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호주 캔버라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 나는 붉은 물결의 열기에서 한참 먼 호주 캔버라의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일식집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곳 주민과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한 번에 몰려나와 내 정신을 파먹고 배를 불렸다. 나는 여기 사람들의 칼 같은 식사시간과 엄청난 식사량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어디 골목 끝에 조용히 숨어서 대기하고 있다가 12시 종이 '땡!' 치면 한꺼번에 튀어나와 주문대 앞에 끝도 보이지 않는 공포의 줄을 서는 게 분명했다.
주문을 받는 이는 나 혼자였지만 줄은 대개 출입문을 넘어 밖까지 이어졌다. 바쁜 시간에는 점장이 나와 잠깐 서빙을 돕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서빙도 내 몫이었기에 일은 집중을 요구했고, 정신은 물론 육체적으로도 고됐다.
폭풍 같은 점심시간이 지나 겨우 숨을 돌리며 음료 냉장고와 자동판매기 빈자리에 음료를 채우고 의자에 앉았다. '탈카닥, 탈카닥' 소리를 내며 캔은 제 몸을 동료의 몸에 부딪쳐 틈을 메웠다.
주방에서는 연변 출신 조선족 아줌마들의 설거지가 한창이었다. 전쟁 후의 설거지는 언제나 산처럼 쌓였지만, 아줌마들은 마술 같은 솜씨로 금세 설거지통을 비우고 선반을 채우곤 했다. 이곳에서 일하기 전 시드니의 한 레스토랑에서 반나절 내내 허리 꺾이도록 설거지 알바를 했던 나도 혀를 내두를 솜씨였다.
'슈욱~'
문이 열리며 실내의 지친 바람이 빠져나가는 소리에 눈을 돌리자 캥거루 한 쌍이 서있다.
"안이 따뜻하고 좋군요."
키가 작은 걸로 보아 암놈인 듯해 보이는 캥거루가 웃으며 말을 건다.
"안녕G'day, mates. 뭘 도와드릴까요?"
"응, 여기서 우리들이 먹을 만한 게 있나?"
키 큰 캥거루 쪽이 호주 특유의 코맹맹이 영어로 물었다. 부드러운 발음에 살짝 놀랐다. 캥거루를 위한 요리를 파는 음식점이 있을 리 없다.
일본제 SUV를 운전하고 다니며 호주 현지인들에게 일본인 흉내를 내는 한국인 점장에게 지시받은 대로 친절하게 영어로 메뉴를 설명했다.
"...이런저런 요리들이 있고...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음식은 잡채밥이나 두부튀김밥...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캥거루 님들을 위한 메뉴는 따로 없네요."
"우린 캥거루가 아니라고요. 우린 왈라비예요."
아, 그 캥거루보다 작은, 캥거루 같은, 캥거루 아닌 동물.
단호한 목소리에 왈라비라는 자부심이 묻어나 잠시 주눅이 들 정도였다.
"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역시 왈라비 님들을 위한 메뉴도..."
신중하게 메뉴를 보던 키 큰 왈라비가 만둣국을 주문했다.
다진 돼지고기가 들어간다고 조심스레 말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손의 물기를 닦는 아줌마들에게 부탁해 국물을 뜨겁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호주 사람들은 일식을 아주 좋아하지만 시드니나 캔버라의 많은 일식집은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고 맛도 한국식이다. 재밌는 나라.
내가 호주에서 일하던 시기에 일식, 청소, 세탁 분야는 한국 사람들이 잘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점점 중국, 베트남 사람들의 값싼 노동력에 밀리는 형국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왈라비 커플은 만둣국 그릇 바닥까지 혀로 깨끗이 핥아먹은 후 냉장고에서 다이어트콜라를 한 병 꺼내 빨대 두 개를 꽂아 나눠 마시며 돈을 계산하러 다가왔다.
"음식 어떠셨어요?"
"그런대로."
'so so.'라는 표현. 간편하다.
왈라비는 사람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너무 가까이 붙지도 않는다.
적선하듯 툭 내려 놓는 돈을 받아 어렵게 거슬러 주자 인사도 없이 뒤돌아서서는 폴짝폴짝 뛰어 나간다.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올랐다는 건 대단하다. 주방에서 요리하던 조선족 아줌마들은 한중전이 벌어지면 ‘당연히’ 중국을 응원한다고 했다.
왈라비들이 떠난 자리에 스타세일러Starsailor의 럴러바이Lullaby가 잔잔히 흘렀다.
그 일식집 뒷이야기.
- 당시 일하던 일식집 주방은 연변에서 와서 불법 체류하던 조선족 아줌마 둘이 맡고 있었다. 물론, 일식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분들이다.
- 지독한 성격에 악덕업주였던 일식체인점의 한국인 사장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하는 학생들을 고용해 3개월 이상 근무에 저렴한 주급을 주는 극악한 계약 조건으로 착취했고, 조선족 아줌마들 역시 불법 체류자라는 점을 악용해 저가로 부려먹었다. 교민 사회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 내가 일하던 식당의 지점장은 호주 현지 주민들 앞에서 일본인인 척했고 일본어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일본어 실력은 허접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성격은 서글서글했고, 사장만큼 악하지는 않았다.
- 호주 남부 여행 중에 숲에서 만난 왈라비에게 빵 덩이를 주었는데 뒤뚱뒤뚱 긴 꼬리를 끌며 가까이 걸어와서 손으로 받아갔었다. 이건 정말이다. 원하면 악수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니까.
- 애들레이드 시티를 여행하던 중에 지난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마치 자기들이 초등학생인 것처럼 왈라비들이 자유로이 뛰어놀더라.
- 렌터카를 빌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길가에 로드킬 당한 캥거루나 코알라 시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야간 운전 중에는 야생동물, 특히 캥거루를 조심해야 했는데, 덩치가 큰 놈은 사람보다 커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대책도 없이 강시처럼 불쑥 튀어나와 도로를 가로지르거나 한가운데 멈춰서 자동차 라이트를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 일식집에서 모은 돈으로 다시 여행길에 오르던 나를 눈물로 배웅하던 정 많고 순해 빠진 두 조선족 아줌마들은 지금쯤 연변으로 돌아가 편안한 삶을 살고 계실까. 당시 적었던 노트의 한 페이지에는 한문으로 직접 적어주신 이름과 연변의 집 주소, 전화번호가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