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줘서 고마워?

영화 - 브로커

by 겨우사리

원치 않는 아이였다. 아이를 키울 처지가 되지 못했다. 자신의 직업 특성상 아이에게 온전히 시간을 쏟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데다... 아버지가 될 인간도 형편이 낫다고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여자와 남자는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아이의 탄생에 기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책임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이 되리라. 아이는 축복 받기 보다 원망과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건 비단 자신도 예외는 아니리라. 그런 아이가 사랑 받을 수 있을까. 너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을까?


두 여자가 있다. 그들 아이를 위한 선택을 했다. 한 명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고 한 명은 무책임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하나는 포기를, 하나는 버려야만 했다. ‘엄마’라는 역할이 둘에게는 과분했기에. 여자는 자신이 옳다고 믿었다.


비가 오는 밤, 무책임한 여자는 아이를 베이비 박스 안이 아닌 길바닥에 버려두었다. 책임감 있는 여자는 아이를 버리는 여자가 가증스러웠다.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낳지 말았어야지’

유아를 납치해 파는 브로커를 잡기 위해서 그들이 아이를 납치하는 교회 근처에 잠복 중이었다. 브로커에게 들킬지도 모르지만 그대로 두면 아이는 죽고 말리라. 책임감 있는 여자는 무책임한 엄마가 사라지자 아이를 베이비 박스에 넣어주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 때문에 아이가 납치된 것도, 아이라 부르지 못할 생명을 거둔 여자가 생명을 지켜낸 일도.


브로커는 무책임하지만 엄마가 된 여자와 책임질 수 없기에 엄마가 되지 않은 여자가 엄마가 되고 싶어하는 여자에게 아이를 파는 브로커와 얽혀 마침내 엄마로 거듭나는 이야기이다.

허나 본래 이야기보다 돌출된 메세지가 작품의 완성도를 잡아먹고 말았다. 홍보 문구로 쓰이는 말이다.


‘태어나서 줘서 고마워’


이런 말을 들어봤던 게 언제 였던가. 학생 시절 생일이면 장난스레 부르던 노래조차 ‘왜 태어났니’라며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던가. 부모가 모두 계신 나는 그런 농담이 장난이란 걸 어렵지 않게 받아드릴 수 있었다. 내가 이 질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에 표류하며 목적과 의미를 상실했을 사춘기를 넘어 성년에 가까웠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여기껏 극복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렇기에 감독의 작품성보다 메세지를 앞세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메세지가 돌출 되어 작품성이 떨어졌다한들 그 메세지로 소영은 비로소 엄마로 거듭날 수 있었으리라.


본래는 소영과 수진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와 소영이 살인을 저지른 사유 등등을 이야기하며 생명에 대해 이야기해볼까했지만... 모르겠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헤치지 않으면서 사유를 전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 메세지를 부정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사실 그렇게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 자부하는 사람조차 본질을 잊지 않았던가.

존재에 확신이 없는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에 매달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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