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엉망진창 작가의 서랍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적고 싶은 글도 많은데
정리가 안 돼
아침엔 육아 이야기를 썼으니
퇴근길엔 직장 이야기를 쓰려고
굳게 결심하고
남들처럼 나름대로 개요를 적어 보는데
이건 웬 걸
적을수록
특별한 구석이 하나 없는 것 같아
지워 버리고 말아
실은 1분도 안 되어서 후회할 짓을
어제도, 오늘도 하고 있어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글감을
놓칠세라 얼른 노트에 적어놓는데
어쩐지 머릿속에선 술술 써지던 글이
정작 키보드에선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
출근길 올림픽대로, 아니 퇴근길 외곽순환도로지
작가의 서랍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뒤죽박죽 엉망진창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삶의 조각들이 그 안에서만 있어서 다행이야
서랍 안에 이미 100개가 넘는 조각이
담겨 있다는 게 문제지만
왜 이러나 몰라
정말, 왜 이렇게 못 쓰나 몰라
글쓰기는 어렵다. 한 번 말하면 휘발되어 버리는 말하기와 달리 글쓰기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어렵다. 시간 순서대로 쓰는 일기조차도 의식의 흐름에 맡겨버리면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글이 되어 버린다. 아주 사적인 글도, 생각하는 것보다 힘이 든다. 하얀 백지에 까만 연필로 써 내려가는 것 자체가 순수하게 즐거웠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은 많아서 늘 글감을 찾아다녔다. 논리적인 분석력을 기반으로 하는 글은 원체 못쓰지만, 사소한 일상에서 소소한 감동을 찾아가는 글은 딱 취향 저격이라 살아가는 동안, 하루하루 보내는 동안 포착했던 순간들을 모두 기록해 두었다. 처음엔 노트에 하다가, 에버노트에 하다가, 이제는 브런치에 직접.
덕분에 작가의 서랍엔 아직 발행되지 않은, 숨결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 글감들이 100개 넘게 차지하고 있다. 아주 체계적인 사람이라면 글감을 다시 주제별로 묶어둘 테지만 나의 DNA엔 어쩐지 '정리' 항목이 없는 것 같다. 이래 저래 차곡차곡 쌓거나, 대충 밀어두었더니 이제는 어떤 글감을 적어 놨더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이 많은 것치고는 참 게으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글을 쓸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건데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지 않는 이상 모두 동일한 조건일 테니 결국 핑계일 뿐이다. 한참 전에 적은 글감으론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는 것도 썩 괜찮은 핑계인데, 어떤 사람들은 아주 오래된 경험으로도 값진 글을 써 내려가니 결국 능력이 부족한 탓이 된다.
그럼 욕심을 버려야 글쓰기를 쉬이, 편히 생각할 수 있게 되고 그래야 작가의 서랍에 담긴 뒤죽박죽 글감을 정리할 수 있을 거란 결론에 이르는데 어쩐지 '욕심'마저 버리면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아 차마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는 '정말 왜 이러나 몰라, 왜 이렇게 못쓰나 몰라'하며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지만 그 마음 들키기 싫어 그냥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 어렵다.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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