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처럼 한 해가 가문다. 달라진 점이라곤 입도 대지 않던 술을 한 두 잔 즐기게 되었단 거뿐. 그조차 위스키에 빠진 친구의 술 한 잔 같이 어울려주지 않는다는 투정에 별 수 없이 받아주는 게 전부이지만 말이다.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건 그렇지 않아도 주체하기 힘든 성정이 한올 한올 풀려 좋지도 않은 자제력과 차고 넘치는 감수성이 감당할 수 없을 만치 터져서 나라는 존재를 잡지 못하고 하늘거리는 부유감에 휩쓸려버리기 때문이리라.
시답잖은 농담에 누구라도 질색하는 말장난을 곁들인 술자리는 흥이 떨어지고 나면 언제나 하소연과 한탄만 남기 마련이었다. 꾹꾹 억눌러 싸매던 남부끄러운 이야기를 훌훌 털어놓고 나면 녀석은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 말하는 너를 보며 나는 술을 머금었다. 인생에 맞고 틀린 건 없다고 상투적이 답 말곤 뱉어낼 만한 위로가 마땅치 않았다. 뻔한 이야기였다. 인생의 정답은 없고 우리는 모두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일뿐이라고, 삶의 주체는 타인이 아닌 자신이지 않느냐고. 빨간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주는 어른이, 이제 우리이지 않느냐고. 그조차 정답이 아닌 사회에서 모나지 않은 방향을 일러주는 길라잡이가 전부요, 그 펜조차 항상 정답을 가리키는 건 아니란 걸 우리는 알고 있지 않았던가. 남들은 모두 동그라미 친 인생에 스스로 내던지는 사람도 부지기수 모두가 엑스라 하는 삶에 동그라미를 새기는 사람도 종종…. 결국 누구에게 펜을 쥐어줬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겠냐고 자신이 쥔 펜을 스스로 꺾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스스로에게 동그라미를 줄 수 있다고, 그게 그저 정당화에 그칠지라도 내가 이 거지 같은 펜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 또한 그렇지 않겠냐고.
나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삼켰다.
술잔은 차는데 기운이 흩어지듯 찬바람은 차오르는 달을 부추겨 달음 치는 심장이 겨우내 숨을 뱉어낸다.
“달이 차네.”
온 간데없는 시꺼먼 하늘, 찬 달빛이 술잔에 어스름이 들러붙어 잔을 기울였다.
“미친놈, 취했냐?”
“안 취하고 배기냐? 씨발 좆도 없는데 맞는지 모르긴 답답하다 답 없는 새끼야.”
녀석은 웃는다. 속없이 웃는다.
“하, 그러게 답도 없네 이 좆같은 인생.”
“몰랐냐? 원래 답은 없었어.”
“똥 싸지 말고 술이나 적셔.”
잔이 맞부딪혔다.
답 없는 새끼와 속 없는 새끼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주정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