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데이트

언제든 환영이야

by 안녕

부지런한 엄마는

너를 재우고 설거지를 막 끝낸 후, 빨래를 돌리면서 오늘도 변함없이 너에게 편지를 띄워.


아주 옛날에는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매일 같이 얘기하는 두 살, 세 살 때는 아빠가 주말에 친구를 만나러 나가면 그렇게 불안하고 답답했어. 말도 안 통하는 너와 하루 종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막 심장이 두근두근 했거든.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루 종일 뭘 하면서 놀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어. 사실 그때 난 너와 보내는 게 버겁고 힘들었어. 정말 솔직하게 말이지.


그런데 어느 순간 네가 한 살, 두 살 크니까 너랑 둘이 있는 게 두렵지가 않더라. 뭐라고 해야 할까? 대화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놀잇감을 같이 찾을 수 있고, 놀다가도 힘들면 말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한결 낫더라고. 인형 놀이, 색종이 접기, 색칠 놀이 같은 것들을 주로 좋아하는 너와 놀이 취향이 맞기도 했고.


특히 요새는 너와 시간을 보내는 게 오히려 즐겁기까지 해. 이야기를 뚝딱 만들어 내면서도 장난꾸러기 기질이 가득해 늘 웃음이 떠나질 않는 너와 있으면 하루 종일 학교에서 시달렸던 엄마의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거든.


어제도 너와 놀았던 시간들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 2시 약속을 위해 일찌감치 나간 아빠가 생각날 틈도 없이 우리 정말 재밌게 놀았잖아. 그중에 무엇이 가장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엄마는 단연코 ‘도서관 데이트’야.


어느새 해는 좀 누그러져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은 오후에 집에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가는 길이 그렇게 좋더라고. 이미 놀이터에서 한바탕 뛰어놀아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네 손을 꼭 잡고 네 보폭에 맞추어 걸으면서 양 옆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를 구경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이 참 좋더라.


훌쩍 커버린 너는 엄마가 책을 빌리는 순간도 잘 기다려 줬지. 아주 어릴 적에 유모차에 있는 네가 울까 봐 전전 긍긍하며 책을 빌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훌쩍 커서 여섯 살이 되어버린 거야. 시간이 참... 세월이 참... 빠르지?


어린이 도서관엔 그날따라 사람이 많았어. 그런데도 조용하게 각자의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더라. 마침 하나 남은 자리에 앉아 우리 둘 다 각자 좋아하는 책을 골라 있는데 정말 어쩜 그렇게 좋을 수 있을까. 엄마는 요새 읽고 있는 <선암여고 탐정단>을, 너는 도서관에 오기만 하면 꼭 빌리는 <한글 사전>, <인체 사전>을 빌려와 조용히 책장을 넘겼잖아.


예전엔 혹시나 다칠까 싶어 네가 도서관 서가 곳곳을 돌아다닐 때마다 곁에서 지켜봤었거든? 근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 안전하기도 한 데다 네 스스로 공중예절을 잘 알고 있기에 별 탈 없이 원하는 책을 척척 빌려왔고, 심지어 다 읽고는 북 카트에 넣어 놓기도 하더라고! 엄마 이것 봐! 하면서 말이야!


아! 그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제는 정말 어엿한 어린이가 되어버린 네가 기특하면서도 또 이제 앞으로 함께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떠올라 설레기도 하면서도, 순식간에 흘러버린 시간이 어쩐지 그립기도 하면서도. 별의별 생각이, 갖가지 감정들이 막 소용돌이쳤어. 물론 가장 핵심 감정은 행복함,이었고.


우리 이 정도의 케미라면 앞으로 주말마다 매일 아빠 빼고 도서관을 와도 좋을 것 같아. 엥? 아빠가 섭섭해하려나?


엄만 사실 책을 엄청 좋아해. 그래서 책이 가득한 곳은 어디든 좋아하지. 시간이 나면 휴대폰보다는 책을 들여다보는 것을 더 좋아한단 말이야. 어려서는 도서관, 서점, 책방에 자주 가서 책을 들춰보곤 했어. 주로 좋아했던 것은 만화책이었지만. ^^


외할머니는 엄마를 무척 사랑해 주셨지만 안타깝게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진 않으셨어. 아주 어릴 적 엄마네 집에서 신문을 구독했었는데 외할머니는 신문 맨 뒷장에 있는 TV편성표를 주로 보셨거든. 그도 아니면 늘 콩나물 다듬는 데 사용하셨어.


그렇다 보니 도서관을 가거나, 서점을 가는 일이 늘 큰 일처럼 느껴졌어. 네 나이 때에는 혼자 갈 엄두도 내지 못했었고 좀 커서는 돈을 들고 혼자 갔다 와야 하는 곳이었지. 게다가 엄마는 소도시에 살아서 도서관도 집에서 엄청 먼데다 책도 별로 없었거든. 서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어. 걸어서 30분은 가야 했고 책은 늘 주문을 해야지만 일주일 후에 도착하곤 했지. (나중에 커서 아빠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빠는 광화문 교보 문고를 매주 갔다는 거야. 얼마나 부러웠는지.ㅜ.ㅜ)


도서관도 멀지, 서점은 더 멀지, 부모님은 (솔직히) 책에 관심도 없으시지. 어떻게 보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엄마가 책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읽었던 건, 외할머니가 어쨌든 어떤 종류의 책을 사더라도 일절 간섭을 안 하셨기 때문이었어. 만화 잡지를 사도, 만화책을 사도, 소설을 사도 할머니는 언제나 오케이셨어. 그러다 보니 5,000원 한 장 들고 서점에 가서 책 한 권 사가지고 왔을 때의 그 설렘. 어떤 내용일까,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그 설렘 덕분에 아주 먼 거리를 걸어오는 것도 힘들지 않았지.


그래서일까.

엄마는 도서관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 엄마랑 함께 가지 못했던 도서관에 내 아이의 손을 잡고는 꼭 오고 싶은 거. 가족들이 함께 도서관 책상에 자리를 잡고 서로 책을 읽으며 한가로이 보내는 그런 상상 말이야. 그런데 왠지~ 머지않은 것 같아. 네가 지금처럼만 책을 좋아하고 따라준다면 앞으로 여덟 살, 열 살이 되면 우리 더 많은 책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


아~ 이렇게 많은 걸 앞으로 함께하려면 일단 체력부터 길러야지. 날씨가 조금만 선선해지면 우리 매일 운동하기다! ^^


이제 얼른 편지를 마무리 짓고 읽던 책을 읽어야겠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다시 책을 빌리러 가야지.


너의 손을 꼭 잡고.



2023. 8. 28. (월)

- 책의 향기를 담아, 엄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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