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드려요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by 안녕


어제보다는 덜 추운 아침입니다.

사실 좀 전에 '따뜻한'이라고 썼다가 지워버렸답니다.

통근버스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발끝이 시린 것을 보면 적어도 '추운' 쪽이 더 확실한 것 같아서요.

지금 당신은 저보다는 좀 더 따뜻한 곳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른 아침이니, 아직 따뜻한 침대 안에서 좀 더 쉬셔요.

이미 일어나 있다면 향긋한 커피 한 잔 곁에 두고 보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놀라셨나요?

이런 말은 원래 본론부터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앞에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면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원래 성격과는 다르게 바로, 질러버렸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었던 당신에게 말이죠.

그리고 지금도 읽고 있는, 앞으로도 읽어 줄(?).


8년 전 어떤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5년 차가 되면 지금 열정, 순수함은 다 없어지고

그냥 그렇고 그런 직장인이 되어있을 거 아니냐고요.

그때는 그 사람의 말에 기분도 상한 데다

그럴 리 없다고 자신했기에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5년 차가 되자, 저는 예언대로 그렇고 그런 직장인이 되어있더군요.

'남들보다 잘하'고 싶었던 제가 어느 순간 '남들 하는 대로 하'는 사람이 된 거죠.

누군가가 제게 일을 넘길라치면, 손사래를 치며 방어하고

"그거 제 책임 아닌데요"라며 책임을 회피하더군요.

어쩌면 예전에 제게 독설을 날린 사람은 예지력이 있는지도 모르죠.


당연히 하루하루가 재미없었습니다.

어떤 변화도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지속되자 몸이 아프더군요.

왜,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이곳에서 뭘 할 수 있을까,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녔지만 딱히, 답은 없었습니다.

그저 돈을 받기 위해 조직의 일원이 되어 제 역할을 해내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다 시작한 것이 브런치입니다.

작가 신청을 무려 1번에 통과받은 날의 아침을 잊지 못합니다.

1월 말이었고요. 저는 아이와 청소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잉- 브런치의 알림은 제가 작가가 되었다고 알려주었고,

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딸! 엄마 작가래! 오빠! 나 작가 됐어!라고요.

(물론, 그 후에 '작가'의 '덫'에 빠져, 마음고생도 혼자서 많이 했지요.^^)


그 후부터 조금씩 하루가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 어떤 제목을 지어볼까 하며 제가 생각을 하고 있더라니까요?

지하철을 타고, 저 멀리 서울의 대학병원에 가는 길에도

퇴근길에 들린 와플 가게에서 와플을 기다리면서도

계속에서 '쓸' 거리를 찾고 있더라고요.

회색빛이었던 일상이 점점 제 색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마음을 쏟아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바로, 글쓰기였죠.


하지만, 인생이 어디 생각처럼 쉽게 쉽게 흘러가나요.

어쩐지 글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보는 일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이는 '브런치'의 글은

자꾸만 조회수에, 라이킷 수에 집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것에 꽤나 집착하는 편인 저는, '숫자'에 무뎌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 '숫자'에 반응하거든요.


중간에 그만 쓸까 생각한 적 많습니다.

어차피 읽어주지도 않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 까짓게 무슨 글이냐며, 애초에 시작하지 말 걸 그랬다며,

심술을 부린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꾸준히 제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제가 언제 글을 올리든지 꼭, 확인해주고

라이킷, 꾸욱, 눌러주는 분들 말이죠.

글을 올리고 한 참 뒤에

민트색 알람을 찾아 들어가 보면

항상 제 글을 읽어주는 그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라이킷' 하나가 왠지 제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요.

잘 보고 있습니다, 라고요.

(물론 이것은 제 상상입니다. 저는 이렇게나 엉뚱한 상상을 조금 즐겨합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이였지만

우리는 만나고 있었던 겁니다.

제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진 않지만

절 찾아주는 그분들과는 연결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아직은 더 써도 될 것 같고,

더 쓰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의 글도

누군가에겐 '읽히고'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덕분에 저는 매일 같이 글을 쓰며

잿빛 마음을 좋아하는 색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덕분에 저는 요새 새로운 소재를 찾아

브런치 북을 만들어보려고 구상 중입니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내향적이고, 낯가림도 심하고, 어쩐지 소심하지만 엉뚱하기도 한

제 글을 읽어주어서 고맙다고요.


사는 게 바쁜데

주어진 하루가 너무 짧아

미처 다 읽지 못한 당신의 글을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앞으로도 이렇게

우리 글로 이렇게

서로 꾸준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평온하길 바랍니다.


- 안녕 드림 -



photo : Unsplash

by Wilhelm Gun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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