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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Sep 27. 2021

왜 차여야만 할까

내가 차를 좋아하는 이유

나는 내가 차를 좋아하는 이유를 종종 생각해본다. 차를 왜 좋아하냐고 묻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제 나에겐 너무 진부하게만 느껴지는 질문이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계속 나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티소믈리에라는 타이틀로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한 때는 정말 열심히 직장을 다녔고, 어떠한 한 곳을 안정적으로 꾸준히 다닌다는 것이 참 맘에 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떻게 그렇게 회사를 다녔나 싶을 정도로 그때의 나날들이 참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티소믈리에라고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하면서도, 막상 어떤 일을 하는지 되묻는 사람은 적긴 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티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어떤 직업인지 너무 생소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감은 잘 안 오지만... 와인 소믈리에는 들어봤으니까 얼추 그러한 부류일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수업 초반에 항상 나를 소개하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간단하게라도 소개하려고 한다.


포털사이트에 '소믈리에'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포도주를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사람 또는 그 직종, 포도주를 관리하거나 추천하는 직업이나 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와인에서 시작된 단어이지만 요즘에는 티소믈리에, 워터소믈리에, 전통주 소믈리에 등 마실 것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티소믈리에이다. 차를 전문적으로 알고, 차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취향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왕이면 더 재밌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고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차를 왜 좋아하는지 몇 번이고 물을 수밖에 없게 된다.


가끔 인터뷰할 기회가 있는데, 그때 물어오는 질문이기도 하다.

"차를 왜 좋아하시나요?"


그럼 나는 답한다.

"차를 마시면 온전히 저 스스로가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차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이유 외에도 정말 많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차를 마실 때는 정말 내가 된다는 것. 내가 가진 모든 역할을 내려놓고, 나 스스로가 되어 차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또 소중한 순간이기에 자꾸 함께 하고 싶은 것 같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무엇도 나에게 이런 느낌을 준 적이 없었다.


가족에게는 큰딸로서 늘 든든하고 뭐든 잘해나가는 사람이고 싶고, 남편에게는 사랑받는 아내이고 싶고, 심지어 아직 돌도 안된 우리 딸에게조차 다정하고 즐거운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다 보니... 차 앞에서 온전히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이 내겐 정말 필요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차를 마시면 마실 수록 나와의 대화는 깊어지기에 이 차를 내가 더 놓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단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내가 차를 가지고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차 앞에서는 더욱더 솔직해지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든다. 티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차를 전문적으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니, 차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차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 진다. 차에 대해 강의를 하지만, 나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늘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그 옛날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을까? 그 말을 끊임없이 들어왔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우리 자신을 아는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나에게 있어선 나를 아는 도구 중 하나가 차이다. 그리고 차를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차를 통해 그들 자신을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나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정말 작은 부분이지만, 차를 통해 나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 그 길의 방향을 차를 통해 살짝 보여주는 것이 나의 일 중 하나이다. 


오늘도 나는 차를 우리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나는 왜 오늘 이 차를 골랐을까?'

'오늘 왜 이 차의 향과 맛이 끌렸을까?'


그러면 곧 나의 마음이 대답한다.

'내가 오늘 마음이 이러해서 이 차를 마시고 싶었던 거구나.'

'이 차를 마셨던 지난날의 나의 마음이 오늘 잠시 필요했던 거구나.'


진짜 나를 찾게 해 준 이 차가 너무 좋아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차가 이렇게나 좋은데! 정말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셨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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