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2개로 충분히 행복해졌습니다.

늦은 밤 시작되는 엄마의 은밀한 취미

by 안녕
“엄마. 요요요. 아카. 아야. 도아도”


“뭐? 뽀로로, 크롱이 ‘또’ 아파? 좀 전에 치료해줬는데?”


오늘도 우리 딸과 똑같은 역할놀이를 반복하고 있다. 크롱이 아프면 뽀로로가 구해주고, 패티가 아프면 포비나 루피가 구해준다. 에디가 아플 때가 있는데 그때는 로디가 구해준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매일 같이 ‘구해주는’ 놀이만 계속하자고 하는데 처음에야 귀여웠지, 몇 주째 똑같으니 지겹다. 지겨워 죽겠다.




‘젖병 소독, 분유 먹이기, 트림 시키기, 기저귀 갈기.’

아기 키우는 것은 똑같은 일의 무한 반복이었다. 더군다나 강박적 성격인 나는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을 한 치의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야 했다. 그 때문에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였다. 좀 크면 낫겠지 싶었는데 웬걸. 말을 좀 할 줄 아니까 이젠 자기가 좋아하는 역할놀이의 무한반복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답답했다. 뽀로로를 구해달라는 딸에게 "엄마는 사실 살인 사건 추리하는 거 좋아해."라고 말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는 당장 왓챠에서 보다 말았던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를, 넷플릭스에선 <워킹데드>를 이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상대는 이제 겨우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기니까.


스트레스가 쌓이자 아기가 예뻐 보이지 않았다. 같은 동화책을 다섯 번 넘게 읽어주다가 나중에는 짜증 섞인 말투로 "엄마는 나가서 TV 볼 거야. 이제 동화책 그만 읽을래." 하며 나간 적도 있다. "엄마~"하며 울먹이는 딸을 두고 방을 나서는 마음이 좋진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안 하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가 깊이 잠든 밤에 우연히 웹툰을 보게 됐다. 거기엔 아기의 찡얼거림도, 매일 같이 똑같은 놀이를 하는 엄마도 없었다. 대신 모든 게 새로웠다. 추리물 속 주인공은 매번 바뀌었고, 로맨스물의 주인공은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꽁냥꽁냥 데이트를 즐겼다.


그랬다. 곤히 잠든 아기를 깨우지 않으며 내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공간. 웹툰 속은 그야말로 아기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그때부터 웹툰은 나의 돌파구가 되었다.


한 번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처음엔 매주 한 편씩 기다려서 봤지만 나중엔 그마저 기다릴 수 없어 ‘다음 회 미리 보기’를 시작했다. 내가 자주 가는 N사 웹툰에서는 미리 보기 한 회당 2개의 쿠키를 지불해야 한다. 쿠키 1개의 값은 100원. 한 회에 200원씩 들여서 보는 셈인데 부담되는 가격이 아니라 더 편하게 쿠키를 구워 보기 시작했다. (쿠키를 구매해서 보는 것을 ‘쿠키를 굽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남편도 출장 가서 없는 날, 딸이 밤 11시 넘어서까지 자지 않고 버틴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한 번에 100개, 그러니까 10,000원어치의 쿠키를 구웠다. 그 날은 마치 인터넷 쇼핑하듯 웹툰을 질렀다. 추리물도 봤다가, 로맨스도 봤다가, 일상툰도 봤다가, 육아일기도 보다 보면 새벽 2시를 훌쩍 넘기곤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머리는 개운했다. 짜증이 날대로 난 내 마음은 어느새 누그러져 옆에 있는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됐다.


야밤에만 시작됐던 나의 은밀한 취미는 다음날 낮까지 이어졌다. 아기가 낮잠을 자면 옆에서 숨죽이며 새벽에 못 다 본 웹툰을 이어 봤다. 좀 전에 분명 딸이랑 낮에는 티라노사우루스와 스테고사우루스가 싸우는 놀이를 해주다가 두 공룡을 극적으로 화해시켰는데, 아기가 잠들면 웹툰 속 주인공들이 싸우는 내용을 보면서 낄낄거렸다. 뽀로로가 쉬야한 걸 놀리는 크롱을 보며 “친구끼리는 그러면 안 돼~”라고 교육적으로 설명해주고는 여자 주인공이 친구의 약점을 이용하는 걸 보며 ‘여주가 똑똑하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이중생활이 지속될수록 육아가 힘들지 않았다. 매일이 똑같아도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아기랑 놀아주다가 아기가 잠이 들면 난 또 웹툰을 보러 떠나면 되니까. 현실에서 벗어나 그 세상으로 떠나면 그 안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추리도 있고, 로맨스도 있고, 아기 울음소리 하나 없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있으니까 괜찮았다.



살만한 일상들이 그런대로 모인 요즘, 내 마음은 많이 여유로워졌다. 물론 가끔은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야 하는 상황이 지루하지만 예전처럼 우울해지진 않는다. 오늘처럼 뽀로로와 크롱을 하루 종일 ‘구해주는’ 놀이를 해도 힘들지만 버틸 수 있다. 쿠키 2개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오늘 밤, 쿠키 좀 많이 구워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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