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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rliner Jan 19. 2018

할머니의 숨

내 생애 최고의 순간

 매번 그랬다. 인터뷰든, 기고든, 누군가 ‘최고’를 뽑아달라고 할 때마다 나는 단어의 무게에 눌려 힘겨워했다. ‘최고로 꼽는 영화, 최고의 책, 최고의 음악, 최고의 여행지’ 같은 단순하고 주관적인 취향을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단 하나를 선정하기 버거웠을뿐더러, 억지로 하나를 정했을 때 그에 주어지는 선입견과 단정의 차가운 메시지들이 나를 좁은 울타리 안에 가뒀다. 하나의 가변적이고 취약한 선택은 마치 발가벗겨진 채 오컴의 면도날 위에 발을 딛고 선 기분이었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 최고의 순간을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생을 살기는 한 건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문장을 수없이 되뇌고 곱씹었다. 남들이 최고라고 인정할 만한, 혹은 부러워할 만한 순간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최고는 언제였을까.

 내 집을 계약했던 순간이나, 공연에서 멋지게 연주하고 싶던 기타를 해외직구를 통해 받았던 순간 같은 '자본주의적 행복'은 꼽지 말자.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친구들과 봉고차를 렌트해 누볐던 호주 여행은 어떨까. 드러머로 활동하다 내 감정을 노래하고 싶어 기타를 메고 마이크 앞에서 직접 노래했던 첫 공연일까, 제본된 내 책을 처음 받아봤던 순간일까, 배우가 부른 내 드라마 OST가 1위를 했을 때였을까, 스페인 여행 중 만난 독일 여성이 내가 당사자인지도 모른 채 티어라이너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던 순간은 어떨까.

 그 무엇도 최고의 순간으로 꼽기에는 부족했다. 지나고 떠올렸을 때 울림이 덜하다. 대개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농익어서 아름답게 치장되기 마련인데, 왜 내 것들은 곰삭아 색이 바래나. 감정의 기복이 강의 하류같이 잔잔하고 무덤덤한 나는 쉬 최고의 순간을 꼽지 못하고 기억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 ‘뭐든 좋으니 하나 내어달라’고 사정했다.   

 

 쓰러진 외할머니의 가벼운 몸을 기억한다. 음악 한답시고 살림이 넉넉지 못해 습하고 좁은 반지하 작은 공간에 지내던 외손자에게 얹혀살던 외할머니. 평생 일해 집 한 채 마련했으나 막내 외삼촌의 사고로 모두 날리고 쓸쓸히 노년을 보내던 당신. 내 짓궂은 농담도 잘 받아주고, TV를 즐겨보며 웃고는 했지만, 외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는 닦이지 않는 슬픔이 묻어있었다.

 외할머니가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던 날, 그 평범했던 작고 둔탁한 소리를 놓치지 않고 수상히 여겨 먼저 달려간 이는 엄마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외할머니가 전날 심하게 체한 듯 답답해했던 터라 엄마가 병원에 가자고 설득하며 건강을 걱정했다고 했다.     


 반지하 좁은 주방에 붙어있던 화장실은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 높은 층계 위에 어색하게 위치했기에 천장은 낮고 문은 좁았다. 영화 <기생충(봉준호 감독)>의 화장실보다 공간은 더 좁았지만 비슷한 구조였다. 정신을 잃은 외할머니를 깨우려 애타게 울며 소리 지르는 엄마를 진정시키고 외할머니를 양팔로 번쩍 들어 방으로 옮겼다. 외할머니는 나보다 무거웠고, 세 계단 위에 있던 화장실 문은 작고 높았으며, 당시 허리도 좋지 않았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모르겠다. 서둘러 119에 전화해 응급상황을 이야기하는데 비정상적으로 침착한 내 목소리가 남의 말처럼 이질적으로 들렸다. 낮고 온순한 말투와 조급한 마음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따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구급차를 기다리며 차가워져 가는 외할머니의 굳은 팔다리를 주무르다가 숨이 멈춘 사실을 알고는 심폐소생술을 했다. 예비군 훈련에서 곁눈질로 배워둔 게 도움이 되었다. 규칙적으로 빠르고 세게 가슴을 누르며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무르고 늘어지고 한없이 연약한 몸에 절망했다. 이 정도면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장기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될 즈음 '푸르르' 외할머니의 입술이 벌어지며 긴 한숨이 터져 나왔고 곧 간헐적으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혈색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입으로 숨을 쉬는 데 안도하며 팔다리를 주무르고 우는 엄마를 안정시켰다. 옅은 감정의 기복과 차분함이 이런 긴박한 때마저 냉철함을 유지하게는 했지만, 정작 가슴은 파삭하게 말라서 아려왔다.

 구급차가 온 이후의 일은 구급대원이 떠나며 준 명함 외에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에서 들렸던 것과 열 개의 손가락 끝이 전기가 오른 듯 차갑게 저렸다는 점은 선명하게 각인되어 남았다.     


 외할머니의 노년은 안쓰러웠다. 어릴 적 일본 봉제 공장에서 늦게까지 일하며 박봉과 폭력에 고생했고(심하게 맞은 적도 있다고 했는데 독립운동이나 노조 활동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몰래 가슴 속에 천을 조금 훔쳐 나왔다는 이유였다. 힘겨웠을 시절이고 끔찍했던 추억이겠지만 웃는 얼굴로 ‘죽도록 맞았어’라고 농담처럼 들려줬다), 적잖은 유산을 물려받았던 외할아버지가 사업이 연거푸 망하자 일하지 않고 평생 집에서 한량으로 소일하게 되면서 외할머니가 은퇴할 때까지 30년을 넘게 보험 일을 하며 가장 역할을 대신했다. 고생한 만큼 노년을 즐길 자격이 있었지만, 불효자의 사고에 집을 뺏기고, 의지했던 딸인 내 엄마마저 신용불량자가 되자 둘은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싸서 반지하 동굴로 도망치듯 내려와 외손자에게 의지하게 되어버렸다. 아들딸들도, 결혼한 친손자도 있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자식들을 원망하거나 서운함을 표하지 않았고 간혹 통화를 하면 그리워하기만 했다.  

   

 외할머니는 고기를 좋아했다. 가난했던 나는 당신 건강을 걱정해 웬만해서는 먹지 않기를 권유하고, 설득하고, 때로 핀잔을 주었다. 이전에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고, 여전히 뇌혈관 문제로 처방약을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고기가 노인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믿음에 더해 어느 정도는 내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였기도 했다. 엄마도 외할머니에게 자주 불고기나 고기반찬을 대접하고 싶어 했지만, 간헐적으로 적은 돈을 벌어오는 내 눈치를 봤다. 의식 없이 병실에 누운 모습을 보고 있자면 고기를 맘대로 대접하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려 죄송했고, 혹시 눈칫밥을 먹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씁쓸한 죄책감이 들었다.  

   

 병원에 옮겨진 외할머니는 초반에는 위기를 넘긴 듯싶었지만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한창이던 영화음악 작업 때문에 병문안을 자주 갈 수는 없었다. 병실 침상에 누운 외할머니 손을 어루만지면 내 손가락에 닿은 살이 푹 눌려 들어가 한참은 회복되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한없이 불쌍해 꺽꺽 목이 막혔다. 쓰러져 경직되었던 당시보다 한결 부드러웠지만 피부가 축 늘어진 손에는 어떤 의지도, 힘도, 생명도,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 ‘할매’라 부르며 반말로 농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했던 관계가 엊그제 같은데 아득하게 멀게 느껴져 속이 메스꺼웠다.     

 외할머니의 관은 내가 화장실에서 급히 감싸 들었던 몸보다 수십 배나 무거웠다. 믿을 수가 없었다. 다섯의 건장한 친척과 함께 나눠 들었음에도 나는 관이 무거워서 상실감으로 허한 정신을 다잡아야 했다. 엄마는 병원에서도 쓰러졌고, 입관 때도 오열하다 쓰러졌으며, 화장터에서도 다시 쓰러졌다. 쓰러진 엄마의 몸을 부축하다가 숨을 쉬지 않던 외할머니의 몸이 다시 떠올라 귀에서 쿵쾅 심장 소리가 났고 손이 저렸다.  

   

 태어난 엄마를 처음 안고 젖을 먹였을 외할머니의 가슴을 누르며 숨을 쉬길, 생명이 이어지길 바라던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당신의 숨이 입술 사이로 ‘푸르르’ 새어 나오던 순간, 소중한 생이 돌아온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내 최고의 순간은 동시에 최악의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최고와 최악이 멀지 않았다. 죽음을 감추고 헛된 모래성만 보게 만드는 잿빛 사회에서 내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중요한 계기는 가까웠던 이의 갑작스러운 멈춤이었다. 외할머니는 그렇게 내게 삶과 죽음을 가르쳐 주었다. 최고와 최악, 삶과 죽음이 단숨에 몰려오고, 한꺼번에 밀려갔다.

 

                                                     


 이 글은 대학 '행복한 글쓰기' 강의 중 리포트 과제물로 작성했던 에세이입니다.

 글쓰기는 차라리 쉬웠으나 최고의 순간을 ‘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할머니의 숨’은 메멘토 모리에 대한 글이며, ‘할매’라 부르며 반말로 농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했던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의 되새김입니다. 인생에 몇 번의 전환기가 있다면, 10년 전 그 순간이 제게 한 전환기였기에 최고의 순간으로 정했습니다. 글은 항상 원하는 양보다 길어져 쓰는 시간보다 줄이는 시간에 더 공을 들입니다. 줄이다 보면 뼈만 남고 정작 중요한 살이 발린 것 같아 아쉽습니다. 결과물은 언제나 그렇듯 새삼스레 저를 알게 하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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