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양 Oct 19. 2021

취향을 찾아드립니다

소울메이트와 같은 차를 찾는다는 건

나는 주로 입문자를 위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차와 관련된 수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내가 스스로 정했던 타깃도 입문자였다. 왜 굳이 입문자를 위한 수업을 생각했냐고 묻는다면, 차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좀 더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 입구가 나에게 역시 너무 좁아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분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차라는 것이 좀 더 나은 이미지가 되었지만, 내가 차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는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차를 생각하면 고리타분해 보이고,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분들만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도라는 게 정확히 뭐였는지도 몰랐으면서, 다도라는 단어가 떠오르면 그저 답답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느꼈던 차의 이미지가 처음엔 좀 마음에 걸렸다. 최신 트렌드에 민감해야만 했던 회사에 다니다가, 갑자기 정 반대인 것만 같은 세계로 들어서려니 막상 발이 잘 떨어지진 않기도 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결심했다. 내가 차로 수업을 한다면 그런 이미지를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꼭 하겠다고. 차는 고리타분한 게 아닌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것을 알려주겠다고. 그래서 차를 이제 막 좋아하기 시작한, 또는 아직 잘은 모르지만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수업은 어떠면 좋을지 생각해 봤다. 차 자체적인 내용만을 가지고 구성하는 것도 좋겠지만, 뭔가 흥미로운 부분을 더하면 훨씬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첫 번째 아이디어는 차와 영화를 함께 연결시켜 소개하는 것이었다. 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중요하지만, 우선 차와 좀 더 친해지기 위해서 차와 관련된 역사를 좀 더 커리큘럼에 넣었다. 꼭 차와 영화만은 아니었다. 차와 관련된 그림도, 책도 물론 환영이었다. 


다른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즐겁지만, 이렇게 다른 장르와 콜라보해 만드는 수업은 더 재미있다. 내가 더 신이 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준비를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지만, 나 역시 영화도 그림도 책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더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다. 내용을 채우고 채우면서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이 생기면 더 흥분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한 수업들은 나의 시그니처 티클래스가 되었다. 


두 번째 아이디어는 티 테이스팅이었다. 티클래스에는 보통 테이스팅이 거의 다 들어가는 편이지만, 이 부분을 특히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 중 테이스팅 할 차는 꼭 넉넉히 챙겨서 가져갔다. 물론 수업의 테마와 관련 있는 차로 고르는 것은 필수이다. 내가 차를 처음 접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을 똑같이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차를 막 좋아하기 시작할 무렵, 차는 마셔보고 싶은데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차 종류는 많은데 이름은 낯설고, 이름조차 낯서니 그게 무슨 차인지 알리가 만무했다. 사오천 원을 내고 내가 생판 모르는 맛에 배팅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 많은 차들을 다 구입해 확인하고 싶었으나 그럴 여력은 또 되지 않았다. 그저 조금씩 맛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차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홍차를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알고 보니 홍차도 종류가 너무나 많은 거다. 홍차를 좀 알게 되다 보니 다른 종류의 차도 마셔보고 싶어 졌는데, 그 차들도 종류는 많았다. 공부를 하면서 알았다. 세상에 있는 모든 차를 마셔본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그냥 마시던 차만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더 좋은 차, 더 맛있는 차를 찾고 싶었다. 내 입맛에 꼭 맞는 그런 차도 찾고 싶었다.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하나씩 차를 마셔본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그 많은 차들을 알아가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차를 사면 그 양은 또 어찌나 많아 보이던지. 여러 번 마실 수 있기에 이것저것 다 사들이기엔 금액도 만만치 않았다. (커피에 비해 차가 늘 비싸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또 그런 것은 아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시절에는 구매해둔 차를 다 마시고 다른 차를 사야지 싶었다. 다른 차도 마시고 싶었지만 집에 쌓여가는 차를 보면 지갑을 다시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있을 때도 있었다. 어쨌든 마셔보고 싶은 차는 많았고 덩달아 나의 마음은 바빠졌다. 


지난날의 그런 마음을 생각하다 보니, 내 시간이 여유로운 날에 하는 수업 때에는 약속한 개수보다 차를 한 두 개 씩을 더 가져가 본다. 다양한 차를 수업을 통해 맛보고 오신 분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차를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티룸이나 다원 등을 다니면서 차를 접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수업을 통해 여러 가지 차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내 수업의 장점 중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차를 마셔봐야 그 어딘가를 가서도 주저함 없이 차를 고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찾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만의 취향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삶의 낙이 되는지 알기에. 


수업을 시작하거나 마칠 때, 내가 종종 말씀드리는 말이기도 하다. 이 수업을 통해 마시는 차의 종류가 한정적이긴 하나, 그래도 이 경험을 통해 또 다른 경험을 확장해 나가시길 하는 바람이 든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차의 취향을 꼭 찾으시길 바란다고도 말이다. 내가 그랬듯이, 그렇게 차의 취향을 찾고 또 즐기다 보면 분명 차가 더 좋아지고 자주 찾게 될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차의 취향을 찾는다는 건, 마치 나의 소울메이트를 찾는 것과 같단 생각이 든다. 찾기는 막상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언제 어디에서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연이 닿게 된 순간 매일 찾고 싶어질 것이다. 그 차를 마시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나를 안심시켜줄 것이다.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차 한 잔이 내게 위로를 줄 것이다. 내가 기분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그 차 한 잔이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정도라면 내가 좋아하게 될 차, 한 번 찾아보고 싶지 않은가. 그 여정에 나의 수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늘 바라는 마음이다.

이전 06화 내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도 좋아했으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