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양 Oct 10. 2021

서서히, 조금씩, 물들이다

두근거림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사실 차를 접하고 한국에서 차 공부를 하면서 바로 차 업계로 뛰어들어야겠단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차가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는 음반사였는데, 음악이 정말 좋아 들어갔던 회사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직성에 풀리는 성격인 나였기에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존재를 찾아야만 마음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진짜로 좋아하는 존재라면 음악처럼 그렇게 두근두근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음악이라면 정말 너무 좋고 가슴이 쿵쾅쿵쾅 했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들었던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는데, 온 세상에 라디오 같은 게 24시간 틀어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음악이 너무 좋았었다. 매일 이어폰을 가지고 다니는 건 필수였고, 라디오를 듣다 CD를 듣다 새벽 3~4시에 자기 일쑤였다. 다른 건 몰라도 뮤지션과 관련된 것이라면 외우고 싶지 않아도 절로 기억이 났고, CD나 테이프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자연스레 나의 드림잡 역시 라디오 DJ, 라디오 작가, 팝스타 전문 통역사, 음반사 직원 등 음악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중 음반사에는 꼭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7년을 몸담았다. 퇴사를 하던 그 해를 빼면 힘들어도 음악을 들으며 힘을 얻었고, 좋아하는 뮤지션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세상을 짊어질 것처럼 힘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때는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도,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 그만두는 데, 내가 과연 무언가를 다시 좋아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가슴 떨리는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마치 첫사랑을 보내고 난 후, 다시는 사랑을 못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퇴사 후, 회사를 그만둬 너무나 행복했지만 한편으론 그런 존재를 다시 찾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고 속상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퇴사 후 한 동안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엄청 돌아다니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며 방황했다. 그 존재를 꼭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 한 번 사는 인생 후회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존재는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음악만큼 좋아하는 것을 만나지 못할까 봐, 그 대체재(?)를 찾기 위해 그렇게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결론은 "있다"였다. 다만,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조금은 달랐을 뿐이었다.


솔직히 차는 나에게 처음부터 두근두근한 떨림을 주진 않았다. 스리랑카에서 마셨던 차가 맛있었고, 이상하게 한국에 돌아와서 그 맛이 자꾸 떠올랐다. 스리랑카에서 사 온 홍차를 계속 마시면서 자꾸 그곳을 생각하게 되고, 차가 궁금해졌다. 그저 좀 더 알고 싶었다.


'이게 뭐길래 이렇게 자꾸 생각나지?'

'매일매일 마셔도 내일이 되면 또 마시고 싶어질 것 같아.'

'이것보다 더 맛있는 게 있을까?'


자꾸 이런저런 물음들로 내 머릿속은 점점 가득 찼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에게 음악만큼 강렬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나는 천천히 물들어 가고 있었다.


차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생판 모르는 단어들의 향연으로 멘붕이었지만 이상하게 흥미로웠다. 배우는 것이 오랜만이라 마치 다시 대학생이 된 것 같아 정말 즐거웠고,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졌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차들을 다 맛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역사와 전혀  친하지 않았던 나였는데, 차와 관련된 역사는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렇게 재밌었지만 그래도 차는 음악에 비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왜? 심장이 쿵쾅쿵쾅 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차와 관련된 책을 읽던 중 문득 깨달았다.


'이 책이 왜 이렇게 재밌는 거지?'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거야?'

'차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왜 좋지?'

'왜 자꾸 알고 싶은 거지?'


자꾸 생각나던 질문들에 답하다 보니, 차가 내가 찾던 바로 그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그건 또 다른 모습의 두근거림이었던 것이다. 음악처럼 강렬한 모습이 아니었던 것은 차의 본연의 모습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번쩍이고 화려함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그와 비슷한 것을 자꾸 찾고 싶어 했었던 거다. 그렇게 나는 차를 다시 만났다. 차는 서서히, 조금씩, 나를 물들이며 자신의 모습을 드려내고 있었다.


나는 티소믈리에로서 차를 가르치는 입장에 있지만, 차를 배우는 것에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늘 서포트를 잘해 주는 남편도 가끔은 그렇게 수업을 듣고 또 듣고, 책을 읽고 배웠는데 또 배우는 거냐고 하지만, 나는 내가 배울 때 더 즐겁다. 물론 배우고 또 배워야 다른 사람에게도 더 많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내가 수업을 할 때도 즐겁지만, 차와 관련해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더 즐겁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수업을 듣는 것도 참 좋지만, 내가 강의를 준비하면서도 많이 배우게 되는데 그때도 참 좋다. 그래서 강의를 준비할 때도 강의를 하는 것만큼이나 재미있다. (물론 기한 내에 준비해야 한다는 그 압박은 조금 싫다) 그 어떤 것이 그렇지 않겠냐만은, 무언가 하나를 파면 생각보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데 차도 그중 하나이다. 그 점이 한 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점이기도 하다. 앞으로 무언가를 계속 배우고 또 배우고,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배울 게 있을 것 같아서 차를 하기 참 잘했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내 인생이 앞으로 채워질 생각을 하면 이제는 그만큼 설레는 것도 없다.


되돌이켜 생각해 보면 온몸에 전율이 오도록 두근두근 하게 만드는 존재를 쫓아 방황했던 나의 마음을 차분히 다독여주었던 것은 늘 차였다. 차는 그때에도 나를 묵묵히 안아주었던 것이다. 이제는 내가 차를 오래오래 따뜻하고 포근하게 안아주고 싶다.





 

이전 02화 전 티소믈리에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