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닿을 수 없는 섬이 있어서
늦 봄, 아니 초여름의 시작이긴 했으나 덥진 않았다. 바람은 적당했고 햇살도 너그러웠다. 기분 좋은 꽃 향기까지 더해졌으니 그날은 객관적으로 꽤나 좋은 계절이자 좋은 날씨였음엔 분명했다. 2월부터 5월까지. 무려 4개월 간 비어있던 교실 속 먼지들이 가볍게 부유하기 좋은 날씨. 예전 같았다면 이제 충분히 친해진 아이들이 시끌벅적 떠들며 "쌤, 오늘 놀아요~~", "첫사랑 이야기해주세요!!"라며 까불거리기 딱, 맞는 날씨. 묘한 나른함과 적당한 생기가 학교를 감싸고도는 그런.
세상은 우리 보고 이제 '만나도 된다'라고 했지만 정작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여지지 못한 채로 '학교', 그리고 교실이라는 공간에 던져지고 말았다. 물론 온라인 수업으로 두어 달 가까이 만난 아이들과 나는 서로 모르는 사이보다는 아는 사이에 가까웠지만 적어도 <어린 왕자> 속 여우의 말처럼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박에 없는 존재'가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언제든 학원 선생님으로 대체될 수 있는 나와 다른 반 아이와 도통 구분되지 않은 아이들이 무려 일주일에 4시간을 함께 해야만 하는 지옥 같은 시간에 갇혀버린 듯한 상황이 매일 반복됐다.
그도 그럴 것이 길들여질 겨를 자체가 없었다. 한 반에 35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총 4반. 150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줄 수가 없었다. 마스크로 얼굴의 삼분의 이 이상을 가린 아이들과 내가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시간표'에 나와있는 '국어'수업이라는 '정보' 뿐이었으니까. 게다가 겨우 익숙해질라치면 다시 또 2주의 차이가 생기곤 했다. 당시 근무했던 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서 한 학년씩 돌아가며 등교를 했기 때문에 1주일 정도 3학년이 등교하면 2주는 원격 수업으로 전환해 집에서 수업을 듣게 했기 때문이다.
수업 중 '웃음'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하얀 마스크 뒤에 숨겨진 표정을 읽어내기엔 35명, 70개의 눈망울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아직도 5월 27일 첫 수업이 기억난다. 개복치 같이 예민한 나는 전날 먹은 음식이 체해서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서 구토를 반복했고, 복직 후 처음 해보는 교실 수업에 판서하는 기술마저 서툴러서 칠판에 낙서하듯 학습 내용을 써주었다. 게다가 이름과 얼굴을 전혀 매치하지 못해 엉뚱한 아이를 보고 다른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허공만 응시하며 주절대다 끝 종이 쳤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아이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적막. 고요. 그리고 긴장과 불안. 분명한 것은 그날은 결코 더운 날씨는 아니었으나 내 등에선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과제형 수업을 해서 그런가 보다 싶기도 했다. (교사가 제작한 (혹은 교사가 준비한) 영상을 보고 난 후 학생들의 과제를 받고 학습 정도를 평가하는 수업으로 이해하고 1학기만 과제형 수업을 진행했다. 주로 댓글과 게시글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수업 방법이다.) 코로나 초기에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줌이나 미트 등의 화상 프로그램을 활용한 수업)이 부담이 되어 과제형으로 주로 수업했는데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이 한정적이다 보니 그런 문제가 생기는가 싶어 2학기를 앞둔 여름 방학 때 부랴부랴 쌍방향 수업을 준비하기도 했다.
2월에 1인 당 한 대씩 지원받은 노트북과, 담당 부서에서 단체로 구매해 준 펜 마우스, 그리고 '온라인 수업 판서 프로그램'(아이 캔 노트라는 무료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했다.) 등을 다운로드하여서 수업을 준비했다. 잘 쓰지 않는 PDF 파일, 펜 마우스 프로그램 등이 무척 어색했지만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엉성하나마 열심히 준비했다. 당시 난 제대로 배정받은 교실이 없어 늘 메뚜기처럼 노트북과 교재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수업을 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지 않았던 것은 쌍방향 수업을 하는 순간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아니 어쩌면 더 최악이기도 했다. 쌍방향 수업은 '실시간으로 송출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과제형 수업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수업 중이 치는 순간부터 끝 종이 울릴 때까지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은 "듣고 있니?", "뭐 하니?", "선생님 말 잘 들리니?"였다. 가끔 딴짓하는 아이들을 잡겠다고 랜덤으로 아이들을 시키면 오히려 상처를 받곤 했다. (온라인 수업 상황에선 어쩌면 당연한 거지만) 3~5초 정도의 적막을 뚫고 들리는 대답은 그나마 낫다. 10번 넘게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거나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방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걸 깨닫게 될 때면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자주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점점 굳어가는 내 표정이 실시간으로 송출됐을 테니까.
도구의 탓인가 싶어 아무리 열심히 온라인 수업 도구, 가령 멘티 미터라든가 패들렛이라든가 카훗이라든가, 하는 프로그램을 배워도 아이들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딩-'하는 입장 소리와 함께 수업이 시작되면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켠 내 얼굴만이 애써 말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 누구도 화면을 켜지 않았다. 간혹 가다 반 별로 두세 명 정도가 카메라를 켜 수업에 참여했는데 정면을 보여주는 아이는 없고, 대부분 천장이나 키보드나, 혹은 책장 따위를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르치는 3학년 아이들의 얼굴은 어느 날은 책장이었다가, 프로필 기본 사진이었다가, 아이유였다가, 가끔 반려동물이기도 했다. 게다가 온라인 소통에 능하다는 2007년 생들은 어쩐지 마이크를 켜고 대답하는 것을 무척 꺼려해 대부분 채팅으로만, 그것도 띄엄띄엄 대답을 해주었다. 내가 제일 많이 봤던 채팅은 "안녕하세요.", "네.", "아니오.", "안녕히 계세요."였다. 어떤 날엔 이런 대답조차도 안개 낀 바닷가처럼 희미하기도 했다.
1주일 동안의 대면 수업과, 다시 2주 간의 원격수업. 일 년간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고, 가까워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름 하나 제대로 외울 수 없는 암흑기. 그 시절을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소설 속 구절처럼 식상한 표현이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켜켜이 쌓여왔던 '감정'은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줄줄 흐르다 못해 터지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아마 2020년 12월이었던 것 같다. 꽤나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담당했던 중3 아이들 기말고사가 완전히 끝나고 원서 접수도 끝난 시기였다. 겨울 방학까지 남은 3주라는 시간 동안 계속 원격 수업을 해야만 했는데 어쨌거나 1년을 고생한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수업을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나름 자신감도 있는 수업이었다. 바로 7년 동안 다양한 제자를 통해 검증한 '소설 읽기' 수업.
솔직히 말하면 유난히 힘든 반의 수업이었다. 4개 반 중에서 가장 반응이 없는 반. 35명의 아이들 중 온라인 수업 때 마이크를 켜서 출석을 부르는 아이들은 4명도 되지 않는 반. 시험을 앞두고는 그나마 채팅으로 소통했는데 학년 말이 될수록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3명 정도로 줄었던 반 수업이었다. 그날도 아이들은 대답이 없었고, 질문에 대한 답은 드문, 드문 올라오고 있었다. 뭐랄까. 그냥 꾹 참고 읽으면 될 일이긴 했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텅 빈 교실. 남의 교실에서 히터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쓸쓸하다 못해 추운 그 교실에서 나 혼자 책을 읽고, 내 얼굴만 비추는 그 노트북 화면 속에서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상황을.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아이들은 아마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아니면 아예 밖에 있었을 수도 있는 그 상황을. 그때 느낀 그 처연함을. 그 초라함을. 갑자기 그만, 정말 처음으로 애들 앞에서 울고 말았다. 쿨해야 했는데, 의연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얘들아. 너희들.. 정말.. 너무.... 하..."
말을 떼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한 번 터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아, 잠깐만. 이게 아닌데. 라며 당황하는 내가 울먹거리자 당황한 아이들이 급하게 채팅을 하기 시작했다. 아녀요, 쌤, 듣고 있어요, 쌤 재밌어여, 등의 글들이 올라왔던 것 같은데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이크도 끄고, 카메라도 끄고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벌게진 눈을 해서는 아이들에게 애써 태연한 척 말하고 말았다. 이제 너희반에선 이런 건 그만하겠다고. 책 읽기 같은 재미없는 거 말고, 그냥 너희하고 싶은 거 하자고, 유튜브 보면서 그렇게 시간 보내자고. 아직도 그날 일을 기억하는 게 힘든 것을 보면 정말 큰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몇 가지 아쉬운 대목이 눈에 보인다. 먼저, 나는 그때 반드시 알았어야 할 사실을 놓쳤다. 아이들에게 수업은 선물이 아니라는 것. 하물며 책을 읽는다? 시험이 다 끝난 중3에게 책을 읽힌다? 그건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다음으론 2020년에 만난 아이들이 사실은 '코로나 시국'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 집에 있건 학교에 있건, 예측할 수 없는 모든 상황 속에서 아이들도 무척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수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아니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유능한 강의 실력도, 잘 짜인 수업 구성도, 핵심만 정리된 학습지도 아닌 인간적인 교감. 서로에 대한 믿음. '래포'라는 것을.
내가 흘린 눈물은 언제고 부서질지 모르는 모래성 같은 아이들과 내 사이에 그 어떤 '교감'이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는데, 그래서 그 섬에 가고 싶은 시인도 있다는데 나와 아이들 사이에 가로막힌 섬은 내가 절대로 갈 수 없는 섬이란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흘린 눈물의 의미를 다 알기도 전에 2020년은 흘러가고 있었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계속 계속 삶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Photo by Fabio Jock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