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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Mar 25. 2022

밝은 밤

북리뷰


- 제목 : 밝은 밤

- 저자 : 최은영  



- 책소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와 서정적이며 사려 깊은 문장,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뜨거운 문제의식으로 등단 이후 줄곧 폭넓은 독자의 지지와 문학적 조명을 두루 받고 있는 작가 최은영의 첫 장편소설. 작가가 2020년 봄부터 2020년 겨울까지 꼬박 일 년 동안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작품을 공들여 다듬은 끝에 선보이는 첫 장편소설로, 「쇼코의 미소」 「한지와 영주」 「모래로 지은 집」 등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편소설에서 특히 강점을 보여온 작가의 특장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밝은 밤』은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며 자연스럽게 백 년의 시간을 관통한다. 증조모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나’에게서 출발해 증조모로 향하며 쓰이는 이야기가 서로를 넘나들며 서서히 그 간격을 메워갈 때, 우리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건 서로를 살리고 살아내는 숨이 연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 자체가 가진 본연의 힘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출처 : 알라딘]   




- 기억에 남은 한 문장

하지만 할머니는 그날 그 자리에서 불안을 느꼈다. 경계하지 않을 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다. 겨우 함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그런 생각은 증조모로부터 온 것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좋다, 행복하다, 만족스럽다, 같은 표현을 하면 증조모는 부정탄다고 경고했다. 자식이 예쁠수록 못났다고 말하고, 핼복할수록 행복하다는 말을 삼가야 악귀가 질투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늘 그런 것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함께 웃고 즐거워하고 따뜻함을 나누는 시간을 그대로 누리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던 것 말이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있었으니까. 아무리 불안에 떤다고 해도, 좋은 순간을 그대로 누리지 않으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으니까.

P. 199   




- 감상평

순탄하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경으로 잔잔한 느낌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주인공이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그때로 돌아간다. 어려웠던 그 시절을 걸어온 할머니를 통해 그때의 아픔을 느끼게 해주면서 동시에 잘 버텨온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면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한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소중한 인연의 끈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후회는 하지 않으려 한다. 후회는 슬픔과 아쉬움 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회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편이다. 그래도 후회되는 게 있다. 멀리 외국으로 떠나기 전날,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러 갔지만 잠이 든 모습만 보고 돌아왔다. 다음 날, 할머니는 내게 서운한 감정을 표현했다. 외국에서도 종종 전화 통화를 나누었지만 언젠가부터 난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주무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내게는 마지막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사셨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더라. 그리 먼 곳에 계셨던 것도 아닌데, 대화를 오래 나눈 적이 없던 것이 아쉬워졌다. 가족들, 가까운 사이일수록 대화를 더 많이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고 다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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