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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Sep 30. 2021

내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도 좋아했으면

이렇게 좋은 걸 나만 알면 아까우니까

난 말주변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말을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그래서 티소믈리에로 활동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티소믈리에로서 활동할 수 있는 여러 분야 중 차로 강의를 한다는 게 더 설레게 느껴지고 조금은 자신감이 있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걸 누군가에게 전달한 다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나를 처음 만나면 차분하고 말은 별로 없는 사람을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상대방이 좀 어렵거나 아직 서로 가까워지기 전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말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좋아한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다녀오면 난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하는 편이었다. 정말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한 번은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미정아, 미정이가 이야기해 줘서 엄마가 학교에 다녀온 기분이야"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가끔은 쓸데없는 부분까지 장황하게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결론은 말하는 것이 참 즐겁다는 거다.  


티소믈리에로 활동하기 전 나는 음반사에서 홍보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했었다. 첫 번째 음반 공연 기획사는 작은 회사이다 보니 이것저것 두루두루 다 하면서 경험하기 좋았다면, 두 번째 회사이자 마지막 회사였던 곳은 내가 관심 있었던 마케팅 부서에 들어가게 되어 더 좋았다. 대학 때도 굳이 학점과 관계없이 마케팅이 좋아 시간만 맞으면 청강을 하곤 했었는데, 마케팅 부서에 들어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좋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회사에 마케팅 부서로 입사하고 나서 보니, 바로 마케팅을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그 회사에는 홍보부서가 따로 없고, 마케팅 부서에서 겸했었는데 그 부서의 막내가 주로 홍보를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 전 회사의 경력을 인정받고 입사했지만 그 부서의 막내로 들어갔으니 홍보는 내가 당첨. 그래도 주로 1~2년 정도 홍보를 경험하고 나서 마케팅을 담당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홍보라고는 첫 회사에서 아주 살짝 경험해 보았었는데,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나 혼자 맨땅에 헤딩하듯 배웠기 때문에 참으로 난감한 경험으로 자리 잡은 터였다. 당시 대표님이 외부에서 홍보 담당하시는 분을 초빙해서 하루 이틀 같이 다녀보는 것이 내게 일러준 전부였으니까. 심지어는 잘 배웠다기보다는 그냥 따라다니기만 하고 끝나버린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신문사를 찾아가던 방송 보도국을 찾아가야 했던 나에겐 그런 상황들이 너무 낯설고 긴장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두 번째 회사에서는 좋은 선배들도 많이 만나고 첫 회사보다는 체계가 잡혀있는 곳이라 덜 난감하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1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갑자기 회사에서 홍보 부서를 신설했는데, 각 부서에서 홍보를 담당하던 사람들을 착출 해서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홍보라는 것은 내게 마케팅을 향한 징검다리였을 뿐 딱히 정을 두지 않았던 탓에 부서가 바뀌게 되면 회사를 나가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여전히 음악이 좋았고 그것 때문에 고등학교 때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그 회사를 나온다는 게 참 어려웠다. 그래서 난 결국 홍보 담당자가 되고 말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본격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물론 일적으로 홍보해야 하는 것도 함께) 퍼뜨리고 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홍보 부서에 들어가고 나서 그 일을 즐겼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부서에 있는 동안은 정말 열심히 하려고 했었다. 시간이 좀 지나야 결과가 눈에 보이는 마케팅과는 달리, 기사나 뉴스로 바로 결과가 나오는 홍보의 특성 때문에 더 조바심이 나서 그런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 음악들이 많았고, 그걸 알아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어 힘이 났었다. 그리고 여러 매체들과 내한하는 아티스트의 인터뷰를 담당할 때면,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까지 곁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의 특혜인 것만 같기도 해서 더 힘이 났었다. 무엇보다도 외부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하고 전달하는 것의 일환이니 최악은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홍보를 담당하면서 나만의 철칙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솔직함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정말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전하면 반드시 통하리라 생각했다. 아니, 나가서 기사를 뽑아와야지 그런 진심 따위를 전달하는 뭐에 필요하냐라고 말하며 그건 어떻게 보면 순진한 생각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지금보다 젊어 좀 더 순수했고, 그 마음이 전달되리라 굳게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전달하는 거 하나는 정말 자신 있었다. 물론 매번 좋은 음악만 나올 수 없으니, 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친분이 있는 기자님들이나 PD 님들께 그럴 때는 조금은 솔직하게 말하기도 했다. (이 말인즉슨 별론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음악이 좋은 척 티 안 나게 보도자료 읊듯 하기도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사가 잘 나오지 않거나, 매체에 등장하지 않은 음악이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에게는 신뢰감으로 쌓여, 그분들과는 돈독한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홍보를 하면서 마음적으로 힘든 부분들이 많았던 터라 누군가가 홍보를 한다면 다른 분야도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그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배움이 지금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전달하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내가 티소믈리에로서 일을 하는 지금에도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내가 수업을 할 때, 정말 내가 좋아하는 차를 다른 사람들도 즐겨주기 위한 마음을 담아 전달한다. 그저 지식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내 마음을 전달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터치 몇 번으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지식은 찾기만 하면 금방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아니다.


왜 이 차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 차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이 차 때문에 생겨난 수많은 과거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차 한 잔을 마실 때의 감사함은 어디에서 오는지 등등.. 그저 지식 전달을 통해서는 전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고, 그 부분들이 어떨 때는 지식보다 더 값지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신기하게도 직장인 시절 나의 순진함(?)이 준 그 진심이라는 것이 지금도 통함을 수업을 통해 종종 느끼곤 한다. 그걸 느낄 때마다 내가 티소믈리에가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라면 꽤나 잘 퍼뜨리는데 조금은 재주가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도 좋아해 준다면 왠지 그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데도 기쁨이 배가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자꾸 내가 좋아하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싶어지나 보다. 오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퍼뜨리고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좋은 걸 나만 알기는 너무 아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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