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서도 이렇게 행복한데
어려서부터 ‘관계’를 맺는 것이 참, 어려웠다. 어렵고 두려워서 자주 피하며 살았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입학식이나 개학식마다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해 교실문을 열 때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능하면 구석, 후미진 곳을 찾아 헤매었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았다. 선생님이든 친구들이든 모두 나를 몰랐으면 했다. 먼저 다가오기 전에는 다가가지 않았다. 그 흔한 “안녕. 난 000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는 말도 물어보지 않았다.
버림받을까 봐, 내가 없는 사이에 내 뒷이야기를 할까 봐, 나를 따돌릴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넘치고 넘쳤다. 부러 웃었고 부러 맞춰 주었다. 중심을 잃은 관계는 늘 기울어지기 마련이었다. 기울어진 시소처럼 기우뚱한 관계. 어떻게든 이어가고 싶어서 애써 힘을 내어 균형을 맞추었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준비물을 대신 사다 주고 가끔은 숙제도 해주었다. 먹기 싫은 음식을 좋다고 먹었으며 가기 싫은 오락실에 함께 갔다. 친구라면 나눌 수 있다는 추억들 중에 진심으로 원한 것은 거의 없었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관계를 깨기 힘들어 버티며 만났다. 나쁜 감정을 갖는 것, 그 친구를 미워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머릿속에서 지워내니 나중엔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들면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소문을 낼 용기도 없었다. 무엇보다 주변 친구들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믿어줄까? 나는 공부도 못하고, 자신감도 없고, 반에서 아무것도 아닌데? 깊은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부서지기 쉬운 관계였다. 어쩌면 이미 바스러져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원망이 가득 차올랐을 때마다 돌아보니 바보처럼 참고 살았다. 참고 버티며 유지한 관계는 끝이 늘 안 좋았다. 크게 한 번 소리라도 지르고 마무리 지었으면 좋았으렸만 끝까지 도망쳤다. 솔직한 게 힘든 나는 끝맺음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람들을 밀어냈다. 잠수, 읽고 씹기, 직접 만나고도 외면하기, 메신저 차단하기. 미숙한 방법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편한 순간을 대면하기 싫어 거부하며 끊어냈다. 정리하고 정리하여 지금 내게 남은, 정말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나이를 먹는다 해서, 사회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한 씬이 바뀔 때마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지레 겁부터 먹는다. 나와 결이 다른 것 같은 사람을 볼 때면 (가령 운동을 좋아하거나, 외향적이거나, 모임을 좋아하거나, 자신을 잘 드러내는 등의) 마음속 결계를 두 겹, 세 겹 세웠다. 어떤 그 누구도 절대 허물 수 없는 결계를 세워두곤 그 안에서 적당히 웃으며 대응하며 지내기 시작했다.
- 아, 그러시구나.
- 어머나! 힘드셨겠어요.
- 저도요! 저도 그렇더라고요!
고도로 훈련된 얼굴 근육과 리액션은 상황별로 적절한 반응을 입력해 주었다. 나는 마치 AI처럼 산출값에 따라 행동했고 딱, 그 정도의 관계를 이끌어냈다. 직장에서 여기까지면 딱 좋았다. 새로운 친구를 사귈 필요는 없었다. 사귀는 과정에서 받을 피로감이 느껴지면 벌써부터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았다.
애석하게도 그 마음의 문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