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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먼지 superdust Dec 22. 2021

집에 대한 소망

2. 소우주, 나의 일상 - (3)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집으로 이사했다. 가장 어릴 적 기억나는 첫 번째 집은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그렇다고 부자들 집 같은 호화로운 마당은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시멘트 바닥에 작은 화단, 철문이 있는 오래된 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집에서는 강아지와 토끼를 키웠다. 정말 어린 시절이었기에 어렴풋이 강아지와 토끼, 그리고 집의 이미지 정도만 기억난다. 그리고 토끼는 비를 맞으면 안 된다는 것과 생각보다 냄새가 많이 나는 동물이라는 것도.


  두 번째 집은 작은 시장 근방에 있는 반지하 빌라였다. 그 집에서는 종종 쥐가 나왔다. 집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밤에 잠자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 보니 엄마가 이불 밑에 들어온 쥐를 잡았던 기억은 생생하게 난다. 그리고 조금만 걸으면 바로 나오는 시장에서 맛있는 찹쌀도넛을 1개 100원에 먹을 수 있었다는 것도 어쩐지 기억에 남는다. (어릴때나 지금이나 먹는 걸 좋아하는 건 여전한가보다.)


  세 번째 집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잠깐 살았던 집인데 슈퍼를 아래에 둔 2층 집이었다. 언덕 위쪽에 자리 잡은 집이었는데, 바로 정면 언덕을 내려가면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나왔다. 학교랑 가까운 것과 눈 오면 언덕에서 썰매를 탈수 있는 게 재밌긴 했지만, 집이 너무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는 이사하고 난 후 나중에야 집 주인이 부서진 창문을 수리하지 않고 벽지로 그냥 도배하고 감춰놨던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네 번째 집은 반지하 집이었는데 여기서 8~9년 정도로 꽤나 오래 살았다. 이 집에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여기가 바로 벌레의 소굴이었다. 가정집에서 흔하게 나오는 바퀴벌레부터 반지하의 특유의 습함 때문인지 종종 귀뚜라미도 출몰하곤 했다. 통통 튀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무서운지 볼 때마다 소리를 안 지를 수 없었다. 물론 귀뚜라미는 소리지르는 내가 더 무서웠겠지만.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 이사 간 다섯 번째 집은 산과 가까운 정말 높은 언덕에 있는 집이었는데 집은 작았지만 따뜻하고 좋았다. 이때 거의 처음으로 따뜻한 집에서 살아본 것 같다. 이 전에는 대부분 추운 집이었고, 겨울에 집이 따뜻하다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집만은 달랐다. 겨울에도 난방을 하면 바닥이 따끈하고 웃풍이 없어서 반팔을 입고 다니곤 했다. 교통 편이 좀 불편한 것만 빼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여섯 번째 집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인데,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다. 겨울에 집이 너무너무너무 춥다. 집이 오래되어 웃풍이 심하고 난방을 해도 거실은 거의 따뜻해지는 법이 없다. 그래서 몇 년간은 거실에 카펫을 깔고 살았는데 조카가 태어나면서 카펫은 청소도 힘들고 먼지도 많아서 다시 장판으로 바꾸었더니 수면양말 없이는 지나다닐 수가 없다. 화장실은 또 쓸데없이 커서 더 춥다. 씻을 때마다 전쟁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소망하게 된 집은 겨울에도 따뜻한 집이다. 물론 새로 지은 집 같은 경우는 대부분 따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제껏 살아왔던 집이 대부분 추웠기에 이것이 하나의 소망으로 자리 잡았다. 겨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집이 너무 추운 탓이기도 해서, 아마 따뜻한 집에서 살게 되면 1년의 1/4인 겨울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1/4도 어쩌면 작게나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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