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파트 2일 필요가 없었다.

라제를 뛰어 넘을 희대의 역작

by 겨우사리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라스트 오브 어스’를 꼽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강하게 끌었던 건 스토리였다. 나는 조엘의 선택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고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그리고 후속작이 나왔다. 감독은 이 게임을 그저 후속작이 아닌 ‘파트 2’ 라 명명했다. 나를 감동시켰던 이야기가 마무리된 것이 아닌 연장선에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런 감독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


이 게임은 ‘파트 2’ 일 필요가 없었다. 아니 ‘파트 2’ 가 되어선 안 됐다.


전작의 엘리는 ‘면역체’ 라는 설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백신을 만들기 위해 엘리가 죽어야만 했다. 조엘은 백신 대신 엘리를 택했고 그는 비난 당해야 마땅했다. 인류의 존망과 하나의 생명을 잣대에 두고 개인적인 애정을 택한 그였기에. 허나 나는 그런 그를 마냥 비난할 순 없었다. 나는 조엘이 어떻게 아이를 잃었는지 지켜봤고 우리는 1년 여간 대륙을 횡단하는 여정을 함께 했으며 그들은 서로의 생명을 구하고 구함 받았다. 죽은 딸이 마지막으로 선물해준 손목 시계를, 완전히 고장난 그 시계를 20년 동안이나 팔에서 때지 않은 그였다. 그런 그에게 딸 같은 존재를 희생하여야 한다는 걸 그는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임을 하는 동안 조엘이었던 나는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조엘이 무참히 살해당했다. 아주 잔인하게, 자신의 딸과 같은 엘리의 눈앞에서.

나는 엘리처럼 분노했고 엘리와 함께 복수를 위해 미친 듯이 달렸다.

그런 나에게 조엘의 살인자를 조작하라고?


감독은 이번 작품의 테마가 분노라고 했다. 의도한 것이라면 아주 대단한 양반이다. 지금 나는 이 거지 같은 작품에 한 없이 분노하고 있으니까.

나한테 지독한 경험을 선사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엘리일 필요가 없었다.

감독의 사상을 전개하기 위해 나의 조엘이 소비될 이유 또한 없었다.


조엘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다. 스토리가 유출되었을 때, 나라도 조엘의 죽음을 다룰 터였기에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인류의 희망을 이기심에 저버렸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엘리의 선택이 되리라 예상했다. 백신을 위해 스스로 희생한다거나… 자신이 백신이란 사실을 무기 삼는다거나 뭐 여하튼 엘리가 유일한 면역체라는 사실은 이 극 중에서 활용도가 무궁무진했다. 이 따위로 있으나 마나한 설정이 아니었단 말이다. 몇몇 위기를 면역으로 극복하는 것, 그 따위 것은 별 것도 아니다. 1편에서 가장 강렬했던 장치가 바로 엘리가 유일한 면역체라는 것이었다. 인류 대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택한 남자, 그게 1편의 핵심이다.


2편의 이야기가 왜 엘리여야 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 전편의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이런 이야기라면 더욱 독이 된다는 걸 감독은 몰랐던 걸까? 주인공을 비슷한 설정의 다른 캐릭터로 바꿔도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 아이는 면역일 이유가 없고 단지 아버지가 한 연합체를 궤멸 시킨 이유가 자신 때문이었단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엘리를 대체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항간에서는 PC 요소가 이 부분의 마이너스 라고 하는데 사실 PC 요소가 문제가 아니라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사상이 내러티브보다 앞서 있단 것이 문제이다. 전형적인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이 게임에서 그 프로파간다가 긍정적이냐 묻는다면 글쎄… 거부감이나 들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감독이 자신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게 아닌 이해시켜야 했다. 1편에서 조엘의 선택을 이해시켰듯이. 이번 이야기는 작품 자체의 주제도 잃었고 프로파간다로서 역할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가 ‘파트 2’가 아니라 그저 후속작이었다면, 조엘과 엘리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호불호가 갈렸을지언정 이처럼 비난 여론이 거세진 않았을 것이다.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어디서 이런 걸 체험해보겠는가? 아주 역겹고 불쾌했다. 잊지 못할 것이다. 1편과 다른 의미로. 그 경험이 게임이 주는 메시지와 결부되었다면 이보다 더한 작품은 없을 테지만 도대체 당신의 의도와 무슨 연관이 있어서 이 따위 체험을 강제 시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작품에 엘리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닐 드럭만의 메시지만 두드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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