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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Oct 11. 2024

허송세월

북리뷰



     제목 : 허송세월

     저자 : 김훈



     책소개

삶의 어쩔 수 없는 비애와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 김훈.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삭아드는 인생의 단계를 절감한다는 그가 “겪은 일을 겪은 대로” 쓴 신작 산문을 들고 돌아왔다. 생과 사의 경계를 헤매고 돌아온 경험담, 전쟁의 야만성을 생활 속의 유머로 승화해 낸 도구에 얽힌 기억, 난세를 살면서도 푸르게 빛났던 역사의 청춘들, 인간 정서의 밑바닥에 고인 온갖 냄새에 이르기까지, 그의 치열한 ‘허송세월’을 담은 45편의 글이 실렸다. ‘본래 스스로 그러한 세상’의 이치를 아는 이로서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고도 섬세한 문체로 생활의 정서를 파고든 《허송세월》은 김훈 산문의 새 지평이다.

[출처 : 알라딘]   




기억에 남은 한 문장

늙기의 즐거움


네 안 피우면 끊는 거다, 라는 이 단순한 말 한 마디에 나는 창피했다. 더 이상 들이댈 말이 없었다. 노스님은 고도로 응축된 단순성으로 인간의 아둔함을 까부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p. 23



시간과 강물


“물을 잘 봐라. 흐르는 물을 보면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 물이 흘러가는구나.”

나는 좀 더 자란 후에야 아버지의 말에 담긴 고통과 희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흐름을 잇대어 가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의 새로움을 말한 것이었다. 경험되지 않는 새로운 시간이 인간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고, 그 시간 위에서 무너진 삶을 재건하고 삶을 쇄신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강물은 미래로 향하는 시간이었다.

p. 92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한국의 근대사는 가야 할 길이 멀고 발걸음이 다급했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초개로 여기는 사회 풍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것이 지나친 말이라는 것을 내가 모르지 않거니와, 국가와 사회가 인간 생명을 유린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목표와 사명을 설정해 놓고 그쪽을 향해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는 돌진을 강행해 온 것이 사실이므로 나의 말은 다소 거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p. 117   




감상평

작가님의 소설 ‘하얼빈’과 ‘칼의 노래’를 인상 깊게 읽었었다. 그래서 새로운 산문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크게 고민하지 않고 구매했다. 허송세월, 삶에 가치 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작가님은 어떤 허송세월을 보내는지 궁금했다. 책의 내용은 사소하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작가님의 생각과 마음의 깊이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글을 읽고 있으면 내 마음도 담담해지더라.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나는 지금 어떤 세월을 보내고 있는지, 나는 먼 훗날 어떤 세월을 보낼지 생각해 본다. 지금은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그저 하루하루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하며 세월을 보내려 한다. 그리고 세상살이에 허덕이는 모든 이들의 목줄이 헐거워지기를 바란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내 목에 채워져 있는 목줄도 조금은 헐거워졌으면 한다. 아직 내게 남아 있는 세월이 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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