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무대뽀 정신도 괜찮아
코로나 시국 속 수업 상황은 언제나 살얼음을 걷는 듯 불안하고 힘들었지만 소통이 처참히 무너진 곳, 그저 학생과 교사가 '일로 만난 사이'처럼 느껴지는 곳에서도 '희망'이 싹트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치 길가 돌 틈,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흙에서도 노란 민들레꽃이 꽃을 핀 것처럼.
3학년 아이들과의 관계와 행정 업무 등 갖가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스트레스받던 나를 구워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었다.
순수함과 깨발랄을 장착한 1학년. 2016년도에 딱 한 번 가르쳐보고 다시는 맡고 싶지 않아 피하기만 했던 1학년 말이다. 지금은 중3이 되어버린 그 녀석들은 코로나 시국의 중학교 1학년 입학생으로 6월 8일에 학교에 처음 등교한, 비운의 학년이었다. 상큼 발랄한 중학교 1학년 생활의 절반을 집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보내야 했던 지라 학교에 등교하는 주간만 되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언제나 혈기왕성하게 보내던, 그런 녀석들이었다.
사실 1학년을 굉장히 힘들어하는 편이었다. 아니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1학년을 싫어하는 편이라고 해야 맞다. 화장실에 가도 돼요, 어디에 필기해요, 선생님 OO이가 점심시간에 놀렸어요, 따위의 시시콜콜한 질문을 견디기가 힘들어서다. 중3 입시를 견디는 게 낫지 중1은 절대 안 한다면서 이리저리 피하던 내가 결국 복직 전 길고 긴 전화 통화 끝에 2학기에 1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주제 선택 프로그램을 울며 겨자 먹기로 맡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냥 수업도 힘든데 주제 선택 프로그램? 부담이 두 배로 뛰었다. 딱히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도 없고, 특기도 없고, 취미도 없는 상태에, 1년 동안 신생아만 돌보다 온 내게 부담 1학년과의 수업, 래포라고는 1g도 없는 그들과의 수업은 그저 압박감만 200%였다. 그 때문인지 창의적인 걸 할 의욕도 없는 데다 독서토론보다는 글쓰기가 낫겠다 싶어 억지로 프로그램 만들었더랬다. 이름도 엄청 평범한 '이야기 창작반'으로. 이름만으로도 벌써 노잼으로 보이는 그런 수업을, 대충 만들어 이름만 걸어두고 어떻게든 버틸 요량이었다. 처음엔 분명 그랬다.
시간은 흘렀고 2학기가 되었다. 아이들은 여러 선생님들이 만든 프로그램 홍보 자료를 보고 원하는 주제 선택 프로그램을 1,2,3 지망까지 고를 수 있었다. 어차피 난, 1학년을 가르쳐 본 적도 없거니와 대부분의 아이들이 '글쓰기'를 죽도록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제발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이 너무 많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때의 나는 분명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개성 없는 피피티, 그리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선생님의 수업을 과연 누가 선택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배정된 아이들은 총 25명. 기대하지 않았던 '녀석'들은 그야말로 '반전' 덩어리였다. 3학년과 다르게 너무나 생기로운 아이들은 첫 수업이 원격 수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안녕!"이라고 외치는 내 목소리에 칼같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해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마이크를 켜고 대답을 해주는 아이도 있었다.
처음이었다. 구글 미트에서 기본 프로필 화면이 아닌, 책장 어딘가가 아닌, 아이들의 얼굴이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공허한 교실에서 내 목소리가 아닌,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린 것은. 거기에 첫 수업의 말미에, 아이들이 제출한 자기소개서는 내 안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내 수업 홍보자료를 보고 직접 선택해 들어온 아이들의 생각은 꽤나 진지했으며, 열의가 가득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상상력을 마음 것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자신만에 이야기를 만든다는 점에 흥미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종이에 팬을 들고 끄적이며 이야기를 써가면서 작가라는 꿈을 키워왔는데 학교에서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써보며 같이 꿈을 키우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기 때문.
개인적으로 글(팬픽)을 쓰고 있지만 더 꼼꼼하게 쓰고 싶었고 글을 소장하고 싶어서 이야기 창작반에 들어왔습니다. 주제 선택 이름이 이야기 창작반이라서.. 이야기 창작 글 쓰는 걸 기대하고 왔습니다.
원래 글 관련된 것에 관심이 엄청 많았는데 요즘 과제와 학교생활 때문에 책 읽을 시간도 글 쓸 시간도 없어 감을 많이 잃어 가다가 여기에 들어오면 글을 억지로라도 쓸 수 있을 것 같고 친구들이랑 같이 들어오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솔직히) 대충 지은 '이야기 창작'이란 이름에 흥미를 느끼고 정말 글을 쓰고 싶어서 온 아이들이었다. 평소에 팬픽을 즐겨 쓰거나, 이야기를 구성해 보기도 하며, 중학교에 올라와서 이것저것 수행평가, 학원 과제에 치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찰나에 이곳에서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들어오게 된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진심에 진심을 더한 아이들.
나 역시 진심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은 나도 코로나 따위는 집어치우고 진짜 마음을 다한 수업을 하고 싶었음을. 댓글이나 게시글로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목소리와 얼굴은 서로 확인하며 소통하는 수업을 하고 싶었음을. 1학기 동안 느꼈던 무의미한 '교사 1'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음을.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제출한 자기소개서(원격 수업에선 흔치 않은 일이다.)에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가득 가진 데다 책을 꼭 출판해보고 싶다고 찾아온 아이들과, 한 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으면 영혼까지도 불살라 버리는 INFJ의 선생님이 만나자 어마어마한 시너지가 발동했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다. 얘들아, 하면 아이들은 벌써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하고 채팅창에 다다다다- 글을 올렸으며, 내가 오늘은 시 짓기를 하자, 고 하면 아이들은 아싸!, 오예!,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올려 주었다. (물론 25명의 아이들이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
3학년 아이들과 실패했던 소설 읽기 수업도 여기선 대 성공이었다. <조커와 나>라는 소설집에 실린 <내게도 날개가 있었다>라는 작품을 함께 읽었는데 아이들은 등장인물의 행동과 상황에 몹시 몰입했으며 특히 악역의 행동 하나하나에 격하게 반응했다. 원격 수업 중임에도 모든 아이들이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공허한 외침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쯤은 채팅창의 반응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수업 덕분에 점점 삶의 활력까지 얻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쓸 때에도 아이들 덕을 많이 보았다. 자기소개서에서 썼던 것처럼 이미 글감을 어느 정도 갖고 있던 아이들은 정해진 주제보다는 자유주제를 선호했다. 자기 나름대로 만들어 둔 서사를 활용하여 막힘없이 글을 써내려 가곤 했다. 국어 국문학과에 다닐 때 소설을 한 번 써 본 적이 있다. 소설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으며 인물, 배경, 갈등을 설정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가 약간의 정보만 주면 알아서 척척, 제 나름의 이야기를 완성하곤 했다. 때로는 그 상상력이 부러울 정도로.
우리의 수업은 대면과 원격을 넘나들었다. 어디에서든 주춤대지 않았다. 오프라인에서 우리는 서로의 글을 읽고 일일이 평을 해주었고, 온라인에서는 구글 문서를 공유해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와 인물의 설정 등을 조언해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원격 수업에 익숙해진 녀석들은 내가 링크 하나만 공유해주면 알아서 자기의 위치를 찾아 제 몫의 글을 썼다. 그 글은 때로는 길었다, 때로는 짧았다, 때로는 제시간에 올라왔다, 때로는 하루 이틀 지나 올라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엄격한 절차 없이도 우리에겐 믿음이 있었다. 아이들은 언제고 제 이야기를 올릴 것이며, 나는 언제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있는 힘껏 읽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굳건히 쌓이자 강한 규칙은 소용없었다.
어째 본래 담당했던 3학년보다도 1학년과 수업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수요일 5,6교시. 재택근무 와중에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궁리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을까, 글쓰기 팁을 하나라도 더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무려 5시간의 통근거리를 무시하고 그곳으로 달려가 아이들을 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힘이 생기고 말았다. 신규교사 시절에만 반짝하다 사라진, 짙은 상처 뒤에 꽁꽁 싸매 두었던 또 다른 내가 나오고 만 것이다.
소설이라는 틀 속에 담긴 아이들의 이야기가 무척 새롭게 느껴진 건 통근 버스의 어둑한 조명 속에서 읽던 한 아이의 작품 때문이었다. 평범한 학원물이라 생각했던 이야기 속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의 과거가 들어있었다. 나중에 따로 물어봤더니 역시나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한 내용을 각색한 것이라고 했다. 주인공의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가여워서 읽는 내내 눈을 떼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A4 용지 수십 장에 가득 써 내려간 이야기는 사실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아직 치유하지 못한 자신의 내면을 달래기 위한 연고 같은 글들이었다.
25명의 아이들은 제각각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살아온 삶도, 생각도 다른 녀석들은 정말 다채로운 이야기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를 반복했다. 한 아이는 <아몬드>가 연상케 하는 내용을, 또 다른 아이는 소소한 학교 로맨스를, 어떤 아이는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를, 그리고 얌전해 보이던 아이는 <시그널> 못지않은 범죄 추리물을 쓰곤 했다. 통근 버스 안에서, 혹은 서재에서 아이들의 소설을 읽을 때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떠나 감탄했다. 그 시절의 나는 하지 못한 일을 녀석들은 너끈히 해내고 있었으니까.
모든 깨달음은 불현듯 찾아와 깊숙이 박히는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수업 시간엔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을까, 하고. 반대로 이 아이들은 다른 교과 수업 때 이렇게나 깊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고. 그러니까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과 같은 과목이 품지 못하는 자유로운 세상이 아이들 마음속 어디엔가에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어 종이에 옮기고 영원히 남길 수 있게 도와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확신이 된 순간.
아이들에게 그만, 선전포고를 하고 말았다.
우리가 쓴 글을 책으로 출판하겠다고. 너희들 이름을 실은 소설집을 만들어 보겠다고.
참고로 내가 가진 예산은 0원이었고 출판은 해본 적도 없었으며, 국어 교사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문법 실력에다 당시 24개월을 겨우 넘긴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글 꽤나 쓴다는 아이들과, 막무가내 정신과, 아직은 쓸만한 체력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맨 땅에 헤딩이 시작되었다.
추신 1: 맨 땅에 헤딩을 하게 한 원동력들 :-)
이야기 창작반의 홍보자료에서 자신이 쓴 글이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소개와 내가 워낙 책을 보는 것을 즐기기도 하고, 예전에 책을 만들게 된다면 쓸 수 있는 간단한 구성을 생각했기 때문에.
꿈이 작가. 팬픽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책을 만든다는 말에 기대하고 왔어요.
그리고 어설픈 나의 홍보자료 (이 자료가 아이들을 유인했다니! 착한 녀석들!)
추신 2: 아이들의 글들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제외하고는 일절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 더불어 그 시절 나와 함께 해준 25명의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Photo by Marcos Paulo Prad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