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만 열려있다면
차는 전 세계에서 물 다음으로 가장 많이 마시는 곧 사랑받는 음료이다. 그런 차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게 느껴지게 되었을까.
내가 늘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차를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이다. 왜냐하면 차를 자주 접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라는 존재에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수업 중에 수강생 한 분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티룸은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순간 나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간 수업을 하면서 차를 좋아하고 접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서였는지 이런 질문은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져 이야기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질문은 창피한 질문이 아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난 수업을 하고 오는 내내 이 질문을 생각해 보면서, 오히려 용기 있게 질문하신 그분께 정말 감사하단 생각을 했다. 내가 풀어야 할 숙제를 정확하게 다시 한번 되짚어 주셨단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당연히 티룸은 그냥 들어가면 된다. 카페와 별 다를 바가 없다. 커피처럼 차를 주문하고, 차를 마시는 과정 중에 생소한 게 있다면 티룸을 운영하시는 분이 당연히 친절하게 알려주실 것이다. 맛집에 비유해보면 좋겠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 처음 가봤다고 생각해보자. 생소한 음식들이 메뉴판에 보인다. 이때 어떻게 하겠는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뭘 주문하겠냐고 물을 때, 어떤 메뉴가 맛있는지 추천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주문한 메뉴를 받았을 때 어떻게 먹으면 될지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처음 가보는 맛집이라 사전에 핸드폰으로 검색을 조금 해봤다면 이런 과정이 조금은 편히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티룸도 처음 가보는 맛집과 마찬가지다.
티룸에서도 그렇게 하면 된다. 티룸마다 가지고 있는 차도, 그 차를 우리는 방법도 그 티룸만의 방법이 있을 테니 그런 것을 들어보고 살펴보는 것도 티룸을 가는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다. 특히 처음 가보는 티룸이라면 나 역시 그곳에 계신 분께서 우려 주시는 차를 마시고 싶어 하고 요청드린다(여기선 차를 내가 우릴 수 있거나 또는 운영하시는 분이 우려 주시거나 둘 중의 선택권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왜냐하면 나보다도 그분이 그 차에 대해 더 잘 알고 잘 우려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이 보유하고 있는 차에 대해서 또는 같이 나오는 디저트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는 것을 재미있게 듣는 편이다. 듣다 보면 그분의 성향도 조금은 알 수 있고, 그 티룸의 색깔도 좀 더 자세히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차가 왜 어려울까 생각해보다보니 나도 마찬가지였단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 차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가족 중에 차를 즐겨 마신 사람도 전혀 없었다. 그저 차라고 하면 어릴 적 엄마가 물 대신 끓여주신 보리차가 전부였다. 내가 처음 내 돈으로 차를 사 본 것은 단기 어학연수로 미국 포틀랜드에 갔을 때, 적은 돈으로 예쁜 것을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샀던 티포르테였다. 심지어는 그걸 살 때 그게 차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구입했고, 당연히 선물만 하느라 내가 마셔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가 처음 맛있게 마셨던 차는 하와이에서 친구와 마신 잉글리시 블랙퍼스트였다. 그 차를 주문할 때 나의 의지로 주문했다기보다는 같이 마신 친구가 그 차와 같이 먹으려고 고른 다크 초콜릿을 보여 주며 함께 먹으면 맛있다길래 얼떨결에 나도 주문했었다. 그렇게 나도 대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차를 접했고 차를 마셔봤다. 게다가 차는 내게 그저 해외에 있을 때 잠깐 접해본 그런 음료였다.
나에게도 차는 저 멀리 있는 음료 중 하나였다. 오히려 커피가 더 가깝다면 가까웠다. 나를 늘 아껴주시는 우리 외할머니는 하루에 한 잔씩은 꼭 커피를 마시셨고, 어릴 적부터 2-2-3 스푼이라는 우리만의 룰에 따라 할아버지를 위해 커피를 탔었다. 우리 아빠도 사무실에는 꼭 믹스커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구매해 두시는 분이시다. 대학생이 되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커피를 배웠고, 회사를 다니면서 하루에 적게는 2잔 많게는 5~6잔이나 마시던 나였다.
생각해보면 차가 모르고 어렵다는 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그들 주변에 차가 없었을 뿐, 그리고 차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더 존재감이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알고 싶은 마음도 딱히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저 아득하고 애매한 존재가 되어 잘 모르니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지 않았을까. 내 수업에 와서 차를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시는 분들도 가끔 계신데 난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곤 한다. 모른다고 부끄러울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것이 궁금해져 알고 싶은 마음에 찾아온 그 마음이 오히려 더 귀하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차를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나처럼 티소믈리에이거나 차와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차를 즐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차를 마시는 데 있어서 지적하거나, 생소한 용어를 들먹이며 또는 차를 마시는 방법 등을 내세우며 무시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의 그릇이 그 정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깊게 들어가면 어렵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즐기는 입장에선 차의 맛과 향, 분위기 등이 중요하지 차에 대해 시험을 보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차에 대해 용어를 알아야 하고 외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 알지 못한 덕분에 하나씩 알아갈 수 있는 재미가 더 컸으면 좋겠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커피도 깊이 살펴보면 여러 용어와 테크닉 등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것에 있어서 더 알면 알 수록 어렵지만 더 알고 싶어지는 게 참 신기하다)
차를 마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닐까. 맛있는 차를 찾아 잘 즐기는 것. 그것이면 그만인 것이다. 이건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차에 대해 어려워 보이는 것은 그다음으로 잠깐 미뤄둬 보자. 그냥 무시해도 괜찮다. 나의 마음만 열려있다면 차는 어렵지 않다. 그저 따뜻한 물에 찻잎을 우려 마시면 되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수많은 차의 종류들, 차와 관련된 용어들, 차를 마실 때 보여주는 다도나 다례와 같은 모습들은 잠시 잊어도 좋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선 차 한 잔을 우리기 위해 물을 올려주길, 또는 카페에서 커피가 아닌 차도 한 번 주문해 주길, 또는 낯설게 느껴지는 티룸에 처음 찾아가는 맛집처럼 첫걸음을 해주길. 그렇게 첫 손길만 내밀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러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테니 말이다.
여전히 차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나의 숙제 중 하나이다. 그래서 늘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좀 더 재미있게 차를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좋은 차를 한 번 마셔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의 삶 속에서 문득 차 한 잔이 생각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