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밤에 늘어놓는 잡설

구름아, 시끄러...

by 겨우사리

오늘은 이상한 날이었다. 몇 시간 자지 않았는데도 정신이 맑아서, 다시금 까무룩 잠에 빠져들어 흥미로운 꿈을 꿔서, 좀처럼 흐르지 않는 시간에 열병이 도져서... 이건 대체 무슨 계시일까?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아른거렸다. 기대하고 갈망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조차 없건만 나의 낙관은 좀처럼 가물지 않았다. 이건 희망인가, 절망인가?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두 하나의 원이요, 망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내가 품고 있는 것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욕구라는 뜻이리라.
한없이 추락하는 이유 또한 그러하리라.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이가 어떠한 것을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그것이 그들에게 보통이요, 다르지 않은 특별함이며 누군가에게 좀먹어가는 시간이 아무렇지 않은 평범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절망이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란 사실을 쉽게 납득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가치판단의 기준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니까.
하루쯤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한 끼 정도 걸렀다고, 이틀 정도 씻지 않아도, 하루를 지새웠어도, 단순히 커피 한 잔을 마시지 못했다고... 절망에 빠지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가치가 누군가에겐 큰 의미를 지니는 행위라는 건,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타인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리라.
누군가에겐 사랑이, 누군가에겐 자본이, 누군가에겐 시간이... 그 어떤 가치보다 앞선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우리는 서로 너무 많은 것이 다른 객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하는 듯했다. 그건 친구도, 연인도, 형제자매, 부모, 자식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정론이리라. 우리는 종종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자신이 용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영역을 우리는 법이란 테두리로 묶었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우리는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우리가 온전히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위선일지도 모른다. 흔히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 상종 못할 사람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같은 종족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동물은 어떠할까.
우리가 동물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단순히 그들의 습성을 학습하여 행동의 의미를 유추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정말 생각하는 온전한 이해라는 행위가 가능할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새벽만 되면 잠을 자지 않고 온종일 울어대는 고양이에게 대신 뜻을 전해달라 부탁하고 싶다. 제발... 얌전히 잠들어주었으면, 인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비루한 존재는 오늘 같은 날이라도 편히 잠들고 싶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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