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로 가득 담은 마음을 나누다
어릴 때부터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적어주고 그랬다. 심지어 당시 보던 잡지 뒤에 펜팔 신청 같은 게 있었는데 편지를 주고받는 그 기분이 좋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펜팔 몇 번 했던 것 같다. 특히 방학 때에는 감성지수가 솟구쳐서 친한 친구들의 집 주소로 편지를 보낸 적도 많다. 그러면 몇 주 후에 답장이 담긴 편지 봉투가 우리 집 우체통에 담겨있었는데 그걸 보면 너무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고부턴 편지 쓸 일이 거의 없었다. 훌쩍 자라 어른이 되는 동안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버려 아주 멀리 있어도 언제든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 터치 몇 번이면 쉽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으니 굳이 편지를 쓸 필요가 없었다.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한 말을 고르고 골라 편지지에 조심스럽게 옮기다가 한 글자라도 틀리면 속상해 마지않는 편지 쓰기는 어느새 아주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며칠 전에 왠지 모르게 그 번거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것도 친구들이 아니라 '직장 동료'에게. 하루 중 절반 가까이 함께 하는 내 주변 동료들에게.
직장, 사회생활, 동료, 상사... 어떤 단어에서도 따뜻한 '정'을 느끼기 힘든 게 사실이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고 내 이득을 위해선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길 바라는 데다, 인사철이나 업무 문장 철이 되면 하나라도 덜 힘들기 위해 날을 세우는 곳이 직장 아닌가. 나 역시 10여 년 전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모습은 어느새 잃고 그저 눈에 띄지 않게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삭막한 직장 생활 속에서 나를 생각해주고, 아껴주고, 이해해 준 사람들이 있다. 갑작스럽게 아이가 아파 출근하지 못할 때, 복직 후 제대로 된 인수인계 없이 시작한 업무가 익숙하지 않아 실수를 해버렸을 때, 아기 돌봄으로 매번 일찍 퇴근 해 중요한 전달을 듣지 못할 때나, 가르치는 반 아이들 때문에 속상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때마다 같이 걱정해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고, 분노해준 사람들.
"얼른 가세요~걱정은 마시고요~"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 당연한 권리예요."
"걱정 마세요! 누구보다도 잘하고 있어요."
그들이 내게 2년 동안 해준 말들이 나를 버티게 했다. 따뜻한 위로와 공감 덕분에 무사히 연착륙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 말을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그들에게 내 마음 꾹꾹 눌러 담아 적어 보내고 싶어진 것이다. 카톡 메시지, 사내 메신저로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그래서 12월 28일부터 12월 30일까지 일 하는 틈틈이 손편지를 적었다. 처음에는 편지지 한 장도 겨우 채우지 않을까 했는데 쓰다 보니 두 장은 기본이고 어떤 분에게는 세 장까지도 썼다. 손가락은 아팠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상대를 생각하며 단어 하나, 표현 하나를 고르다 보니 편지지엔 금세 빼곡히 글자들이 들어찼다.
편지지 고이 접어 봉투에 넣고 풀로 단단히 붙였다. 내 마음을 드릴 이들을 직접 찾아뵈며, 부끄럽지만 조심스럽게 직접 편지를 전해 드렸다. 한결같이 놀라면서도 좋아하는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손편지라니! A4용지에 적힌 보고서만 보던 사이에 손편지라니! 마음은 먹기 쉬워도 실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어떤 분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또 어떤 분은 다음 날 그 편지가 너무 감동이었다면서, 아내분에게 보여드렸더니 참 말을 예쁘게 하는 분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도 했다. 그리고 모두들 조금씩 행복한 기분을 온 마음으로 느낀 것만 같았다.
아주 사소한 편지 한 통에 이토록 행복해질 수 있다니. 모두들 감동받는 것을 보니 나까지 행복해졌다. 맞다. 편지란 게 원래 이런 매력이 있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알 수 없는 뭉클함에 빠지는 것. 그래도 세상의 한 귀퉁이는 아직 따뜻하다고 믿게 만드는 것.
너무나 좋아하는 그들을 뒤로한 채 조금 빠른 퇴근을 하며 생각했다. 덕분에 행복해졌다면 그것 참 다행입니다,라고. 하지만 난 당신 덕분에 2년 넘게 늘 행복합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