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의 날

9월 24일은 엄마 몸살

by 안녕

가을비가 몇 주 연속 내리더니 어느덧 아침저녁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계절이 되었어.

아침마다 등원하러 가는 길에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낙엽을 바라보며 가을이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더위를 너무나 많이 타는 너는 아직도 청 재킷 속에 반팔을 입어야 하지만 말이지.


언제나 그렇듯 너는 곤히 자고 있고 엄마는 한 시간 정도 공부를 하고 난 후, 마침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쓴다. 아침에 출근하며 종일 마신 커피 덕인지 아니면 공부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 홀짝홀짝 마신 홍차 덕인지 11시 30분이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쌩쌩해. 덕분에 기운을 내어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띄우게 됐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지 뭐.


엄마는 말이야. (너도 알겠지만) 사실 며칠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어. 환절기에 일교차까지 크고 늘 일에 쫓기면서 살았기 때문인 건지 이상하게 일요일부터 몸이 안 좋더라고. 토요일에 함께 공원 산책을 갔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말이야.


일요일 아침 6시 30분에 눈을 딱 뜨는 순간부터 몸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어. 감기인가? 몸살인가? 혹시 코로나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드는데 너는 옆에서 아침부터 놀아달라고 하고, 일주일 동안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집은 엉망이고, 아침에 먹을 건 없고... 앞이 막막하더라고.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냥 드러누워 쉬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더라.


세탁물 바구니엔 이불, 외출복, 내복, 속옷 등이 가득히 쌓여있지, 싱크대엔 먹다 남은 음식이 그대로 묻어있는 그릇들 천지지, 마루에는 네가 놀다 아무렇게나 널브러뜨린 장난감이 어수선하게 놓여있지. 미루면 미룰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겠더라고. 어차피 할 거면 그냥 하자 싶어서 조금 무리를 했어. 빨래를 돌리면서 설거지를 했고, 청소까지 마무리했는데- 글쎄 10시도 안 된 거야. 워낙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일을 해도 해도 시간이 가질 않더라고.


그런데 말이야. 안 좋은 상태에서 일을 무리해서 그런지 몸이 자꾸 축축 늘어져. 목은 아프고, 몸은 쑤시고. 그러니까 누가 자꾸 엄마 몸을 쿡쿡 찌르는 것 같은 기분. 아리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자꾸만 누워있고 싶고. 방에 들어가 누우면 널 돌봐줄 사람이 아예 없으니 그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네게 티브이를 틀어주고 소파에 누워있는데 너무 힘들더라. 누가 한 사람만 곁에 있어 너를 봐줄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방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어. 푹신하고 아늑한 이불속에서 딱 한 시간, 아니 그것도 안 바라. 딱 30분만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


낮잠을 좀 자면 나을까 싶어 너랑 같이 12시쯤 들어갔는데. 와우. 그날따라 넌 왜 이렇게 자질 않는지. "엄마, 난 잠이 안 와." 하면서 우는데 어쩌겠어. 30~40분 정도 실랑이 하다가 결국 널 데리고 나왔지. 힘들더라고. 같이 자고 일어나면 한결 나아질 것 같았거든. 그런데 안돼. 아무리 널 설득해도 안돼. 나오자마자 배고프다 말하는 널 위해 이것저것 점심을 차려주고 나도 같이 먹는데 밥맛도 없지 뭐.


그리고 공원 대신 집 앞 놀이터에 가서 우리 1시간 20분 정도 놀았잖아. 원래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같이 중앙 공원에 가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타협한 게 집 앞 놀이터였어. 그지? 거기서 비눗방울도 불고, 종이비행기도 날리면서 좋았어. 4살짜리 동생 두 명이나 만나서 같이 놀고, 미끄럼틀, 모래 놀이, 그네, 시소, 달리기 하면서 우리 진짜 재밌긴 했어.


문제는 그때부터였지. 더 놀고 싶다는 널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아! 이건 뭔가 잘못됐다.'싶더라? 오전에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니야. 목은 잠기고 몸은 더 쑤셔. 자꾸만 눕고 싶어.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마루에 누워 버렸지. 혹시나 열이 나나 싶어 체온을 재니 아니 글쎄 37.6도가 넘는 거 아니겠어? 오 마이갓. 맞아. 엄마는 진짜 아팠던 거야. 그렇게 열이 나서 몸이 그렇게 아팠던 거야. 그런데도 그걸 모르고 무리해서 집을 청소하고 너랑 같이 나가서 놀았으니 몸이 안 아프고 배겨?


괜히 속상하더라.

앞에서 울 순 없고 그냥 마루에 누워서 조금만 쉬려고 눈을 감고 있는데 말이야.


아니 네가 작은 고사리 손으로 체온계를 다시 가져오더니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엄마. 아프구나. 내가 간호해 줄게."


병원 놀이 정도로 생각했어. 처음엔. 그냥 콩순이 병원놀이 장난감 가져다가 장난치는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너, 아니었어. 완전 진심이었어. 정말 진심으로 엄마를 간호하려고 하더라고.


베개, 이불을 가져오더니 엄마를 덮어주더라? 그리고 체온계로 양쪽 귀를 재보더니 숫자를 읽었어. "삼십칠쩜 육. 엄마 열 나." 그러더니 갑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가서 가제 손수건을 가져와서는 예쁘게 접어 이마 위에 올려주는 거야!!! 열이 나니까 열을 내려야 한다면서. (^^)


그리고 토닥토닥 엄마를 간호해 줬어. 정말 진짜 간호 말이야. 병원 놀이 하면서 연기로 하는 간호가 아니라 진짜 아픈 사람을 돌봐주는 그런 거. 내가 네가 아플 때마다 해주었던 거. 어느새 스스륵 눈이 감기는데 눈앞에 앉아있는 너는 엄마 옆에서 조용히 놀이를 하고 있더라고. 종이를 접었을까? 그림을 그렸을까?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하나는 느낄 수 있었어. 넌 엄마를 지켜주는 중이라는 걸.


까무룩 잠이 들었었나 봐. 엄마도 대단하지? 딱딱한 마룻바닥에 누워 홑이불 하나 덮고도 잠이 들었으니 말이야. 한 20-30분이 지났을까? 그렇게 자고 일어나니 좀 낫더라고.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약 기운 때문에 나아진 것 같지 않아. 아마도 네 간호 덕분이 아니었을까?


100% 회복된 체력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 오전과 다르게 오후엔 너랑 조금 더 놀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래서 우리 같이 그림도 그리고, 종이도 접고, 티니핑 숨바꼭질도 하며 보냈어. 평소 에너지의 반도 쓰지 못했지만 그래도 넌 투정 한 번 없더라. 엄마가 자주 아파서 걱정도 됐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많이 미안해. 아픈 엄마는 아이를 불안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야.


무튼 그리고 오늘. 엄마는 완전히 회복했어.

병원엔 가지 않았지만 스트렙실과 타이레놀을 먹으니 증상이 많이 좋아지더라고. (널 낳고 엄마는 병원을 가는 게 어쩐지 어렵게 느껴져.) 그래서 지금은 평소와 같이 너와 놀아주고 있지. 너도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까불고 장난치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좀 전에 널 재우러 들어가는 길에 방문 앞에 붙어있는 달력에 적어 놓은 글귀를 보고 한참을 웃었어. 엄마는 사실 24일엔 그런 걸 적은 줄도 몰랐거든? 아니 솔직히 엄청 감동받았어.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 몸살"이라고 적은 걸 보니 괜히 눈물 나더라. 어쩜 그런 생각을 했어? 넌 정말....


엄마가 할머니들이 쓰시는(?) 모양새 없는 큰 달력에 매일매일 일정 적는 거 보고 따라 해 본 것이겠지만, 그날만큼은 '엄마가 아팠다'는 것을, 그래서 네가 간호해주고 싶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엄마의 생각이 맞을까?


덕분에 그날은 9월 24일은 '엄마 몸살'의 날이자 너의 첫 '간호의 날'이 되겠지? 아주 사소한 추억을 무척이나 잘 기억하는 엄마는 아마 평생 그날을 잊지 못할 거야. 아니 잊지 '않을' 거야. 왜냐고? 그날 엄마가 먹은 약은 타이레놀이 아니라 네 사랑이었거든. 네 사랑을 먹고 어찌 아플 수가 있겠어. (^^)


딸.

그날 엄마에게 향했던 그 마음이 네 주변으로 향해 주위 사람들까지도 따뜻하게 해 주면 좋겠다. 그러면 너는 아마도 누구보다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엄마가 네 덕에 치유가 되었던 것처럼 너를 만나는 사람들도 네 덕에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지?


언젠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관계가 힘들고 어려워 다 포기하고 싶을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을 대하는 게 어쩐지 두려워질 때 그럴 때 이 편지를 읽어 봐. 그리고 기억해 줘. 넌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저 네 마음속 깊이 있는 그 '사랑'을 조금만 꺼내 보이면 되니까.


알았지?


2023.9.26.(화)

사랑을 담아,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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