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읽고는 있냐?

도대체 알 수가 없어!

by 안녕

읽기 수업의 가장 큰 단점은 앞에 있는 아이들의 머릿속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국어라는 과목 특성상 짧든 길든 글을 읽어야만 수업이 진행되기에 '읽기' 자체를 떼려야 뗄 수가 없는데 그 '읽기'라는 게 이해의 영역이어서 교사가 아무리 중간중간 점검을 한다고 해도 눈으로 파악을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10년이 넘는 동안 읽기 수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


"읽고 있어?"

"이해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였으니 말 다했지 싶다.




통제욕구가 강하며 욕심이 많은 나는, 수시로 아이들의 이해 정도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도대체 얼마큼 이해를 했는지, 아니 사실 이해는 못했는데 이해한 척 연기를 하는 것인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남이 만든 학습지로 수업을 하니 답답함은 더 심해졌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아닌, 다른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빈칸' 처리가 되어 있어 아쉬움이 컸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과 함께 '읽기' 수업을 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어휘력부터 이해력, 표현력까지 총체적으로 '낮아진' 수준을 감당하기 힘들어 매일 같이 화가 났던 적도 많다. 처음엔 4페이지를 꽉꽉 채워 만든 학습지를 나눠주곤 했으나 어느새 실내화 자국이 선명히 찍혀 교실을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하고 학습지의 양을 확- 줄여버렸다. 요새는 최대 2페이지 (한 장)을 넘기지 않는다. 학습지는 다다익선이 아니라, 다다익악(?)이니까.


읽는 방법도 다양하게 꾸려봤다.


먼저, 혼자서 스스로 20분간 읽기다. 이 경우 보통 10페이지가 넘는 소설 수업에 적합하다. 교과서에 실리는 소설이라 일부분이 발췌된 경우가 많다. 신규 시절, 그 10페이지를 다 같이 읽었다가 다 같이 잠든 악몽이 있다. 어느 정도 읽기가 가능한 소설, 쉬운 내용의 소설은 혼자 읽게 한다. 한 페이지 분량의 빈칸 채우기 학습지를 만들어 같이 제공해 주고 칭찬 도장을 찍어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학습지를 만들 때 구성단계별로 만들어주면, 빈칸 채우기가 좋다.) 중1에게는 적절한 동기부여가 되는 듯싶다. 단, 다 읽지 않고 빈칸만 채우려고 하는 아이들이 많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흠. 하지만 읽는 20분 동안 아주 고요한 교실을 맛볼 수 있다는 건 장점.


그다음으로 해 봤던 것은 '나도 아나운서' 읽기다. 사실 글 쓰느라 이름을 붙인 건데 방법은 간단하다. 보통 2~4페이지 정도의 짧은 비문학 글에 적용하면 좋다. 이 방법을 쓰기 전에 아이들에게 썰을 제대로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5줄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읽는 친구들에게 '칭찬 도장'을 읽은 문장 개수만큼 주겠다고 말하며 진행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지금 이 글의 바로 윗 단락의 '먼저~ 되는 듯싶다.'까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읽는 것이다. 그러면 5줄 성공, 5개의 도장을 받는다.


이 방법을 말하면 아이들은 은근 승부욕이 생겨 많이 도전을 한다. 활발하게 시작하면 일단 성공! 대신 반의 특성을 잘 반영해야 한다. 내향적인 아이들이 많은 반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 난감해진다. 그럴 땐 적절히 시켜준다. 반대로 너무 활발하면 서로 틀린 것 지적하다가 끝난다. 그럴 땐 적절히 또 중재해 준다. 이 방법의 가장 큰 단점은 '발음'에만 신경 써서 내용을 흘려보낸다는 것.


그다음은 함께 읽기다. 시험 범위에 들어가는 지문일 경우, 어쩔 수 없을 때 결국 교사 주도 하에 함께 읽는다. 장점은 아이들이 모든 내용을 꼼꼼히 알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 단점은 무척 지루하며, 발음이 좋지 않은 경우 답답해하며, 눈으로 읽는 속도가 빠른 아이들은 이미 다 읽고 딴짓을 한다는 것. 여러 모로 단점이 더 많아 잘 적용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시험이 걸려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같이 읽는다.


마지막으론 역할 나눠 읽기다. 연극 대본, 시나리오 대본 수업 할 때 아주 자주 사용한다. 수업 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역할을 미리 파악하고 각각의 특성을 정리해 가는 게 중요하다. '별주부전'을 재해석한 작품의 대본이라고 하면 토끼, 용왕, 자라의 특징을 미리 칠판에 적어주고 거기에 맞는 도전자를 선정하는 방식. 반 마다 어떤 친구가 토끼, 자라를 맡는지에 따라 읽기 수업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외향적이고 활발하며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들이 제 역할을 해준다면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늘 그런 아이들에게 고맙다.)




네 가지 읽기 방법 모두 그럴싸하게 썼을 뿐이지 솔직히 현장에선 반은 성공하고 반은 늘 실패하는 방법이다. 교과서 제재에 맞춰 읽기 방법을 연구하지만, 아직 읽기 수업에 대해 자신이 없는 나로서는 늘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인데 그 마저도 망할 때가 많으니 도대체 읽기 수업은 어떻게 해야지 잘하는 건인지 답답하다.


특히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아이들,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장난을 일삼는 아이들이나 반대로 기초학력이 너무 부족하거나, 단어의 뜻을 아예 모르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기를 지도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이 많다. 그런 아이들은 읽기를 시작하면 5분 만에 자거나 딴짓을 한다. 집중이 안 되니까 수업을 방해하거나 아예 무기력하게 있는 경우가 많다. 잘하는 아이들만 보라고들 조언하지만 그게 안 된다. 부족하고,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눈에 밟히고 그래서 스트레스도 받고 고민도 많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가 유난히 이런 케이스의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읽기' 단원은 늘 어렵다.


당장 방학이 끝나면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하는 단원이 소설이다. <하늘은 맑건만>이라는 내적 갈등과 외적 갈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소설인데 아주 오래 전이 배경이라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단어들이 수두룩하다. 난 분명 학습지를 또 만들고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여 읽게 하겠지만 벌써부터 첫날 첫 수업에 들어가서 애들에게 물어볼 말이 떠오른다.


"읽고는 있어?"

"이해가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읽기 수업을 실패만 했느냐. 사실 그렇진 않다. 다음 이야기는 반은 성공했던, 그래서 꽤나 행복했던 '읽기 수업'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성공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더불어 다른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읽기를 어떻게 지도하시는지 궁금하다.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사진: UnsplashBen White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준비물 1. 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