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맛'은 유전이 안 되나요?

엄마 없는 우리 집에서 엄마표 김밥 찾기

by 안녕

엄마는 성실한 주부였다.


언니와 내가 소풍 가던 날은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김밥에 들어갈 재료를 준비했다. 시금치, 당근, 어묵, 그리고 계란과 맛살, 햄까지 언뜻 보기엔 쉬워 보여도 직접 해보면 손이 많이 가는 속재료 준비가 끝나면 언니와 내가 일어났다.


“아직 안 돼. 조금만 기다려. 이따 소풍 가서 먹어야지 더 맛있지!”


일어나자마자 먹겠다고 달려드는 우리에게 엄마는 맛소금과 참기름, 깨로 양념을 한 흰 주먹밥을 손에 쥐어주었다. 갓 한 주먹밥은 참 달았다. 우리가 주먹밥을 먹고 있는 동안 엄마는 능숙한 솜씨로 김밥을 쌌다. 김발에 올려진 새까만 김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이 쭉쭉 펴졌다. 일회용 장갑도 없이 참 뜨거울 텐데, 엄마는 무심하게 툭툭 재료를 올렸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단무지는 부러 빼주면서 김밥 열 줄을 뚝딱 만들어냈다.


구경하며 침을 꼴깍 삼키는 언니와 나를 보며 엄마는 꼭 김밥 한 두 줄을 미리 썰어주었다. 당신은 꼭 꼬다리를 먹고 우리에겐 예쁜 몸통을 주었다. 언니와 내가 하나씩 집어가면 아직 입에 넣지도 않았는데


“맛있어? 어때?”


라며 물어보았다. 어떻게 맛이 없을 수 있을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딸들을 위해 재료를 하나하나 준비한 엄마의 마음이 담겼는데 말이다. 웃으면서


“너무 맛있어! 엄마!”


라고 말하는 내 모습을 보며 엄마는 흐뭇한 마음을 담아 소풍 도시락을 싸 주었다. 그렇게 유치원 때부터 엄마는 한 번을 빼놓지 않고 김밥을 싸주었다. 그래서인지 소풍날 나의 도시락 통은 언제나 다른 아이들보다도 더 대단한 것처럼 보였다. 누구도 받을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있으니까. 자랑하고 싶었고, 뿌듯했다. 엄마의 소풍 김밥은 내가 스무 살이 되어서야 사라졌다.




3년 전, 임신을 하고 나서 입덧이 찾아올 무렵. 갑자기 엄마가 싸준 김밥이 먹고 싶어 졌다.


“엄마. 나 갑자기 김밥이 먹고 싶은데. 뭐뭐 준비하면 돼?”

“아이고. 김밥을 사 먹지 뭘 또 해 먹냐.”

“아니, 엄마가 해 준 김밥이 먹고 싶은데 지금 엄마가 없잖아.”

“김발은 있어?”

“아니. 없어.”

“그럼 그것부터 사. 그게 있어야 잘 싸져. 밥은 고슬고슬하게 지어야 해. 질면 맛이 없어. 그리고 계란은…”


엄마의 지령을 따라 갖가지 재료를 산 후, 밥을 안쳤다. ‘백미’ 밥이 완성되었다는 말에 뚜껑을 열어보니 ‘고슬고슬’ 해야 할 밥은 질척거렸다. 계란지단은 간이 안되어 심심했고 누릇하게 타버렸다. 당근, 오이도 마찬가지. 그나마 햄이 좀 나았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노릇.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엄마 흉내를 낸다.


김발에 까맣고 질긴 김을 올린다. 그리고 흰 쌀 밥(조금 질척거리는)을 솔솔솔 편다. 계란, 햄, 당근, 오이, 어묵 등을 넣는다. 그리고 아래쪽부터 돌돌돌 말아 김발을 위로 쭉 당겨준 후 모양을 만들어본다. 김발 속에 숨겨진 완성된 김밥을 보니 썩 괜찮다. 그렇게 탄력이 붙은 나는 재료가 되는대로 열 줄을 장장 두 시간 걸려 뚝딱(?) 만들어버렸다.


군침이 돌았다. 얼른 먹어봐야지. 엄마가 시킨 대로 했으니 분명 엄마 맛이 날 거야. 엄마처럼 도마 위에 김밥을 올리고 참기름 쓱 바른 후, 칼로 조심스레 썰어본다. 어? 이게 아닌데? 김밥에 힘이 없는지 자꾸 무너지려고 한다. 겨우겨우 썰어 자세히 보니, 겉보기엔 멀쩡한데 재료랑 밥이 겉돌아서 김밥이 엉성하다. 맛은 괜찮겠지? ………. 엄마가 왜 사 먹으라고 했는지 알겠다. (엄마. 나... 간을 너무 약하게 했나 봐.)


그 날, 내가 나를 위해 김밥을 처음 만든 날. 문득 내가 잊고 살았던 그 옛날 수십 년 동안 소풍 김밥을 싸주던 엄마가 마음으로 다가왔다. 엄마가 ‘뚝딱’ 만들었다고 해서 김밥이 ‘뚝딱’ 만들어지는 간편 요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엄만 본인을 위한 김밥은 한 번도 먼저 싼 적도, 먹어본 적도 없다는 것이 이제야 정말 내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 김밥이 더 좋아졌다.



나는 김밥이 좋다.


출출할 때, 스트레스받을 때, 배가 고플 때, 뭔가 먹고 싶을 때, 나는 김밥을 먹는다. 노량진에서 공부를 할 때에도, 자취를 할 때에도, 신혼집으로 이사를 갔을 때에도, 내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은 김밥집과 '원픽'할 김밥 메뉴였다. 내 입에 맛는 김밥 한 줄 찾으면 그게 그렇게 행복하다. 요새도 남편이 육퇴 후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면 난 당당하게 말한다.


"당연히 김밥이지!"라고.


며칠 전 은행을 다녀오는 길에 동네 시장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을 샀다. 이사 온 동네에서 그나마 내가 '엄마표 김밥'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가게였다. 오랜만에 먹어보니, 흠. 이 맛이 아니다. 밥만 많고 전보다 속도 좀 더 부실해진 것 같다.(계란 값이 올라서일까?) '여기도 아니야'라며 마음속에 X를 그어본다. 아직도 나는 '김밥'이 고프다.


어쩌면 나는 미련하게도 동네 김밥집에서 그 옛날 엄마가 싸주던 엄마표 소풍 도시락 맛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그 맛을 찾진 못했지만.



추신 : 신이시여. 왜 저에겐 우리 엄마의 손맛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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