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한 정답

by 안녕

시계 초침조차 들리지 않았다. 앞에 놓인 찻 잔엔 갓 부은 따뜻한 물이 뿜어 내는 김만 모락모락 피어날 뿐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조용한 가운데 심장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분명 다 큰 어른임에도 어쩐지 나보다 어른을 만나 독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커다랗게 놓인 테이블과 넘어가는 해가 뿌려놓은 나른한 햇살, 푹신한 소파가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고 마주 본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이 닿을 때 즈음에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직접 쓴 소설이라고요? 어머나. 어쩜 이런 생각을..."




사연은 그랬다. 아이들과 출간한 <기억하다, 쓰다>라는 책을 본 연구부장님이 책 사진을 몰래 찍어 교직원 회의에서 공개한 것. 본디 조용하게, 티 안 나게, 아무도 모르게 사는 게 삶의 원칙이었던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되어 버린 것이다. 당황스럽고 놀랐지만 나쁘지 않았다. 책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모두가 놀라며 나를 쳐다보던 시선이 은근히 즐거웠다. 육아 때문에 늘 도망치듯 퇴근하는 사람에서 시간을 쪼개어 작품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은 꽤나 달콤하고 황홀했다.


교장 선생님은 작은 책 한 권에서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책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는 듯했다. 자꾸만 부족한 글이라고, 이렇게 환대를 받을 일이 아니라며 겸손하게 말하는 나에게(성격이 그렇다. 자랑을 대놓고 못하고 늘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고치질 못하는 고질적인 습관 중 하나.)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들의 글이 정말 그렇게 느껴진다"며, 아이들이 책 한 권을 만들어 냈다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다독여 주었다. 가치 있는 글은 가치 있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짧게 스쳐갔다.


바로 이어진 <이야기 창작반> 수업 시간에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입학 후 처음으로, 아니 어쩌면 평생 처음일 수 있는 교장선생님과의 만남은 아이들에게도 꽤나 긴장되면서도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며 책을 낸 다는 것이 살면서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를 이야기했고, 한 아이는 중2 때에도 이런 글쓰기 수업을 해보고 싶다,며 제 뜻을 밝혔다. 실은 <이야기 창작반>에 배정된 순간부터 출간을 하는 순간까지 가장 엉뚱해서 힘들게 했던 녀석이었다.


뒤에 서서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보며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슬금슬금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두근거림도, 떨림도, 불안함도 아니었다. 마음에도 색깔이 있다면 연한 파란색과 연한 분홍색이 섞여 아름다운 연보랏빛을 만들어 낸 것 같은 그런 감정이었다. 몽글몽글 올라오는 그것은 금세 나를 휩싸고 돌았다.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 "선생님의 수업은 재밌고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내뱉는 아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을 때마다 '묘령'의 감정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바로, '인정 욕구'였다.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는 소심한 관종이란 점을 인정해야 했다. 드러내는 것은 싫지만 (누군가에 의해) 드러나는 것은 좋아하고, 겸손한 척 하지만 사실은 내가 잘하는 것을 마음껏 떠벌리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 교장 선생님의 따스한 시선, 그리고 동료 교사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인정 욕구'를 채워주었다. 아이를 낳고 돌아와도, 휴직을 1년 했어도 나는 변함없이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분명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순간, 나를 막고 있던 껍질이 깨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덕분일까. 이후 수업은 무척이나 수월했다. 아이들은 나를 온전히 믿어주었고 나 역시 아이들을 온전히 믿어 주었다. 아이들은 첫 책을 만들어 냈다는 것에 엄청난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아쉬움을 느꼈다. 더 잘 만들 수 있었는데,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하는 마음들이 모이자 2차 책 출판에 대한 '요구'가 내게 닿았다. 안 될 이유가 없었다. 쓰겠다는 아이들과 펴내겠다는 내가 만났으니, 이번에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을 만들어 묵묵히 걸어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색다르게 구성해보고 싶었다. 2인, 혹은 3인으로 팀을 꾸려 공동 집필을 추천했다. 문체도 원하는 장르도 주제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시도해본 방법이었다. 단, 강제하진 않았다. 원래 성격이 뭘 강제하는 것을 싫어해서 최대한 자율적으로 선택하라고 했을 뿐이었는데 의외로 고르게 팀이 구성되었다. 역시나 혼자 작업하는 게 좋은 아이들도 있었고, 책 속에 담긴 글을 보고 나서 같이 작업해 보고 싶은 친구를 직접 섭외(?) 하는 아이도 있었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번은 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진(가명)이란 아이였는데 팀을 이룬 진수와 의견이 맞지 않아 갈등하는 과정에서 진수(가명)가 그동안 써 놓은 글을 다 지워버려 속상해 울고 있는 것이었다. 그 둘 사이에서 수빈(가명)이가 중재를 하느라 애먹는 과정을 옆에서 온전히 지켜본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의 작품은 <페인트>라는 단편으로 책에 실렸지만 그 단편을 볼 때마다 유진이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11월 중순. 종업식까지 대략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글을 쓰고 편집했다. 1차 출판에서 함께했던 편집부 아이들을 살살 꼬드겨서 2차 출판에도 힘을 보태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기꺼이 참여했으며 뛰어난 실력으로 큰 힘을 더해 주었다. 중간중간 피드백을 하고, 좋은 문장과 안 좋은 문장의 예시를 보며 제 글을 보는 눈을 기르고, 돌려 읽다 보니 겨울이 왔다. 가을에 만나 찬 바람 부는 겨울이 되는 동안 우리는 책 두 권을 출판했으며, 글로 만난 사이임에도 한층 두터워졌다.


마지막 책의 이름은 <첫 만남과 끝 만남>이었다.


아이들을 2학년으로 올려 보내고 수없이 생각했다. 나는 왜 그 아이들과 수업하는 게 재밌었을까. 나는 왜, 3학년 수업보다 1학년 수업이 훨씬 편했을까. 나는 왜 자꾸 그 아이들을 만나러 5시간을 투자해서 학교로, 학교로 가려고 했을까. 왜, 어린이집도 안 가는 딸이 나를 울며 찾아도 엄마는 수업해야 한다며 서재에 들어가 미트 화상회의에 접속해 아이들을 만났을까.


'래포'였다. 우리들 사이에 끈끈하게 얽힌 '정'이 나를 움직인 것이다. 글로 만나 소통하며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신뢰했다. 믿음은 쌓이고 쌓여 친근감으로 나아갔고, 그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단단한 뿌리를 내려 관계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모든 교육학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래포' 말이다.


그것은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를 앞둔 사이에서는 웬만해선 만들어지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시험을 치르기 전에 '글'로 만났다. 내 앞의 아이 판단할 때에 '학습지의 빈칸 유무' 대신에 '마음이 담겨 있는 글'로 알아간 것이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기나긴 시간 동안 밤을 새워 글을 나누며 얻은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힘든 모든 상황을 이겨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2020년 2학기가 그토록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꾸준히 행복해지고 싶었다. 교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좀 더 평안한 마음밭을 가꾸며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또, 밥벌이로서의 교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날 수많은 아이들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어졌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고, 뜨거웠던 우리 <이야기 창작반>은 끝이 났으며,

나는 이듬해 1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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