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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Apr 12. 2023

바람이 언니처럼 분다

그네를 타며 아이가 느낀 바람

올해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입소를 하게 된 첫째 아이는 놀이터와 사랑에 빠졌다. 우리 집 놀이터가 그렇게 큰 것도, 놀잇거리가 많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물론 이건 철저히 엄마의 관점이다) 놀이터를 말 그대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특히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꼭 이렇게 말하곤 한다.


"집 아니야. 놀이터! 놀이터!"


이때의 아이의 표정은 꼭 단호하고 진지한 표정이어야 한다. 그게 참 귀여워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웃음이 나곤 한다. 정말 진심인 거다. 이곳에 가기 위한! 


내가 다니던 나의 초등학교가 그 당시에는 운동장도 참 넓고 나무도 많고 한동의 건물에 들어가기만 하더라도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그런 느낌인 걸까. 아이에겐 이 놀이터가 하나의 큰 세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그저 아파트 단지 내에 작은 놀이터 정도로 보이지만 말이다.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한 달이 넘어간 시점인데,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우리 아이도 어린이집 후에 놀이터에 꼭 들르곤 한다. 이전에도 놀이터에 가는 것을 좋아라 했었지만, 요즘처럼 이렇게 좋아할까 싶기도 하다.


아파트를 들어서는 순간 나와 맞잡았던 손은 금세 뿌리치고 놀이터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 자그마한 뒷모습에는 언제나 설렘과 신남이 묻어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아이의 선택을 받는 놀이기구는 언제나 그네! 어릴 적 나도 그네를 참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면서 그네를 타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그렇게 그네를 자주 타고 있다. 아이와 함께 말이다. 


아이가 아직 어려 혼자 그네 타는 법을 모르다 보니, 아이가 그네 앞에 도착하면 천천히 가라며 앞서 간 아이를 보며 오히려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얼른 그네 위에 올려달라는 신호다. 아이를 그네 위에 올려주고 한참을 밀어주다 보면, 나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엄마도 그네! 그네 타!"


처음 이 말을 듣는데 그 말이 참 반가웠다. 같이 그네를 타고 싶은 마음이라니. 귀엽고 사랑스럽고 소중했다. 


"그래!"


라고 대답하고는 그네를 타는데 그 그네를 타는 동안은 마치 나도 아이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아닌 이 아이의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같이 그네를 타기 시작하면 아이는 나를 보고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한껏 웃어 보인다. 서로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그 순간 우리는 통한 거다. 그리곤 히히히 작게 웃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요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 중 하나이다.


25개월쯤이었을까.. 아니면 26개월쯤이었을까..

한 번은 그네를 태워주는데 기분 좋게 살랑이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나도 그 바람이 좋아 아이에게 말했다.


"와 바람이 부네? 좋다. 그렇지?"


"응!"


아이도 바람이 좋았는지 이렇게 대답하고 같이 바람을 느끼고 있는데 바람이 좀 더 세게 불어왔다. 그 바람을 맞고는 아이가 혼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바람이 언니처럼 부네?"


언니처럼 바람이 분다니...!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가 순간 깨달았다. 좀 더 바람이 세게 불어온다는 뜻이었다. 바로 전에 느꼈던 바람보다 더 세게 불어오니 언니처럼 바람이 불어온다는 거다. 


"뭐라고?"

"아... 맞네. 맞다. 바람이 언니처럼 부네?"


자기보다 큰 언니처럼 그네도 더 멋지게 타고 싶고, 언니처럼 놀이터를 뛰어다니고 킥보드도 타면서 활보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바람과 맞닿은 거다. 뭔가 자신이 잘 한일이 있으면 언니처럼 했다고 뿌듯하게 말하는 아이의 평소 모습과 겹쳐지면서 아이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뭔가 더 크고 좋게 된 상황을 '언니처럼'이라고 이야기하는 아이의 마음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마음이 나를 채워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어쩌면 이제 나는 가질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하는 말들. 서투른 표현으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말들. 그런 말들이 나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순간들이 점점 사라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아쉽기도 하고 말이다. 


최근 며칠 동안 병원을 오가면서 어린이집을 가지 못했다. 그래서 놀이터도 들르지 못했다. 내일 다시 어린이집에 가는 날인데, 내일도 어린이집을 나서면서 하원 후 들를 놀이터 생각이 아이가 다시 설레고 신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일은 좀 더 아이가 놀고 싶은 만큼 맘껏 놀 수 있도록 집에 가자는 말은 최대한 늦게 해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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