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수업은 늘 망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말이 조금 웃기긴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준비를 많이 하고 적게 하고의 문제는 아니다. 날씨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 역시 아니다. 앞 시간에 체육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아주 살짝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13년 정도 애들을 가르쳐 보니, 수업이란 게 원래 '망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고객님들은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나쁘면 나빠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놀아야 하는 이유를 수만 가지를 댈 수 있는 분들이기에. 언제고 당장 교과서를 덮고 연필을 집어넣고 드릉드릉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준비가 되어있는 분들이기에. 언제나 모든 수업은 망할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열어 놓고 들어가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13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솔직히 망한 수업의 100% 이유가 아이들에게만 있진 않다. 어쩌면 내게 지분이 더 많은 날도 많다. 지금은 수업에 자신감이 좀 붙은 나도, 과거엔 부끄러운 짓을 많이 했다. 일단, 학습지를 손수 만들지 않았다. 수업자료 공유 카페에서 비슷한 단원을 골라 이름만 바꿔 인쇄해 나눠준 게 자그마치 4년이다. 신규 교사 발령받고 수업보단 생활지도에 힘쓴다는 이유로 대충 준비했다. 사소한 단어 뜻, 문장의 의미는 자습서에 나와 있는 걸 읽어준 적도 많다. 어차피 시험에 나오는 것만 알려주지 뭐,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수업을 듣지 않으면 "도대체 요새 애들 왜 그래?"라며 탓을 많이 했다. 지금은 20대 후반이 되어버린 나의 첫 제자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자습서를 그대로 읽어주면서도 잘못을 몰랐다. 수업 중에 픽픽 쓰러지며 자버리는 애들을 속으로 흉보기만 했지 내가 들을 만한 수업을 하지 않았단 성찰을 못했다. 지나고 나니 그 시간들이 후회가 된다. 겉으로 성공했다 싶어도 실은 망한 수업이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덜 망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덜 망치고,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까. 교실 문을 나올 때, 어떻게 하면 등줄기에 흐르는 땀방울의 양을 줄일 수 있을까. 성공하겠다고 준비했을 때보다 망하기 싫어 대비할 때 훨씬 수업이 잘 됐던 것 같다.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겠지, 라며 짐작할 때보다 이거 애들이 어렵겠는데? 걱정할 때 좀 더 좋은 수업이 만들어졌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가르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고를 수 없다. 그냥 다 힘들었다. 그래도 그중 뽑는다면 '읽기'를 평가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책 읽기, 본문 읽기 수업을 하면 도대체 얘들이 읽고는 있나? 단어 뜻을 알기는 아나? 싶어서 늘 전전긍긍했다. 학습지를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보고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수차례의 담금질을 통해 지금은 아주 조오오오오금 나아졌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나의 첫 '읽기 수업'에 관한 내용이다.
사진: Unsplash의Clay B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