하루만'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하지만 애써 산 보온 도시락은, 수납장 깊은 곳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photo : Unsplash by Mad Luth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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