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액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식습관 고치기 1단계 : 결국 답은 집밥이야

by 안녕

'화장실... 화장실...!'

수액을 다 맞고 일어서는데 속이 이상했다. 울렁거림과 메스꺼움 같은 느낌이 휘몰아치더니 금세라도 올라올 것만 같았다. 고생하셨다고, 이제 좀 괜찮으시냐는 간호사의 말에 대충 끄덕인 후 무작정 화장실을 찾았다. 마스크 속으로 넘어올 것 같은 그 어떤 것을 간신히 억누른 채 눈에 보이는 아무 칸에 들어간 후, 결국 또 토하고 말았다.


잔병치레는 늘 달고 살았던 나라 아픈 데는 이골이 나 있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보통 병원에서 수액을 1~2시간 정도 맞고 나면 괜찮아지고 며칠 내로 회복을 하는 편었는데 이번엔 수액을 맞고 나오자마자 다시 구토를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거의 2일 동안 물 밖에는 먹은 것이 없었는데 이제는 노란 위액까지 토해버리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는 상태에서의 구토는 상상조차 힘들 만큼 아프고, 쓰리고, 역했다.


버스를 겨우 잡아타고 차장에 기대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아플 이유가 무엇이었나, 뭘 잘 못 먹었기에 이렇게 꼬여버렸나, 하고. 시간을 되돌리니 그곳엔 베트남 고추가 잔뜩 들어간 닭볶음탕이, 맵고 짠 김치찌개가, 간식으로 만들어놓은 핫케이크 두어 조각, 의미 없이 먹은 과자, 하루에도 4잔씩 들이키는 차가운 얼음 커피, 그리고 수시로 먹는 라면, 빵, 국수, 습관적으로 가득 담는 밥 두 공기, 거기에 먹다 남긴 잡채가 있었다.




원래 폭식을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음식 욕심이 생겼다. 좋아하는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누구보다 많이, 빨리 먹고 싶어 허겁지겁 집어삼켰다. 게다가 여러 종류의 음식을 벌려 놓고 먹는 이상한 습관까지 있어 한 번 먹을 때 각종 음식을 다 차려놓고 먹었다. 양 꾸러미는 적은 놈이 먹고 싶은 것들을 한가득 차려 꾸역꾸역 먹다 보니 늘 가벼운 체기는 달고 살았던 것 같다.


실은 좋아하는 음식들도 하나같이 별로였다. 소울푸드는 라면과 김밥, 그리고 떡볶이. 이름만 들어도 소화가 어려운 음식들이다. 특히 라면은 컵라면, 봉지라면 가리지 않고 먹어 슈퍼에 가면 늘 꼭 몇 개는 집어 오는 녀석이었다. 분식집 가면 순대, 튀김은 기본이었으며 느끼할 때면 얼큰한 국물요리를 그렇게 좋아했다. 맑은 탕은 심심해서 꼭 자극적인 양념을 곁들여 먹어야만 속이 풀렸다. 불닭볶음면이 처음 나왔을 때, 한창 자취방에서 거의 매일 혼자 후루룩 하고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거기에 커피는 어떻고. 일리 캡슐을 하루에 4개는 기본으로 깠다. 샷 하나에 물 조금 넣고 얼음을 가득 넣으면 카페 느낌이 나서 기회만 닿으면 마셨다. '어? 남편이 빵을 사 왔네? 그럼 아이스커피 한 잔 타야지, 어? 조금 졸리네? 그럼 또 한 잔 타 먹어야지! 어? 애가 낮잠을 자네? 그럼 얼른 커피 마시면서 글을 좀 써볼까?' 이유는 만들기 나름이었다. 그냥 그 시원하고 쌉싸름한 커피의 맛이 좋아서 하루에 4잔은 기본으로 마셨다. 믹스, 원두 가릴 것 없이 속 들이부어 댔다.


그러다 보니 자주 아팠다. 원래 약한 위에 자극적인 것을 때려 부으니 자주 아플 수밖에. 매달 아파서 병원에 가서 약을 먹으며 그렇게 고생했으면서도 정신은 차리지 못했다. 조금만 나아지면 다시 라면, 김밥, 떡볶이, 커피를 달고 살았으니까. 한 달 정도 마구 먹다가 또 아프고, 약 먹고, 몸져누워있다가 나으면 또다시 라면, 김밥, 떡볶이, 튀김, 매운 거, 매운 거 뒤에 짠 거, 짠 거 뒤에 매운 거...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았고, 결국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위액까지 토하게 된 것이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앞으로 또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죽겠다 싶은 마음이 들자, 스멀스멀 그동안 숨어있던 마음의 소리가 피어올랐다. 넌, 천년만년 20대가 아니야, 계속 이렇게 먹다가는 진짜 큰일 난다, 라며 나를 뒤흔들었다. 그동안 무시했던 소리, 듣기 싫은 잔소리는 약한 몸의 틈을 타고 미친 듯이 퍼부어댔다. 라면도 끊고, 커피도 좀 끊고, 밀가루 음식 좀 그만 먹고, 짬뽕, 짜장 같이 기름기 많은 음식, 치킨 같은 것도 이젠 그만 먹어! 따위의 말은 마치 엄마처럼 등짝 한 대 치는 것 같은 강한 울림을 주었다.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 포카리 스웨트로 겨우 목을 축이고 주위를 둘러봤다. 꼬박 이틀 아파 몸져누워있는 동안 집은 엉망이었다. 목욕한 번 못한 아이는 꼬질꼬질한 내복을 며칠 째 입고 있었고 장난감과 과자 부스러기, 플레이도우 따위가 널브러져 있는 거실은 난장판이었으며 싱크대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그대로 남은 배달음식 용기와 그릇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 와중에 흰 죽을 만들고 있는 이유식 밥솥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한 식습관을 고쳐보자고. 대신 한 번에 잔뜩 고치려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고쳐보자고. 조금씩 천천히 고쳐보면 한 달에 한 번씩 꼭 오는 위 통증은 사라질 거라고. 그러면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마침 아직은 결심을 해도 왠지 모를 힘이 생기는 1월이었다. 없는 힘을 짜내어 앞치마를 두르고 일어났다. 괜찮냐며 이제는 안 아프냐며 품에 안기는 딸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밀가루'를 '줄여'보자!'


엄마의 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꼭 끌어 안긴 딸의 품은 참, 따뜻했다. 덕분에 잔뜩 고생한 위까지도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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