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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Oct 19. 2021

차 마시기 참 좋은 곳

바로 여기, 내가 사는 대한민국

차를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어디에서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했었다. 고심 끝에 다닌 곳에서 티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따고 나니 막상 그게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배우러 다니고 또 배울 곳을 찾고 그렇게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차는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다른 나라에서 차를 더 즐기는 것처럼 보였고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단 생각에서였다.


스리랑카에서 마신 홍차가 좋아 시작했으니 스리랑카에서 홍차를 배워보고 싶었다. 지금은 몇 군데 있는 것 같지만 당시에는 막상 찾아보니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한 군데 찾은 곳은 일반인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는 회신만 돌아왔다. 그래서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차를 많이 마시는 나라를 고르고, 영어로 수업 진행하는 곳을 찾았다. 그래서 영국에 차를 배우러 다녀왔던 것이다. 그렇게 간 곳에서 수업을 듣던 중 선생님께서 충격적이 말씀을 하셨다.


"이제 영국도 조금씩 차를 제대로 마시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게 무슨 소리람? 나는 영국 사람들은 차 없이 못 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영국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그리고 '시작한 것 같아요'라니? 나는 순간 내가 영어를 잘못 해석한 줄 알았다. 당황한 것은 나뿐만 아니었다. 그 수업을 듣던 영국인 제외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의아하다는 듯이 서로의 눈을 꿈뻑꿈뻑 쳐다봤다. 뒤이어 추가 설명을 해 주신 선생님의 말씀의 뜻은 이랬다. 그저 뜨거운 물에 티백만 담가 마시던 영국인들이 이제는 찻잎으로도 차를 우려 마시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말씀이었다. 


'아니 영국인들, 예쁜 티팟에 홍차 찻잎을 넣어 우려 마시던 거 아니었나요?'라고 되묻고 싶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티백으로 차를 마신다고 덧붙이셨다. 최근에 내 강의 준비를 위해 찾았던 한 자료에서도 영국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 중 95%의 사람이 차를 티백으로 즐긴다고 나와있었다. 


물론 예전에는 차를 잎차로 즐겼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많이 간소화되어 거의 티백으로만 마시는 분위기였다. 오래된 차의 역사, 유명한 차 브랜드가 도자기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고, 차에 대해 심적으로 아주 가까운 그곳이었지만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뭔가 내심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영국을 다녀오고 나서 보니 한국도 많이 변화하고 있었다. 내가 차를 공부하고 나서 발견한 첫 변화는 밀크티였다. 버블티와 밀크티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차에도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들이 지금은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차를 판매하고, 티코스나 차 강의를 찾아다니는 젊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가만히 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를 마시기 좋은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내가 사는 이곳, 바로 한국말이다. 이전에는 차를 마시기 좋은 곳을 찾아다녔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도 차를 마시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더 좋은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우리나라에도 다원이 있다. 녹차 중심의 다원이지만, 녹차뿐만 아니라 다른 차에 대한 시도도 다양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원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자산이다. 차나 기차만을 타고 가서 직접 볼 수도 있고, 차를 재배하고 판매하시는 분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특히나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에 다른 나라의 다원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한편으론 위안이 된다. 우리나라에도 다원이 많으니까 말이다. 차를 좋아하면 할수록 다른 나라의 다원도 찾아다니게 되는데, 그렇게 다른 곳도 다니면서 비교도 해 보고 다른 점도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차를 제대로 마셔본다면 그 매력을 한층 더 느끼게 될 것이다. 강의 중 한국차를 소개하고 함께 마시다 보면 늘 되돌아오는 피드백이 있다. 


"우리 차가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어요"


우리나라 차하면 탕비실이나 정수기 위에 올려져 있는 녹차 티백만을 생각하거나, 그마저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차가 어떤 맛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건 맛을 모른다고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간 우리차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있다. 우리 입맛에도 참 좋은 차가 여기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심지어는 내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 다른 나라의 친구들도 우리나라의 차를 함께 테이스팅을 한 후 '너희 나라에 좋은 차가 나서 좋겠다'며 부러움과 칭찬을 더하며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두 번째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깊은 이해도이다. 이게 우리나라의 특성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우는 것에 정말 열성적인 것 같다. 취미로 배우더라도 거의 준전문가 수준으로 배움을 이어나가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한국에서 차 수업을 들으면 꼭 차와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만 오시는 게 아니었다. 차를 즐겨마시고 있었는데 궁금해서 좀 더 배우고 싶으신 분, 다른 업종에서 종사하시지만 차를 접목해 보고 싶어 배우게 되셨다는 분, 커피를 못 마셔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더 알고 싶으셔서 오셨다는 분 등 입문자 과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미로 배우시는 분들을 꽤 많이 만나보았다. 하지만 영국에서 내가 수업을 할 때에는 좀 달랐다. 거의 90% 이상이 차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었다. 차 브랜드인 포트넘 앤 메이슨, 트와이닝, T2 등에서 일하시는 분, 개인적으로 티룸을 하시는 분, 다원을 소유하시고 직접 차를 만드시는 분, 개인 티브랜드를 오픈하려고 준비하던 분들이었다. 그나마 조금 동떨어져 있다면 호텔에서 바리스타로 일하시는 분 정도? 그런데 그분 역시 차를 고객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입장이니 그렇게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편으론 이 부분에 나에겐 부담스럽게 작용하기도 한다. 차를 많이 아시는 분이 내 강의를 들으러 오신다면? 내가 준비해야 할 자세는 차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제대로 아는 것이다.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비워 오시는 분들께 차에 대해 성심성의껏 그리고 제대로 말씀드리는 것이 첫 번째로 갗추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우리나라의 위치이다. 차로 유명한 중국도 일본도 우리나라 근처에 있으니 그곳을 가기에 부담도 없고 자주 갈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참 좋다. 아마 지금 상황에서는 '좋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지만, 차의 시작이자 정말 수많은 종류의 차를 가지고 있는 중국, 녹차로도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다른 나라의 차들도 대거 유통 중인 일본까지. 이 두 나라는 일 년에도 기회만 된다면 몇 번씩을 다녀오고 싶다. 우롱차로 유명한 대만 역시 우리나라와 멀지 않으니 지리적으로 얼마나 유리한 곳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욕심으론 우리나라를 인도나 스리랑카 근처나, 아프리카 근처에도 옮겨(?) 놓고 싶은 불가능한 상상도 해 보지만 지금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이 든다. 


외국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나 역시 다른 곳을 다녀와 보니 우리나라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차라면 홍차만 좋아했던 나도 이제는 우리나라 차가 얼마나 훌륭하고, 앞장서 알리고 싶은지 모른다. 이런 부분이 내게는 중요한 숙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차를 어떻게 더 잘 알릴 수 있을지 말이다. 우리나라의 차를 제대로 알고,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부분을 더 빛날 수 있도록 닦아 내 제 색깔을 내며 반짝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일, 그 일 역시 내가 티소믈리에로서 꼭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나는 차 마시기 참 좋은 곳,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렇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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