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상담소>라는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은유라는 작가의 이름이 낯익어 무턱대고 빌렸다. 주말 내내 읽노라니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 조언’이 어쩌면 내게 꼭 필요한 것이라 도움이 많이 되었다.
책 한 권 출판하고 글쓰기에 더욱 관심이 생긴 요즘이다. 11살부터 꿈꿔온 작가라는 꿈을 이루며, 삶의 의미까지 다시금 찾고 있는 내게 생각할 거리를 적잖게 주는 책이다. 반쯤 읽은 후 책갈피를 꽂고 덮어 두었다. 아주 흥미로운 책은 끝까지 다 읽지 않고 꼭 중간에 멈춘다. 작가의 이야기가 금세 사라져 버릴까 봐, 다 읽어버릴까 봐 아까워서 해 온 습관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인터넷 서점에 담아두고 있다.
마음속에 피어오른 이야기를 적고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글 쓸 환경이 여의치 않다. 이에 멈출 내가 아니다. 간절할 때에는 출퇴근 길 지하철 안에서도 글을 쓰던 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 가까이 통근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던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어두운 버스 조명에 기대에 글을 썼다. 공간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아이의 캔버스 의자에 아이패드를 놓고 키보드를 연결한다. 본격적인 쓸 준비를 마쳤다.
저자처럼 글쓰기에 대한 엄청난 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철칙이 있다. 글쓰기는 절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 또, 글을 쓸 ‘마음’만 있다면 어디서든 무엇으로든 쓸 수 있다는 것!
서재(라고 쓰고 사실은 지저분한 방)가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서만 글을 쓰진 않는다. 특히 주말 낮에는 내 옆에서 홀로 노는 딸아이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아이패드에 키보드 연결해 놓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면서 아이를 돌본다. 딱히 뭘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붕- 하고 뜨는 시간이 생기면 뭐라도 쓰려고 노력한다. 완성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좋다. 치유가 된다.
일본 여행을 갔을 땐 문구점에서 노트와 펜을 구입한 후 새벽 5시에 일어나 어제를 정리했다. 그림을 그리고 기록을 했다. 좋다, 행복했다는 말로는 잊힐 수 있는 그날그날의 감정을 글로 표현했다. 종이와 펜이 불편하면 휴대폰 메모장을 이용했다. 메모어플은 복잡해 기본 어플만 이용한다. 일상을 기록하는 공간은 접근하기 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2021년도에 에버노트를 써봤는데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쌓인 글감은 큰 자산이 된다. 뭐라도 쓰고 싶어 미칠 것 같을 때면 메모장을 뒤적여 본다. 생각 주머니 중 하나를 골라 뭐라도 쓰기 시작하면 쓴다는 행위 자체에 몰입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해진다.
며칠 전 남편이 그런 말을 했다.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살아가다 보면 결국 진짜 자신의 모습만이 남는대. 나는 글을 쓰고 싶다고 20대 때부터 말했지만, 사실 내가 원했던 것은 글을 쓰는 삶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이었던 것 같아. 우리 똑같이 글을 쓰고 싶어 했었는데, 결국 네가 책을 내고 작가가 된 것을 보면, 넌 정말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었던 거지. 글을 쓰는 모습, 그 모습이 진짜 네가 원하는 모습이었던 거지. “
듣고서 한참을 곱씹는데 마음속에 깊이 박힌다. 아무도 내 글을 봐주지 않고, 공모전에선 자꾸 떨어지고, 브런치 조회수는 하염없이 내려가는 것을 알면서도 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 실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면서 책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자꾸만 버리지 못하는 내가 한심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쓰기가 너무 좋은 사람. 쓰는 것 자체가, 그래서 그 결과를 모아 세상에 내놓는 것 자체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사람.
아주 어릴 적부터 쓰는 행위가 주는 기쁨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반경이 넓어질수록 쓰지 않으면 버틸 수 없어질 정도였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을 때면 말 대신 글을 썼으니. 그 글이 비록 미완의 글이어도. 어쩌면 내일 아침에 다 지워버리고 싶은 글이어도. 그렇게 4년을 꾸준히, 써왔다. (브런치만 4년. 블로그, 일기까지 합치면, 셀 수 없다.)
쓰기 중독. 이쯤 되면 난, 쓰기 중독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맞다. 보통 ‘중독’은 부정적으로 그려지곤 하지만 어쩐지 나는 ‘쓰기’에 중독된 내가 좋다. 매일 같이 성실하게 쓰고, 또 쓰는,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나는, 분명 무척이나 성실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쓰고, 또, 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매일 같이 행복해질 것이 아니냔 말이다.
그러니 난 앞으로도 계속 쓰기 중독자로 살련다.
매일, 확실히 행복해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