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결산 보고서 (feat. 내맘대로)
기록하지 않은 삶은 휘발된다. 아주 작은 낙서, 기록이 쌓이고 쌓여 훗날 추억할 거리를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20대 때에는 매년 12월 즈음 다이어리를 사서, 한 해를 정리하고 준비하곤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따로 시간을 내는 게 힘들어지고, 짧은 글 한 줄 적기도 어려워졌다. 워킹맘이 되고는 더욱 심해졌고.
하루를 쪼개고 쪼개 살아가는, 이토록 숨차고 바쁘고 벅찬 삶 속에서 기록하는 짧은 순간마저 삭제하고 만다면 내 삶은 아마 더 각박해질지 모른다. 더 잘 기록하고, 더 많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 나름의 힐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누군가가 객관적으로 분석해 준 보고서도 의미 있고 좋지만, 한 해를 보나기 직전에 내 스스로 정리해보는 1년도 의미 있을 듯하여, 만들어 보았다. 2021 결산 보고서! 오로지 내 마음대로!!
1) 브런치 작가가 된 것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몇 안 되는 정말 잘한 일. 작년부터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던 내가 하루하루 '살아있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회사의 부품이 아니라 오롯이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걸 느끼게 해 준 공간이다. 덕분에 난 글 쓰는 게 더욱 좋아졌으며, 꼭 책 한 권을 내보고 싶다는 욕심까지도 생겼다.
2) 요리를 하며, 도시락을 싸며
요리하는 것도, 먹는 것도, 설거지도 귀찮아서 늘 컵라면에 김밥 한 줄로 만족하던 내가 요리를 시작했다. 그 전에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21년이 처음. 요리책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보며 밑반찬을 만들다가 급기야 도시락까지 꾸준히 싸오면서 내가 느낀 것은, '요리'에는 만든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요리를 하며, 회사에서 다치고 다친 마음을 치유받았다는 것. (언젠가는 베이킹까지, 해보리라!)
3) 하루를 쪼개고 쪼개고 덧대고 덧대어
"정말 알차게 보내시네요"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이다. 일과표를 이야기하다가 내 하루를 듣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던 것. 맞다. 사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몸이 아파서 컨디션이 안 좋을 때를 제외하곤 매 순간 일을 하거나 글을 쓰며 살았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멀미가 나더라도, 즐겨 쓰는 아이패드가 없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글을 썼다. 일도 마찬가지. 아이를 재우고 새벽 3시부터 일을 하거나, 아예 4시에 일어나 그때부터 출근 때까지 일했던 적이 많다. 그래서, 2021년에 흘려보낸 시간들은 결코 아깝지 않다.
4) 가장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기
2020년엔 복직 초기에 코로나19 사태로 정신이 없는 한 해를 보냈다. 모든 게 오랜만인 내게 코로나19로 급변하는 환경은 꽤 큰 압박이었다. 회사에 나가면 위축되었고, 내 할 일을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에서도 육아로 정신없는 남편의 마음을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내가 제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아주 큰 사건을 계기로,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만 바라보다 결국 가장 소중한 사람의 마음이 썩어가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남편의 마음을 읽고자 노력했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회사에서도 닫힌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풀었다. 같은 사무실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때로는 부당한 지시에 툴툴거리기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1) 조회수를 얻고, 건강을 잃었다.
열심히 산만큼 결과는 좋았으나, 자주 아팠다. 기초 체력이 약한데 욕심이 많아 몸을 혹사시킨 적이 많았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내과에서 수액도 맞아보고, 갑자기 병가, 연가를 썼던 적도 종종 있다. 아프니 삐딱해져 주변 사람들에게 툴툴 댄 적도 꽤 있는 것 같다. 겨우 회복하고 나서도 정신 못 차리고 또 미친 듯이 몰아치다가 남편에게 많이 혼났다. 곧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하는데 조금 걱정이다.
2) 커피와 밀가루의 노예
커피와 밀가루는 이성적으로 제어가 안 된다. 기호 식품이 아니라 나에겐 생존 식품 정도인데, 특히 잠을 쫓고 일을 해야 할 때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꼭 커피가 필요했다. 웬만한 믹스 커피는 성에 안 차서 꼭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의 바닐라라테, 아메리카노를 '아이스'로 먹어야 기운이 났다. 거기다 밀가루는 어떻고. 라면, 국수, 만두 같은 밀가루에 환장한다. 뇌에 아예 주름이 생긴 것인지,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스-커피가 무조건 튀어나온다. 몹쓸 식습관인데 아직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돌아보니 참 열심히도 애쓰며 살았다. 올 초 나의 목표는 하루에 1cm씩만 더 나아지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못해도 200cm는 더 나아졌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